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자시(新座市)’의 뿌리, 1,300년 전 ‘신라군(新羅郡)’을 가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4-04 20:18:35
지명에 새겨진 1,300년의 증거
‘레키시테라스’에서 마주하는 개척의 긍지
신라의 숨결 위에 피어난 봄꽃의 향연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일본 도쿄의 세련된 도심에서 전철로 불과 30분 거리.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니자시(新座市)는 겉보기엔 평범한 위성도시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8세기 한반도 도래인들이 황무지를 개간하며 일군 ‘신라군(新羅郡)’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1,300년의 세월을 넘어 지명과 유적 속에 살아 숨 쉬는 신라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신라 사람 74명을 옮겨 살게 하다”
일본의 정사(正史)인 『속일본기(続日本紀)』758년(天平勝宝 10년) 기록에는 니자시의 기원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신라 사람 74명을 무사시노 국(武蔵国)의 빈 땅에 옮겨 살게 하고, 처음으로 신라군(新羅郡)을 두었다”는 대목이다.
당시 야마토 조정은 선진적인 농업과 토목 기술을 보유한 신라 도래인들을 전략적으로 간토 지방의 미개척지에 배치했다. 이들은 척박한 땅에 수로를 내고 농경지를 일구며 지역 경제의 기틀을 닦았다. 도쿄 시바공원의 거대한 ‘시바마루야마 고분’이 해상권을 장악했던 도래 세력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니자시의 신라군은 내륙 깊숙이 뿌리 내린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지명에 새겨진 1,300년의 증거
‘신라(新羅)’라는 이름은 세월이 흐르며 발음과 표기의 변화를 겪었다. 고대 발음 ‘시라기(Siragi)’ 혹은 ‘시라(Sira)’는 훗날 ‘새로운 터전’을 의미하는 한자 ‘신좌(新座)’로 대체되었고, 오늘날의 ‘니이자(Niiza)’ 혹은 ‘니쿠라(Niikura)’라는 지명으로 정착되었다. 도시의 이름 자체가 신라인들의 개척사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유적인 셈이다.
역사적 흔적은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니자시 인근의 반조지(番星寺)는 신라계 도래인들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전해지며, 고대 한반도 불교 양식의 영향을 간직하고 있다.
‘레키시테라스’에서 마주하는 개척의 긍지
니자시의 과거를 가장 체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역사민속자료관, 애칭 ‘레키스테라스(れきしてらす)’다. 이곳에는 758년 신라군 설치에 관한 문헌 사본과 도래인들이 사용했던 생활 도구, 이 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도질토기 스에키(須恵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자료관 관계자는 “니자시의 뿌리가 신라인들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지역 초등학생들도 이곳에서 자신들의 도시가 신라인들에 의해 개척되었음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신라의 숨결 위에 피어난 봄꽃의 향연
역사의 현장 위로 이제는 화사한 봄의 정취가 내려앉았다. 벚꽃이 만개한 니자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다.
쿠로메가와(黒目川) 벚꽃길: 강변을 따라 수백 그루의 벚나무가 장관을 이루며, 밤에는 야간 조명 아래 환상적인 ‘요자쿠라’를 즐길 수 있다.
노비도메 용수(野火止用水): 고대 신라인들의 관개 기술을 계승한 에도 시대의 수로로, 조팝나무와 벚꽃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일품이다.
헤이린지(平林寺): 고즈넉한 사찰 경내에서 수행 도량 특유의 정적과 함께 매화와 벚꽃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다.
한일 교류의 역사가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는 오늘날, 니자시는 두 나라가 오래전부터 서로의 삶을 일궈온 동반자였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골목길 곳곳에 서린 1,300년 전 신라인들의 희망은 이제 매년 봄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잎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방문 정보]
니자시립역사민속자료관(れきしてらす): 신라군 관련 고고학 자료 및 출토 유물 상설 전시.
주소: 사이타마현 니자시 노비도메 2-9-37 (新座市野火止二丁目9番37号)
교통: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도부토죠선 이용, 시키(志木)역 혹은 니자(新座)역 하차.
팁: 3월 말~4월 초 방문 시 자료관에서 사카와강(쿠로메가와)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꽃의 산책로’ 추천.
니자시를 관통하는 쿠로메가와(黒目川)는 도쿄도 히가시쿠루메시에서 발원해 니자시와 아사카시를 거쳐 신가시강(新河岸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해마다 봄이면 이곳에서 지역의 대표적인 봄 축제인 ‘쿠로메가와 하나마쓰리(黒目川花まつり)’가 열려, 강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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