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건국 설화를 통해서 본 고구려 건국 연도 재정립 필요성-동북공정과 만주의 영토권(Ⅹ)

마나미 기자

| 2024-12-01 15:40:33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전회에서 살펴본 건국 설화들을 분석하고, 고구려 건국 연도가 기원전 37년이라는 통설을 기준으로 추정하면, 동・북부여가 건국된 임술년은 기원전 59년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구려 추모왕과 유리왕의 재위 연수를 합한 55년이 부여 동명왕과 해부루 왕의 재위 연수를 합한 것과 비슷할 것으로 가정해볼 수 있으므로 부여의 건국은 기원전 114년경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따라서 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는 통설대로라면 동・북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으므로 그 모순에 관해 고찰하기로 한다.

필자는 고조선에 대한 이론으로 항상 신채호의 ‘3조선론’을 인용하였고, 이번 칼럼에서도 동일하다. 그 이유는 신채호의 이론은 이병도・최태영 공저 '한국상고사입문'에 단군이 대제왕으로 제후국가들이 그 밑에서 소왕, 부왕, 제후로 통치한다는 이론은 물론 그 영역을 논하는 것도 유사하여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진조선・번조선・막조선 3조선이 연합국 조선을 구성하고 맹주는 진조선으로 대단군이며, 번조선과 막조선의 단군은 소단군이라고 했다. 그리고 진조선의 영역은 '한국상고사입문'의 위만조선 표기 지도를 인용하여 필자가 3조선 명칭과 의무려산을 첨가한 [그림 1]과 같이 만주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경에 단군 사상은 붕괴되기 시작하고 3조선은 분열된다. 그 후 진조선은 나날이 영역을 확장하며 성장하는 부여, 고구려 등의 세력에 의해서 약해지다가 기원전 200년경에 흉노 모돈의 침략을 받고 더욱 쇠약해져 가장 먼저 멸망한다.


막조선의 영역은 압록강 이남으로, 단군 사상의 붕괴가 시작된 기원전 4세기경에 마한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반도 내의 소국들이 모여서 건국한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으로 이루어진 진국의 맹주가 되었다.


번조선의 영역은 요하와 난하 유역으로 기원전 195년에 중국에서 귀화한 위만을 번조선 왕 기준이 고진공지에서 살게 해 주었는데, 위만이 세력을 키워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준왕은 한반도의 진국으로 도망하고, 위만과 그 후손이 위만조선으로 존립하다가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그 영역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술한 '삼국지'「위서」「동이전」에, ‘한 무제 2년(B.C.109)에 조선을 정벌하여 위만의 손자 우거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사군을 설치하였다’라는 기사에서 증명된 것으로, 신채호 논리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한 고조선은 통설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고조선 전체가 아니라 위만조선뿐이다. 

이러한 합리적인 논리에도 불구하고 통설에서 주장하는 대로, 한 무제가 고조선을 일거에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는 가정하에 [그림 1]과 [그림 2]를 참고하며, 동・북부여와 고구려 건국의 가능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림 1] 고조선과 진국의 영역

통설대로라면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한 것이 기원전 108년이고 부여가 동・북부여로 나뉜 것은 기원전 59년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진조선의 영역을 비롯한 만주는 한 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기원전 114년에 동명왕의 부여가 건국되었다고 추정했지만, 한 나라가 고조선을 침입하던 당시 건국한 지 겨우 6년 된 신생국일 뿐만 아니라 부여가 한나라에 맞서 싸웠다는 기록도 지금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거에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 나라가 부여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그림 2]에서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과 같은 민족으로 한 나라와는 적대 국가인 부여가, 자신들끼리 세력 다툼을 해서 밀린 쪽은 동부여로 국호를 바꾸며 무리를 이끌고 만주 서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북진 의무려산에서 만주 동쪽 끝인 혼춘으로 이동한다. 

▲[그림2] 통설에 의한 한사군 위치와 한 나라 침입 당시 만주 세력분포 가상도

그리고 그 자리에는 신흥국가인 북부여가 들어섰다가 기원전 37년에는 고구려를 건국한다. 더더욱 통설에서는 고구려 첫 도읍지가 환인이라 했으니, [그림 2]에서 보듯이 환인은 압록강 변에 위치해 한 나라가 한반도에 설치한 한사군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신흥국가가 한반도 평양 이북에 한사군을 설치하고 만주를 지배하고 있는 한 나라와 그 파견대의 통로에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설대로, 기원전 109년에 고조선을 침입한 한 무제가 고조선 전체를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했다는 이론 자체도 성립될 수 없는 모순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물론,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연도 역시 재정립할 필요성만 제시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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