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문풍지 우는 소리

지차수 기자

chasoo9@naver.com | 2026-04-02 14:28:10

《문풍지 우는 소리》는 시인 강문규가 오랜 세월 삶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61편의 시를 도서출판 청람서루(대표 김왕식)에서 엮은 시집이다.

《문풍지 우는 소리》는 시인 강문규가 오랜 세월 삶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61편의 시를 도서출판 청람서루(대표 김왕식)에서 엮은 시집이다.

이 시집은 거창한 서사나 과장된 감정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문풍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들기름 먹인 툇마루의 온기, 양은 도시락의 눌린 밥,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는 꽁치, 그리고 사라진 가족을 향한 말없는 그리움 같은 일상의 미세한 장면들을 통해 삶의 본질에 천천히 다가간다. 

시인은 사소한 풍경 속에 깃든 시간과 관계, 그리고 마음의 결을 절제된 언어로 길어 올리며, 독자에게 잊혀진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이 시집은 다섯 개의 부로 구성되어 하나의 삶의 흐름을 이룬다.

1부 〈고요를 세우는 풍경〉에서는 산사, 노송, 달빛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 속에서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을 낮추는 과정을 담아낸다.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면을 정화하는 공간으로 작용하며, 독자는 그 고요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2부 〈손의 온도, 살림의 서정〉에서는 밥상과 부엌, 노동의 현장을 통해 가족과 삶을 지탱해 온 ‘손의 윤리’를 그린다. 양은 도시락과 꽁보리밥, 석유곤로 찌개와 같은 소재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랑과 헌신의 기록으로 되살아난다.

3부 〈그리움의 식탁〉은 부모와 고향, 지나간 시간에 대한 절제된 그리움을 담는다. 시인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빈잔과 소주잔, 종착역과 설날 같은 이미지로 상실 이후의 시간을 조용히 견디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4부 〈사람 구경, 마음 구경〉에서는 일상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삶의 태도와 관계의 본질을 성찰한다. 자리싸움, 말다툼, 버르장머리 같은 소재를 통해 시인은 인간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한다.

5부 〈비우고 건너가는 법〉은 이 시집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지혜를 전한다. ‘비움’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이며, 내려놓음은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기 위한 선택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강문규의 시는 독자를 설득하거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낮고 단단한 언어로 삶을 응시하며,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스스로 불러오도록 여백을 남긴다. 이러한 절제와 담백함은 오히려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며, 읽을수록 삶의 온도와 무게를 다시 느끼게 한다.

《문풍지 우는 소리》는 한 번 읽고 지나가는 시집이 아니라, 곁에 두고 오래 머물며 되새기는 책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이 시집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조용한 쉼표가 된다. 삶이 버거운 날, 이 책은 말없이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 줄기 바람처럼, 오래도록 곁에 남을 것이다.

로컬세계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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