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일 관계, 이제 어두운 터널 벗어나…갈길 너무 멀다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3-05-10 07:59:43

기시다 “가슴 아프다”발언은 고뇌에 찬 반성으로 평가
원전 오염수 한국사찰단 면피용 활용은 양국관계 급랭초래
한국경제인들 12년만의 셔틀외교 복원에 첨단기술 교류기대
▲ 권기환 칼럼니스트

취임 후 처음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박2일의 ‘셔틀외교’를 마치고 귀국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그래도 회담의 실리는 따져 봐야 한다. 그가 한국에 선물로 주고 간 것은 무엇이며,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뭔가를 짚어 본다.

기시다 총리는 출국하기 직전 약식 기자회견에서 “어제 윤석열 대통령 관저에 초대받아 개인적인 것을 포함해 신뢰 관계를 돈독히 쌓을 수 있었다”며 “ 앞으로도 관계를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귀국에 앞서 한국 6단체제장들과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원개발, 공급망 확대, 제3국 공동진출, 에너지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분야 협력 등 한-일간 경제현안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기업들이 일본 투자도 확대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한국방문은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대한 답방형식 이긴 해도 12년만의 ‘셔틀외교’복원에다 입국 첫날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등 그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양국이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데 있어 신뢰감이 깊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가 지난 7일 양국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과거사 발언은 우리 쪽 참모들과 일본 측 참모들까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당시 혹독한 환경속에서 수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강제징용 피해자 고통에 공감을 표시하는 발언을 했다.



비록 ‘개인적 심정’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수년간 강제징용 피해자를 ‘구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며 강제징용이 아니라고 우겨오던 일본정부 우익 강경파들의 입장과는 크게 달라진 발언으로 분석된다. 공식적인 ‘사죄’발언은 아니었지만 ‘고통 공감’이라는 표현은 사죄의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며, 따라서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한-일 양국의 우호 증진에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날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발언을 놓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장에 있던 일본 관료도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고 전한다. 한마디로 기시다 총리가 한국국민에게 진심을 전할 방법을 놓고 홀로 고민하고 결단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개인적 사견’임을 전제한 부분도 이해가 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윤석열 대통령측이 사전에 과거사 발언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오라고 전달됐지만, 기시다 총리는 그런 배려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인 궤도에 올리기 위해 말해야 할 것은 말하자”고 판단 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에게 “한국이 먼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꺼내거나 요구한 바가 없는데 먼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서 감사하다. 한-일 미래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별도로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를 같이하자고 제안한 것도 사실상 강제징용 원폭 희생자에 대한 사죄의 의미란 해석도 나온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2만 여명의 대부분이 당시 미쓰비시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던 징용노동자나 군인-군속 및 그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권준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대책특위 부위원장은 이날 연합뉴스에 “한-일 정상 공동 참배는 우리가 기원하고 기원했던 일이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면서“특히 기시다 총리의 참배를 두고 ”직접 입으로 사죄를 말하지 않더라도 참배하는 것 자체가 사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기시다 총리의 1박2일 답방은 한국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어 물잔의 반을 채운 데 이은 일본 정부의 몫인 남은 반잔을 채우기 위하 첫걸음인 것이다. 한-일관계 정상화 동력을 멈추지 않기 위해선 작더라도 차근차근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일관계전문가들은 다음단계 조치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의 실용적 활동허용과 강제징용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 측 피고기업의 참여 등을 제시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 한-일 양국이 셔틀외교 복원을 통해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관계회복의 기조를 다졌다는 데 우선적 의미가 있다”며 “ 특히, 기시다 총리가 회견에서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 하긴 했지만,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것은 상당한 진전과 큰 의미로 받아 들여 진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도쿄 회담은 양국관계 복원을 위한 개문발차 성격이 강했다”며 “ 곧장 이어진 이번 서울 회담은 양국 관계가 안정적 궤도에 올라 본격적인 협력 프로세스가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 일본이 오염수 방유를 위해 한국시찰단을 수용하기로 했다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근거로 7월이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원칙과 계획이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약 일본이 한국시찰단을 정해진 절차를 강행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활용하려고 할 경우 어렵게 접점을 찾고 있는 양국 관계가 오히려 더 크게 역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 했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어렵게 마련된 정상회담과 관계개선이 진일보 하려면 일본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일본 측 피고기업의 참여 여부는 아직 언급되지 았았는데, 향후 해당 기업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양국 관계 복원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제단체장들은 12년만에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 셔틀외교 복원을 크게 환영하며 정상회담에서 논의 된 우주-양자-인공지능-바이오-미래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협력을 기대하며, 양국의 미래세대가 더 큰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아가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가 아닌 진짜 ‘가까운 이웃나라’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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