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문윤국①] 독립의 거목, 은둔의 꽃이 되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4-01 08:01:47
"네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마라."
해방의 환희가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가을 어느 날, 강원도 정선의 첩첩산중에는 이름 없는 노인 한 명이 스며들듯 찾아왔습니다. 1958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긴 것은 손때 묻은 성경책과 태극기 한 장, 그리고 "내 정체를 알리지 마라"는 기이한 침묵뿐이었습니다.
본지는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이자 청렴한 지도자였던 문윤국 지사의 숭고한 생애를 되짚어보기 위해 본 연재를 기획했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그가 남긴 고결한 ‘조국 사랑’의 정신적 유산을 후대에 온전히 전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재의 취지입니다.
문 지사의 후손과 정선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 그리고 사료 속에 잠들어 있던 기록을 모아 그의 80년 생애를 다시 복원합니다. [편집자 주]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첩첩산중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오지 마을에 외지인 노인 한 명이 발을 들인 것은 해방 직후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그저 글식이나 깨나 하는 ‘문윤국 영감'이라 불렀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예법이 바른 선비였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입을 떼지 않는 기이한 노인이었다.
정선 산골의 '문 영감', 그가 남긴 낡은 성경책
1958년 시린 겨울, 그 노인이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유품이라고는 평생의 신념이 담긴 낡은 성경책 한 권과 빛바랜 태극기 한 장, 그리고 끝내 지켜온 ‘고결한 침묵’뿐이었다. 장례는 동네 사람들이 거두어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비석 하나 세워지지 않은, 초라한 무덤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 이 노인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역사는 경악했다. 정선의 산골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그는 사실 평안북도 정주의 들불 같은 만세 시위를 이끌고, 상해 임시정부의 기틀을 닦았던 독립운동의 거목, 문윤국(文潤國) 지사였기 때문이다.
"너의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마라.”
생전에 후손들에게 입버릇처럼 남겼다는 이 한마디는 그가 독립된 조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명예와 보상을 스스로 거부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왜 화려한 서울의 정치가 아닌 ‘정선의 고독’을 택했는가? 왜 그는 독립유공자의 훈장 대신 화전민의 ‘투박한 호미’를 들었는가?
문윤국의 생애는 1877년 평안북도 정주의 유서 깊은 남평 문씨 가문에서 시작된다. 특히 그는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로 알려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종조부(작은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집안 대대로 흐르는 강직한 신념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훗날 후손들에게도 거대한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정주는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등 민족 지도자들이 나고 자란 항일운동의 성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접하며 선비의 기개를 익힌 그는 휘몰아치는 구한말의 풍운 속에서 일찌감치 조국의 운명을 어깨에 멘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단순히 글만 읽는 선비가 아니었다. 평양신학교를 거치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민족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 아래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훗날 그가 길러낸 제자들이 정주 장날의 만세 소리를 주도하게 될 것임을 당시 일제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선의 이름 없는 무덤에서 시작해 압록강을 건너 상해 임시정부로, 다시 정주의 뜨거운 함성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80년 평생을 오직 조국과 신념에 바쳤던 인간 문윤국의 진실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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