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부정선거(不正選擧)-백성(百姓)의 목소리(Ⅰ)
마나미 기자
| 2026-06-18 15:12:02
부정선거(不正選擧)란 부정(不正)이라는 단어가 바르지 못한 것을 의미하니, 부정선거라는 글자가 주는 의미 그대로 바르지 못한 선거, 즉 옳지 못한 선거를 말한다.
민주주의는 자유선거를 시행해야 민주주의다. 그리고 자유선거는 직접·보통·평등·비밀 선거라는 4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만일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당연히 민주주의의 자유선거가 아니고 자유선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게 바로 부정선거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태가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민주주의를 뿌리채 흔들고도 남을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세상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그에 따라서 일부에서는 재선거를 주장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을 부정선거로 몰아가는 것은 정쟁이며, 그런 말을 유포하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도 한다. 실로 기도 안 찰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는데 그걸 가지고 더 기가 안 차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했다는 곳도 있다.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했다는 것은 일단 투표는 하되 유권자는 반만 투표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백성 우롱 행위로, 백성들은 완전히 들러리고 나머지 당락은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면 무어라 답할까? 투표라는 것이 0점 몇 퍼센트로도 당락을 가르고 심할 때는 한자리 수 표 차이로 당락을 가른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처럼 60%를 상회하는 투표율에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했다는 것은, 투표는 형식이요 당락은 투표와 별개로 누군가가 결정할 것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냐고 반발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먼저 투표한 사람들이 선택한 이가 당선되고 늦게 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끼리끼리 암암리에 벌인 꼼수라고 몰아붙여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백성들을 기만한 중죄 중에서도 아주 커다란 중죄다. 이런 행위야말로 민주주의를 뿌리채 흔들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내란과 다를 바 없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하고, 꼬리 자르기로 끝낼 일이 아니라, 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은 물론 관계 부처장과 관련자 모두 대한민국 법정이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에 처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처벌함으로써 그 본보기를 보여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필자의 짧은 견해로는 투표용지는 유권자 수와 딱 맞게 인쇄해서, 투표하고 남은 수와 투표 참가 유권자 수를 더한 것이 인쇄한 수와 일치해야 한다. 투표용지 인쇄 매수를 유권자 수와 일치하지 않게 임의대로 한다면 이번 사건처럼 투표용지가 제 멋대로 춤출 것이다. 그리고 그 춤사위에 민주주의는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투표용지를 유권자 수만큼 인쇄할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부정선거라는 말인지 한심하기조차 하다. 그리고 기껏 사용하는 말이 참정권이 침해당했다는 표현이다. 참정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은 직접·보통·평등·비밀 선거라는 4대 원칙 모두를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것이다. 4대 원칙 중 하나만 훼손되어도 부정선거인데 4가지 모두를 강탈당했는데 부정선거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지 한심하기도 하지만 참정권을 강탈당했다는 말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르고 쓰는 것 같아서 더 참담하다.
참정권은 민주주의 국가 백성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렇다면 참정권을 박탈당하는 것이 국적이나 시민권을 빼앗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결국 참정권을 박탈당하면 대한민국 백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거류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무서운 말을 제대로 이해나 하고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정선거라는 말로 사건을 왜곡하지 말라면서 기껏 쓰는 게 참정권 박탈이라니 도대체 의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질러 혼쭐이 나간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백성들을 거류민 취급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한 편으로는 언젠가 민중을 한낮 개·돼지에 비유했던 공무원과 자기 자식의 담임에게 제 자식은 왕의 DNA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 교육부 공무원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이 나라 공직자나 정치하는 자들은, 일단 권력의 그림자에 닿거나 그 안에 서면 자신이 법을 깔고 앉아도 되는 최고의 완장을 찼다고 착각하여 선을 넘는 이들이 꽤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옛말에 소인(小人)은 권력이나 재물을 줘 보면 구분해 낼 수 있다고 했다. 완장을 채워주거나 돈을 주고 그 행동거지와 씀씀이를 보면 인간 됨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이들은 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면, 잠실 체육관 앞을 봉쇄하고 투쟁하는 사람들도 정도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물론 백성 중 한 사람으로 그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나라 체육 활동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길은 열어주는 것이 옳다. 과하면 부족함만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심지어는 트럼프 가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너무 놀랐다. 민주주의라는 커다란 명제를 상징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좋게 생각도 해 봤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건 옳지 않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민주주의의 선봉은커녕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고 있는 나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트럼프가 저지른, 오로지 석유에 대한 욕심으로 침략한 베네수엘라와 앞에서는 협상하며 뒤통수를 쳐 공습한 이란 침략 행위, 힘을 내세우며 가자지구나 그린란드 영토를 핥아대는 등 동네 양아치만도 못한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FIFA평화상을 만들어 수상하는 등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을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있을 뿐이다. 더더욱 성조기나 트럼프 가면의 등장이 미국에 기대 무언가 얻으려는 의도였다면, 그건 또 다른 사대주의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모인 뜻 있는 자리에 성조기나 트럼프 가면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사족일 뿐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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