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권이 부메랑이 된 기축통화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5-15 07:07:31

미국의 전쟁은 구원인가 도박인가 박범철 작가

오늘날 미국의 군사적 행보를 관통하는 핵심 기제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그 기저에는 쌍둥이 적자와 천문학적 부채라는 경제적 생존의 절박함이 잠복해 있다. 이제 미국에 있어 군사력은 국가 안보의 방패를 넘어서고 있다. 파산 위기에 처한 자국 경제를 지탱하는 거대한 산업이자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는 형국이다.

우선 미국은 세계 최대의 방위 산업 기반을 활용한 군사 케인스주의를 통해 경제의 맥박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은 곧 국방 예산의 증액으로 이어지며, 이는 방산 거인들의 실적으로 직결된다.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고용과 하청 구조는 내수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또한 국방 R&D를 통해 탄생한 첨단 기술은 민간 산업의 혁신을 견인하며, 동맹국에 대한 무기 수출은 무역 적자의 상당 부분을 상쇄하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미국 내부의 정치적 결착인 군·산업 복합체를 직시해야 한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재선에 필요한 기부금과 지역구 고용 유지를 위해 국방 예산 증액을 멈출 수 없는 정치적 관성에 포섭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경직성은 과거 제조 기반이 탄탄했던 시절과 다르다. 현대의 장기전에서 이는 미국의 재정 건전성을 갉아먹는 주범이 되었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라는 늪에 쏟아부은 8조 달러 이상의 전비는 고스란히 국가 부채로 전가되었으며, 이는 공공 서비스 질 저하라는 뼈아픈 사회적 비용으로 치러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 사회의 내부적 균열과 경제의 공동화 현상이다. 자본과 인적 자원이 군수 산업에 매몰되는 구축 효과로 인해 민간 제조업의 경쟁력은 쇠퇴했고, 이는 중산층의 몰락과 러스트 벨트의 분노를 촉발했다. 무역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한 막대한 국채는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동력이었으나, 

이제는 미국 내부에서도 고립주의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이러한 갈등은 기축통화 지위를 사수하려는 엘리트의 전략과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대중 사이의 정치적 파열음을 심화시킨다. 나아가 미국이 구사하는 군사적·경제적 압박은 중국과 러시아를 위시한 브릭스(BRICS) 국가들의 탈달러화를 자극하며 국제 정치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패권 수호를 위해 휘두른 강력한 금융 제재가 오히려 우방국들마저 달러 의존도를 고민하게 만드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자기가 꼰 새끼줄로 자신을 묶듯, 패권의 창이 도리어 기축통화라는 방패를 허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이다. 

최근 사활을 걸고 있는 공급망 재편 전략 역시, 무너진 민간 제조업의 기반을 군사적 압박을 통해 강제로 탈환하려는 미국의 마지막 도박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미국의 전쟁과 군사 정책은 재정적 결핍을 메우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이자,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분출하려는 고육지책이다. 군사력은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인 동시에, 그 유지 비용이 미국 사회를 짓누르는 모순적 굴레가 되었다. 전쟁이라는 칼날이 미국의 적자를 깎아내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패권의 청구서가 되어 미국의 신뢰를 베어버릴지 전 세계는 위태로운 균형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흩어진 국력을 결집해 난제를 돌파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성공할지, 아니면 패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할지는 이제 역사의 심판만 남아있다.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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