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의 풍경소리] 진정한 해탈은 선과 악을 넘어서 살라는 것
한상면 기자
samhan38@naver.com | 2022-12-06 18:31:54
▲세계불교승가연합 총재 상산 |
첫 번과 두 번째 구절은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는 뜻으로, 이것은 어떠한 형태의 윤리나 도덕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교훈이다. 그런데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말라는 것은 ‘좋은 일을 하면 즐거운 과보가 오고 나쁜 일을 하면 괴로운 과보가 온다’는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렇게 악을 폐하고 선을 권하기 위해서도 선과 악은 즐거움과 괴로움만큼이나 확연하게 구분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일반적인 윤리는 선과 악의 분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은 악과의 관계에서 악과 대립된 선, 즉 일종의 상대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악에 대해서, 선은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인데, 이렇게 부귀영화나 무병장수라는 미래의 즐거운 과보를 약속함으로써 상대적인 선은 인간에게 집착심을 유발시킨다. 결국 선과 악의 상대적인 분별의 근저에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번뇌심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의 선을 ‘유루선(有漏善)’이라고 부른다.
첫째, 인간 사회를 떠받쳐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사회의 ‘질서’나 카스트 제도상의 ‘의무’를 뜻하는데, 불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전통 인도 사회에서는 그 말을 주로 이렇게 사용했다.
둘째, 세계 만물을 떠받쳐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는 뜻에서는 우주의 ‘질서’나 만물의 ‘법칙’ 또는 ‘진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종래의 협소한 용법이 불교의 등장으로 인해 훨씬 확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셋째, 이런 만물의 법칙에 의해 지탱되어 유지되는 것이라는 뜻에서는 ‘사건들’이나 ‘사물들’을 의미한다.
넷째, 그런 만물의 법칙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라는 뜻에서는 ‘가르침’이나 ‘교리’ 혹은 ‘경전’ 등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불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는 두번째인데, 여기서 만물의 법칙이란 곧 연기(緣起)를 가리킨다. 연기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수많은 조건들(緣)이 상호 의존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다(起)는 뜻이다. 이처럼 상호 의존적으로 발생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불변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며, 자신만 고립되어 존속하는 실체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 이상은 중생 구제와 불국토 건설에 있다. 그런데 중생 구제란 신의 가호에 의탁해 구원받는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는 치열한 자기 정진에 의한 ‘깨달음(解脫)’을 성취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불교를 일러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해 ‘자력 종교’라고도 말한다. 아무리 신통묘용한 능력을 가진 불보살이라 할지라도 특정 중생에게 직접적으로 ‘깨달음’을 안겨줄 수는 없다. 중생에 대한 제불보살의 비원은 바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과정의 완수에 있다.
선과 악의 분별이 집착과 번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상,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한다고 해서, 생로병사로 인한 근원적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 상태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착과 번뇌를 낳을 뿐인 이원적인 분별심 그 자체를 가라앉혀야 한다. 윤리적으로 선과 악을 논하기에 앞서, ‘선과 악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 상대적인 의미에서 선과 악에 매달려 머리를 아프게 하지 말고, 오히려 보다 넓은 차원에서 선도 악도 넘어서라는 것이다.
즉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내외적 요건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며 이에 반하는 장애를 제거해 주는 것이 불보살의 중요한 행위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교의와 사상, 교단의 운영과 대사회적 활동도 중생의 궁극적 목적인 ‘깨달음’의 성취를 돕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점이 ‘호국’과 관련해 긴밀한 함수관계를 지니게 되고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중생의 해탈은 현실의 공간 속에서 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생이 살고 있는 그 땅 그 시각에 구원이 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국은 바로 중생이 해탈을 이룰 수 있는 현실의 시간적·공간적 형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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