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사'(一生一死)는 진리, 영화감독 하세가와 히로코 인터뷰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0-01-04 10:11:00
▲'생사' 영화감독 하세가와 히로코.(사진제공=하세가와 히로코) |
-자기소개
아키다현(秋田県) 출신,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위해 도쿄로 이주하여 대학생 시절부터 아나운서, 작곡가, 작사가, 가수(HIROKO)로 활약했다. 약학박사(薬学博士)였던 長谷川秀夫 씨를 만나 1988년 결혼,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던 중 남편이 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연히 회복할 줄 믿고 병상자료를 위해 영상촬영을 하게 되었지만 원치않는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 날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먼 곳으로 보내는 송별식을 했다. 2009년 남편 나이 47세였다. 남편은 따듯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저 세상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영화 '생사'를 상영하고 하세가와 감독이 특강을 하고 있다. |
-영화 감독이 된 동기는?
절대로 떠나서는 안되는 남편이 어린 자녀들 앞에서 눈을 감았다. 슬프고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생과 사를 고민하던 중에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고 ‘일생일사(一生一死)’라는 진리를 인정하게 되었다. 남편을 보낸 3년 후, 심경의 변화를 계기로 영화제작을 결의. 각본, 나레이션, 편집, 작곡, 연주, 노래 등, 대부분 모두를 스스로 담당하고, 2015년 4월에 완성시켰다. 남편의 투병생활, 임종의 순간, 죽음 등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영화 ‘생사'(生死)가 탄생됐다.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요청이 이어져 지금까지 일본은 물론 미국 한국 등 각종 사회단체로부터 430회 이상 초청상영을 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견해는?
조상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아 지금 내가 생명의 바톤을 들고 달려가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태어나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없다. 조상은 나를 통해 나는 조상을 통해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조상과 나는 특별한 인연 속에서 하나의 생명을 영속하고 있다. 나 하나를 보면 일생일사(一生一死)이지만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과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후손이 있는 한 죽지 않고 영생(永生)하는 것이다.
▲ 하세가와 감독이 자신의 집 앞에서 남편 長谷川秀夫 박사가 연구하던 고려인삼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승민 도쿄특파원.)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생명의 바톤을 이어받은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나의 생명이 엄숙하고 영원한 것이라면 남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이웃과 가정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생명을 고귀하게 간직하고 다듬어가며 살다가 후손에게 아름답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살아가는 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아빠에게 드리는 자녀들의 마지막 말은?
아빠가 이 세상을 종료하던 날 우리 가족은 저 세상으로 보내는 송별식을 했다. 나와 4명의 어린 자녀들이 둘러 앉아 아빠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아빠, 우리들은 괜찮아요” “집안 일은 걱정 마시고 안심하시고 편안하게 가세요” “그동안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빠 아들이고 딸이라서 좋았어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행복한 얼굴로 듣고 있던 아빠도 “그동안 고마웠다” “서운했던 것이 있다면 용서해다오” “나는 너희들이 있어 이 순간이 행복하다” 라고 웃음으로 자녀들에게 대답했다. 아빠와의 마지막 밤을 다같이 한 이불 속에서 잤다.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나니 6식구였던 우리 가족은 5식구가 되었다.
▲하세가와 히로코 감독이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 이승민 도쿄특파원) |
-남편이 개인적으로 남긴 말이 있다면?
죽음을 인정한 남편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했다. 근심걱정 없는 얼굴로 나에게 말해주었다. “삶이 엄숙한 것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엄숙합니다. 당신에게 마음 아프게 했던 날들이 후회가 됩니다. 당신 앞에 사죄합니다. 죽음을 인정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와 인연되어 울고 웃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암과 함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암을 원망했고 미워했습니다. 암에게 미안합니다. 자녀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남편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임종을 맞이하는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살아 있을 때 잘 해야지 죽음 앞에서는 어떤 호의도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은 병이 있어도 병을 낫아도 죽는다. 죽으면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나야 한다. 떠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가게 해서는 안된다. 마음 편안하게 가도록 해줘야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엔 호언(好言)이나 의료보다 안심(安心)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에서 영화 상영을 마치고 장녀와 함께 기념사진. |
-영화 ‘생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옛날에는 집에서 태어났고 집에서 죽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영화 '생사'는 탄생과 죽음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이한다면 얼마나 인생이 아름답고 낭만적인지를 알려준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누구나 죽는다. 걱정해도 죽고 걱정 안해도 죽는다. 죽는 날까지 걱정없이 열심히 살자. 살아서도 죽어서도 상처는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가자. 죽는 순간 ‘죽기 싫어’, ‘억울하다’, ‘더 살고 싶다’, ‘분하다’ 등 추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도 인간에게 주는 축복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한다. 죽는 순간 ‘지금이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 멋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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