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③] 문선명, 김대중에게 노벨상 선물하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1-07 07:15:03
문…김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 할 일 없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마다 종교와 정치를 초월해 손을 맞잡은 두 거인이 있었다. 바로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문 총재의 영성적 ‘참사랑’이 평화의 씨앗을 뿌리면, 김 대통령의 정치적 ‘지혜’가 이를 제도적 시스템으로 꽃피웠던 30년의 동행.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민관 전략적 파트너십’의 실체를 재조명한다.
■ 1998년 청와대 독대,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 할 일이 없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기, 청와대에서는 영수회담에 준하는 무게감 있는 만남이 성사된다. 바로 문선명 총재와의 독대였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개인적 보은을 넘어 국가의 명운을 건 대화를 나눴다.
김 대통령은 과거의 인연에 사의를 표함과 동시에, 문 총재가 가진 방대한 국제 네트워크를 국가적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당시 두 지도자는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확신을 공유했다. 이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한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 IMF 외환위기 극복의 숨은 공신, ‘경제 방파제’ 문선명
1997년 말,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 취임한 김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외화 유치와 국제적 신뢰 회복이었다. 이때 문 총재는 자신이 수십 년간 구축해온 미국과 일본의 정·재계 네트워크를 즉각 가동했다.
특히 문 총재가 설립한 미국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는 한국 정부의 개혁 의지와 회생 가능성을 국제 금융계에 실시간으로 타전하며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을 확신으로 돌려놓는 결정적인 ‘언론적 방패’ 역할을 했다. 김 대통령은 훗날 “문 총재가 나라가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 ‘문선명이 연 북한의 빗장, 남북정상회담의 징검다리
김 대통령의 숙원이었던 ‘햇볕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 총재가 1991년 목숨을 걸고 닦아놓은 ‘평양 루트’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었다.
정식 외교 채널이 경색될 때마다 문 총재가 김일성 주석과 맺은 ‘심정적 유대’는 돌파구가 되었다. 1998년 리틀엔젤스 공연과 평화자동차 설립 등 민간 차원의 경협은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녹이는 마중물이 되었다. 문 총재가 ‘참사랑’으로 먼저 열어젖힌 문을 통해 김 대통령은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동맥을 연결할 수 있었다.
■ 노벨평화상, 평화의 기반 위에서 피어난 ‘위대한 선물’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면에는 문 총재의 헌신적인 조력이 거대한 엔진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노벨 위원회와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글로벌 지지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문 총재는 세계 180여 개국에 뻗어 있는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김 대통령의 행보를 지지했다. 특히 햇볕정책에 회의적이었던 미국의 보수 여론을 설득해 한미 동맹의 균열 없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것은 문 총재만이 할 수 있었던 독보적인 기여였다. 그런 의미에서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은 문 총재가 평생 일궈온 평화의 토양 위에서 피어난 ‘위대한 선물’과도 같았다.
■ 갈등의 시대에 던지는 역사적 교훈
이념과 종교를 넘어 오직 ‘평화’와 ‘민족’을 위해 하나가 되었던 두 거인의 동행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민간이 길을 열고 정부가 레일을 깐 이들의 완벽한 협력 모델은, 갈등이 심화된 이 시대에 진정한 협력이 무엇인지 시사하고 있다. 역사는 이들을 한반도 평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렸던 두 명의 거인으로 기록할 것이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이하는 기사 원문 일본어 번역
[新年特集③] 文鮮明、金大中にノーベル賞を贈る
[LOCAL世界 = 李勝敏 大記者] 大韓民国の現代史において、最もドラマチックな瞬間のたびに、宗教や政治の枠を超えて手を取り合った二人の巨人がいた。故・文鮮明 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総裁と、故・金大中 元大統領である。
文総裁の霊的な「真の愛」が平和の種をまき、金大統領の政治的「知恵」がそれを制度として開花させた30年の歩み。これまでベールに包まれていた「官民の戦略的パートナーシップ」の実体を改めて浮き彫りにする。
■ 1998年 青瓦台での独談 ―「我々が力を合わせれば成し遂げられないことはない」
1998年の金大中大統領就任初期、青瓦台(大統領府)では党首会談にも匹敵する重みのある会談が実現した。文鮮明総裁との独談である。この場で二人は、個人的な親交を超え、国家の命運をかけた対話を交わした。
金大統領は過去の縁に謝意を表すと同時に、文総裁が持つ膨大な国際ネットワークを「国家の資産」として活用することを望んだ。当時、両指導者は互いの手を取り合い、「我々が力を合わせれば成し遂げられないことはない」という確信を共有した。これは単なる会談を超え、国家の危機を克服するための偉大な旅路の始まりであった。
■ 通貨危機の隠れた功労者 ―「経済の防波堤」となった文総裁
1997年末、史上空前の国家倒産危機の最中に就任した金大統領にとって、最優先課題は外資誘致と国際的信頼の回復であった。この時、文総裁は数十年にわたり構築してきた日米の政財界ネットワークを即座に稼働させた。
特に、文総裁が設立した米紙『ワシントン・タイムズ(The Washington Times)』は、韓国政府の改革意志と再生の可能性を国際金融界にリアルタイムで発信。韓国経済に対する不信を確信へと変える決定的な「言論の盾」の役割を果たした。金大統領は後年、「国が困難な時に文総裁が大きな力になってくれた」と深く感謝の意を表している。
■ 文総裁がこじ開けた北朝鮮の門 ― 南北首脳会談の架け橋に
金大統領の悲願であった「太陽(サンシャイン)政策」が加速した背景には、文総裁が1991年に命がけで切り拓いた「平壌ルート」という強固な基盤があった。
正式な外交ルートが停滞するたびに、文総裁が金日成(キム・イルソン)主席と結んだ「心情的な絆」が突破口となった。1998年のリトルエンジェルス公演や平和自動車の設立といった民間レベルの経済協力は、北朝鮮指導部の心を溶かす呼び水となった。文総裁が「真の愛」で先に開いた扉を通じて、金大統領は2000年の歴史的な南北首脳会談という大動脈をつなぐ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 ノーベル平和賞 ― 平和の土壌に咲いた「偉大な贈り物」
2000年12月、金大中大統領のノーベル平和賞受賞の裏には、文総裁の献身的な助力が巨大なエンジンのように作動していた。ノーベル委員会と国際社会を説得するためには、太陽政策に対する世界的な支持が不可欠だったからだ。
文総裁は世界180余カ国に広がるネットワークを総動員し、金大統領の歩みを後押しした。特に、太陽政策に懐疑的だった米国の保守世論を説得し、米韓同盟に亀裂を入れることなく政策を推進できるよう支えたことは、文総裁にしか成し得ない独歩的な貢献であった。その意味で、金大統領のノーベル平和賞は、文総裁が生涯をかけて耕してきた平和の土壌の上に咲いた「偉大な贈り物」であったと言える。
■ 葛藤の時代に投げかける歴史的教訓
理念と宗教を超え、「平和」と「民族」のために一つになった二人の巨人の歩みは、現代を生きる我々に強いメッセージを投げかける。民間に道を開かせ、政府がレールを敷いた彼らの完璧な協力モデルは、対立が深まるこの時代において「真の協力」の在り方を示唆している。歴史は彼らを、朝鮮半島の平和という一つの目標に向かって共に走り抜いた「二人の巨人」として記憶するだろう。
LOCAL世界 = 李勝敏 大記者 /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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