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의 등불, 부부라는 이름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4-09 15:45:34
식탁 앞에 마주 앉은 배우자의 손등 위로 시선이 멎는다. 예전엔 미처 살피지 못했던 거친 살결과 짙게 내려앉은 검버섯이 세월의 여정을 증명하듯 선연하다. 묵묵히 삶의 무게를 지탱해 온 저 굽은 어깨를 바라보노라면, 애처로움과 고마움이 교차하며 가슴 한구석이 미어진다. 익숙함이라는 너울에 가려졌던 미안함이 부부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생의 참된 의미로 뜨겁게 밀려오는 순간이다.
인간의 모든 인연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제각기 고독한 서사를 지닌다. 본래 부부란 제도 안에서 맺어진 법적·사회적 결합이나, 그 실체는 서로에게 가장 견고한 심리적 지지대가 되어주는 관계다. 지란지교(芝蘭之交)를 나누던 벗도, 정겨웠던 이웃도, 심지어 내 몸으로 태어난 혈육마저도 제 몫의 길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이 홀로 마주해야 할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부부는 다르다. 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고요히 접히는 그 찰나까지 곁을 지키는 존재, 서로에게 끝내 꺼지지 않는 하나의 등불이다.
부부가 서로의 가슴에 의지해 생을 이어가는 것은 단순한 애정을 넘어 영혼의 뿌리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말처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맞춰가는 인내의 과정 자체가 부부의 본질이다. 비록 젊은 날의 고운 꽃잎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으나, 서로의 빈틈을 메우려 애쓰는 사이 두 몸은 어느덧 하나가 되는 연리근(連理根)을 이룬다. 아픈 날 정성스레 끓여낸 죽 한 그릇의 온기 같은 소박한 헌신은 세월이 빚어낸 가장 고귀한 산물이다.
건강한 부부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은 세 가지다. 날 선 비난 대신 서로의 취약함을 공유하는 연대, 심판관이 아닌 따뜻한 관찰자로 곁을 지키는 이해, 그리고 풍랑 속에서도 기꺼이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희생이다. 관계의 핵심은 결국 이 헌신의 선순환에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호칭은 그래서 더욱 숭고하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라는 뜻의 여보(如寶), 나의 육신과 영혼의 일부임을 선언하는 당신(堂身). 이 이름들은 서로의 마음을 지탱하는 가장 절절한 기도이자 삶의 슬기다.
말은 마음의 초상화이다. 부부 인연, 서로 손잡고 사랑을 밝히는 길, 행복을 여는 길, 지나온 길보다 오는 세월 편안한 길이 더 되기를, 서로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연등 같은 마음은 생의 가장 간절한 발원이 된다. 부부는 둘이 아닌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동반자다. 남은 생 동안 서로의 어깨를 감싸는 햇살이 되어 가장 귀한 이름으로 남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인연의 완성이자 연리지(連理枝)의 숭고한 풍경이다.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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