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일본 전국시대의 기백, 요코하마 도심에서 부활하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4-08 06:59:48
무사 행렬 등 볼거리 풍성
오오타 도칸의 공략부터 카사하라 일족의 덕치까지,
코즈쿠에 성의 역사 재조명
[로컬세계 = 이승민 특파원]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500년 전 전국시대의 기백이 요코하마(横浜) 도심 한복판에서 재현된다.
요코하마시 코호쿠구(港北区)는 오는 4월 12일,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 축제인 ‘제31회 코즈쿠에 성터 축제(小机城址まつり)’를 개최한다. 코호쿠구 3대 축제 중 하나인 이번 행사는 츠루미 강(鶴見川)을 끼고 구축된 천혜의 요새이자, 센고쿠 시대의 숨결이 그대로 보존된 코즈쿠에 성(小机城) 유적지를 배경으로 화려한 막을 올린다.
역사를 깨우는 ‘무사 행렬’, 지역의 자부심을 드높이다
축제의 백미는 단연 ‘무사 행렬’이다. 과거 성을 지켰던 성주 대리(조다이) 카사하라 노부타메(笠原信為) 공과 그가 이끌던 무사들로 분장한 지역 주민들이 코즈쿠에역(小机駅)을 시작으로 성터까지 당당하게 행진한다.
정교하게 재현된 갑옷과 투구는 시민들에게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행렬이 본성 터(本丸跡)에 도착해 외치는 승전 함성 ‘카치도키(勝鬨)’는 1478년 오오타 도칸(太田道灌)의 공격을 견뎌냈던 조상들의 기개를 떠올리게 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한반도 역사와도 맞닿은 성곽 구조, 학술적 가치 주목
행사장인 코즈쿠에 성터 시민의 숲(小机城址市民の森)에서는 역사 가이드와 함께 빈 해자(空堀, 카라보리)와 토루(土塁, 도루)를 둘러보는 투어가 진행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구조가 한국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코즈쿠에 성의 특징인 빈 해자와 토루는 일본 전국시대의 독자적인 축성 방식이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한반도 남해안에 쌓았던 ‘왜성(倭城)’들의 모태가 된 구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코즈쿠에 성터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것은 한국 내에 남아있는 왜성 유적의 구조와 당시의 축성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학술적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역사 속으로] 코즈쿠에의 기틀을 닦은 성주와 마지막 결단
▲ 오오타 도칸(太田道灌)의 격전지에서 호조 씨(北条氏)의 요충지로
코즈쿠에 성(小机城)은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관동관령 우에스기 씨(上杉氏)에 의해 축성된 이후, 1478년 당대 최고의 전략가 오오타 도칸(太田道灌)에 의해 함락되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 도칸은 츠루미 강(鶴見川)의 늪지대 때문에 고전하다가 우회로를 통해 성을 함락시킨 뒤 시를 읊어 군사들을 격려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후 오다와라 호조 씨(小田原北条氏)가 관동을 장악하며 코즈쿠에 성은 관동 진출의 핵심 거점이 됐다.
▲ 카사하라 노부타메(笠原信為)
4대를 이어온 ‘충의’와 ‘덕치’ 매년 축제의 주인공으로 부활하는 카사하라 노부타메(笠原信為)는 호조 소운(北条早雲)부터 3대를 섬긴 중신이었다. 특히 카사하라(笠原) 일족은 노부타메를 시작으로 야스카즈(康勝), 미츠요시(照重), 시게마사(重政)에 이르기까지 약 66년간 4대에 걸쳐 코즈쿠에 성주 대리(城代)를 맡았다. 이들은 단순히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감면하고 사찰을 수리하며 주민들을 아끼는 ‘안정된 통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 1590년 오다와라 정벌(小田原征伐)과 아름다운 퇴장
코즈쿠에 성의 마지막은 1590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오다와라 정벌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카사하라(笠原) 씨와 코즈쿠에 무사단은 무모한 저항 대신 백성들을 보호하는 길을 택했다. 이들은 히데요시에게 “일반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달라”고 간곡히 청원하며 성을 내주었다.
이후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며 한반도에 비극을 초래한 것과 대조적으로, 코즈쿠에 성의 마지막 성주 대리 카사하라 시게마사(笠原重政)는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섬기며 지역의 평화를 이어갔다. 비록 성은 폐성됐지만, 백성을 사랑했던 그들의 정신은 오늘날 축제를 통해 지역의 화합과 자부심으로 계승되고 있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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