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 ㉑] 아카사카, 도심의 화려함 속에서 마주한 고즈넉한 숨결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6-18 14:51:36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이왕가(李王家) 저택의 아픔과 건축미
명판관의 자취와 도심 속 신비로운 이나리 신앙
과거와 현대가 정교하게 직조된 미디어의 거리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요코하마의 탁 트인 바닷바람과 개항기의 로맨틱한 이국정취를 뒤로하고, [도쿄 산책] 연재의 스물한 번째 발길은 도쿄의 심장부이자 일본 정·재계의 무대인 미나토구 아카사카(赤坂)로 향한다. 오늘날 아카사카는 초고층 빌딩과 세련된 상업 시설, 그리고 대형 방송국(TBS)이 밀집한 현대 트렌드의 중심지다. 그러나 화려한 네온사인과 번잡한 빌딩 숲에서 한 걸음만 안쪽으로 옮기면, 에도 시대의 유서 깊은 신앙과 우리 민족의 아련하고도 비장한 근현대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반전의 공간이기도 하다.
붉은 흙 고개와 뽕나무 도읍의 기억이 교차하는 땅
아카사카라는 지명의 유래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이 지역에 붉은 흙이 많고 언덕이 져 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직관적인 설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대에 꼭두서니(茜) 풀이 群生(군생)하던 '꼭두서니 고개(茜坂, 아카네자카)'가 전박되어 아카사카가 되었다는 설로, 이 고개에서 염색업자들이 붉은 비단을 말리던 풍경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에도 시대에는 에도성의 외곽 관문인 '아카사카 미쓰케(赤坂見附)'가 위치하여 군사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당시 이곳은 유력 다이묘들의 무사 저택이 밀집한 고대 정치의 거점이었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정부 고관과 군인, 재계 인사들의 최고급 저택가로 발전했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접대하는 고급 요정(料亭) 문화가 발달하며 아카사카 화류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카사카는 긴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급 번화가로 영예를 누렸다. 당시 1달러가 300엔을 웃돌던 시절, 인근 고급 호텔과 미군 주거지에 상주하던 서구 지식인, 스튜어디스, 외교관들이 대거 몰려들며 뉴라텐쿼터, 코파카바나 같은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 극장들이 성행했다. TBS 방송국과 레코드사 주변으로 패션모델, 연예인, 문화인들이 직조해 낸 이국적이고 화려한 문화적 레이어는 오늘날 복합 상업 공간인 '아카사카 사카스(Akasaka Sacas)'로 이어져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역동성을 뿜어낸다.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이왕가(李王家) 저택의 아픔과 건축미
아카사카의 번화가를 지나 나지막한 언덕길로 접어들면, 현대적인 초고층 빌딩 숲 사이에 박제된 듯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가파른 경사 지붕의 석조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웨딩 연회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이곳은, 과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가 거주했던 '옛 이왕가 아카사카 저택(현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이다.
1930년에 완공된 이 대저택은 일본 궁내성 소속의 엘리트 건축가 곤도 요키치(権藤要吉)가 설계를 주도한 외관으로, 16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고풍스러운 '튜더 양식(Tudor Style)'의 정수를 보여준다. 거친 자연석을 쌓아 올린 1층 벽면과 목재 프레임이 외벽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하프 팀버(Half-timber)' 기법, 그리고 정교한 아치형 창문과 솟아오른 굴뚝은 장중한 성곽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당대 유럽을 휩쓸던 기하학적인 '아트 데코(Art Deco)' 풍으로 정교하게 짜여 있어 2011년 도쿄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재됐다.
그러나 이 화려하고 이국적인 공간의 이면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깊은 비극이 서려 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본 조정이 대한제국 황실을 '이왕가'로 격하시키고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지어준 이 저택은 영친왕 부부에게는 화려한 '은빛 감옥'에 불과했다. 영친왕의 아들이자 조선 황실의 마지막 황사손인 이구(李玖) 선생이 태어난 곳도 바로 이 저택이었다.
광복 후 재일 한국인에 대한 국적 박탈과 막대한 재산세 부과로 인해 영친왕 가문은 결국 세이부 그룹에 저택의 소유권을 넘겨야 하는 통한을 겪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평생을 이방인으로 떠돌던 이구 선생이 지난 2005년 7월, 자신이 태어난 바로 이 자리(당시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구관 객실)에서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대를 이은 비극적 종말을 묵묵히 품고 있는 이 저택의 정원을 거닐다 보면, 국권을 빼앗기고 지독한 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던 황실 가족들의 눈물이 아련하게 전해져 마음을 묵직하게 가라앉힌다.
명판관의 자취와 도심 속 신비로운 이나리 신앙
역사의 아픔을 뒤로하고 아카사카의 또 다른 골목과 언덕길을 오르면 도심 속 신비로운 신앙의 공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아카사카 사카스 인근의 옛 '이츠키초(一ツ木町)' 부지는 에도 시대 명판관으로 칭송받았던 대옥 충상 오오카 타다스케 (大岡忠相)의 저택이 있던 자리다. 그 저택 내에 모셔져 있던 영험한 수호신이 바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는 '토요카와 이나리 도쿄 별원(豊川稲荷東京別院)'이다. 도둑을 막아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함으로 에도 서민들의 깊은 신앙을 모았던 이곳은, 불교와 신도 신앙이 융합된 독특한 사찰이다. 경내 가득히 세워진 수천 개의 붉은 깃발과 이끼 낀 돌 여우 석상들의 위엄 있는 눈빛은 아카사카의 세련된 현대식 풍경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고즈넉한 영기를 뿜어낸다.
국회의사당역 방면으로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에도성의 총수호신을 모시던 '히에 신사(日枝神社)'에 닿는다. 빌딩 숲을 배경으로 가파른 언덕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붉은 봉납 토리이(千本鳥居) 터널은 걷는 이에게 마치 차원 이동을 하는 듯한 기묘하고 장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과거와 현대가 정교하게 직조된 미디어의 거리
산책의 마무리는 다시 아카사카의 중심부인 옛 '타마치(田町) 거리'와 TBS 방송센터 주변으로 이어진다. 과거 최고급 요정들이 밀집해 번화했던 타마치 거리는 시대의 변화를 거쳐 현재 '에스플러네이드 아카사카 거리'라는 세련된 상점가로 거듭났다.
대형 광장과 방송 문화가 결합된 이 중심 지구는 오늘날 도쿄의 대중예술을 선도하는 활기찬 거점이다. 에도 시대의 무사들이 걷던 언덕길, 근현대사 황실의 눈물이 고인 석조 저택, 그리고 현대의 방송 장비들이 뿜어내는 화려한 불빛이 아카사카라는 좁은 공간 안에 겹겹이 쌓여 레이어를 이루고 있다.
아카사카는 단지 고급스럽고 세련된 번화가라는 단편적인 수식어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다층적인 역사의 축적물이다. 정·재계의 치열한 암투와 미디어의 화려함 바로 곁에, 우리 선조들의 비장한 삶의 궤적과 옛 신사들의 고요한 침묵이 영리하게 공존하고 있다. 빌딩 숲 사이로 아련하게 스며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역사와 현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슬픈 균형을 품은 이 길을 뒤로하고 도쿄 산책의 발길은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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