[칼럼] 물꼬 튼 한-일 정상회담 진정 봄은 오는가?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3-03-20 01:31:55

청년교류·경제·안보 성과 얻었지만 숙제도 산적
정상 간 신뢰 다져 12년만의 ‘셔틀외교’ 복원
피해자 소통과 지속 설득, 반대 강경파 관리 필요
▲ 권기환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외교 전략은 청년-경제-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이웃나라와 손잡고 미래로 달려 나가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이었다. 예기치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장기화, 높아지는 북한의 안보위협 등 어쩌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일본이 절체절명의 동반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1박 2일의 짧은 기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일양국의 신뢰를 새롭게 구축하고 12년간 중단됐던 ‘셔틀 외교’를 복원한 것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한 번의 만남에서 그동안에 쌓였던 모든 현안을 일거에 해결한다는 것은 어렵다. 한-일 양국이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첫 출발에서 청년세대 문화교류 및 경제·안보 분야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도 산적되어있다.

가장 핵심적 쟁점이었던 강제징용 문제는 윤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을 토대로 일단 큰 틀에서 정리된 모양새다. 강제징용 해법을 미래 지향적 협력을 위한 결단이라고 거듭 강조한 윤 대통령은 “삼자 변제이후 구상권을 행사하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 표현이나 추가 사과가 없었고, 5월 G7 정상회의 초청 결정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안보 분야를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완전 정상화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윤대통령 방일 첫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는 역설적으로 한·일의 군사 자산을 총동원한 정보 공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반도체 수출 규제 같은 경제 현안 해소다. 양국이 앞으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의체 성격의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2018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양국 경제 교류가 급속히 냉각됐다. 2019~2021년 일본의 한국 제조업 직접 투자액이 2762억 엔(약 2조7000억원)으로 직전 3년보다 57.6% 급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등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과거 수십년간 작동했던 ‘정경 분리’ 원칙이 깨지는 바람에 양국이 불필요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마침 정상회담 전날 경기도 용인 일대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나온 것은 이런 위기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소재·장비의 원활한 공급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 분야의 최강자인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해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외교 갈등 와중에서 심각한 고충을 겪어야 했다.

지난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반도체 부문 한·일 협력 가능성을 묻자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답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양국의 내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귀국 이후 반대 여론을 더 설득해야 하고, 기시다 총리는 4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강경파의 돌출 발언 등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일본 국회 연설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는 과거대로 직시하며 국민께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역설했다. 양국 정상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서로가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윈윈’ 관계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에서의 논평은 이번 한-일정상 회담을 계절에 비유해 ‘맹춘(孟春·초봄)’이라고 했다. 봄은 시작됐지만, 냉기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가끔 북서풍이 불면 꽃샘추위로 감기에 걸릴 수도 있는 환절기다. 두 나라 국민과 국익을 위해서도 완연한 봄을 재촉하는 견고한 노력을 양국이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철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제 한-일 관계 정상화는 물꼬를 튼 걸음마단계다.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견지하려면 정성어린 노력이필요하다”고 충언한다.

우선 한국정부는 피해자와 직접소통과 설득에 지속적으로 신경써야하며,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구체화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는 조치들이 지속돼야 한다. 외교 당국은 치열한 외교협상에 지금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우리국민들이 바라는 일본의 호응조치가 실현될 수 있는 길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도리이다. 문제 해결의 종지부를 찍은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자세로 임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그야말로 한-일 관계는 심화와 확대를 위해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정상화의 순항은 양국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 미래지향적 관계개선, 침략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한계를 뛰어 넘는 대등한 파트너십, 더 넓은 세계로의 개척에 한-일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토착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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