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불러낸 단종의 기억…태백산 단종비각, 역사와 전승의 공간
박상진 기자
8335psj@naver.com | 2026-02-25 08:55:53
[로컬세계 = 박상진 기자] 영화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면서 조선 비운의 군주 단종을 기리는 공간도 재조명되고 있다. 태백산 자락에 자리한 단종비각은 지역의 기억과 역사를 품은 상징적 장소로 여전히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조명한 단종의 이야기가 다시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태백산 자락의 단종비각도 재조명되고 있다. 강원 태백산 망경대 뒤 능선에 자리한 태백산 단종비각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추모 공간이다.
비각은 해발 고도가 높은 태백산 자락에 위치해 지역민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기억돼 왔다. 현재의 비각은 1955년 망경사 주지 박묵암 스님을 중심으로 건립됐다. 한국전쟁 직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단종을 추모하려는 뜻이 모여 목조 삼칸 겹집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는 비문이 세워져 있다. 단종을 태백산과 연결해 기리는 의미를 담은 비문 글씨는 20세기 한국 불교계를 대표한 선승이자 학승으로 평가받는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유·불·선을 아우르는 회통 사상으로 평가받는 그의 글씨는 비각의 상징성을 더한다.
단종의 생애는 조선 전기 정치사의 격변과 맞닿아 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그는 1453년 계유정난 이후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됐다. 복위를 시도한 사육신 사건이 발각되면서 단종은 영월로 유배됐고, 1457년 열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비극적 군주로 기억된 그의 이야기는 후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698년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은 단종을 복위시켜 왕호를 회복했다. 이는 폐위된 군주를 국가적으로 재평가한 조치로, 단종이 역사 속 정통 군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민간 전승은 단종에 대한 기억을 확장했다. 태백 지역에는 단종이 태백산 산신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월 유배지에서 머루와 다래를 진상하던 추익한이 백마를 탄 단종을 만났고, 단종이 “태백산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이후 단종의 승하 소식이 전해졌다는 전승은 그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향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지역 공동체는 이러한 기억을 의례로 이어왔다. 음력 9월 3일에는 단종을 기리는 제사가 열려 왔으며, 1955년 비각 건립 역시 신앙적·지역적 기억을 가시화한 결과였다. 단종비각은 역사적 추모 공간이자 지역 전승이 담긴 문화적 장소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단종비각은 태백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는 지점으로 남아 있다. 규모는 작지만 조선 정치사와 비극적 군주의 이야기, 지역 신앙과 현대 불교계의 흔적이 겹쳐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시 관계자는 “영화가 단종의 삶을 다시 조명하면서 역사와 지역 유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며 “일시적 흥미를 넘어 단종을 둘러싼 역사와 전승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사는 기록뿐 아니라 기억으로도 이어진다. 단종비각은 비극적 군주의 이야기를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념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중문화의 관심이 역사적 공간에 대한 이해와 보존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로컬세계 / 박상진 기자 8335psj@naver.com
[ⓒ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