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늦은 귀향’

로컬세계

kmjh2001@daum.net | 2014-09-04 18:08:00

로컬세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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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늦은 귀향이다. 북한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62년 만에 돌아왔다. 북한 지역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 유해는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격전지에서 찾아낸 것이다.

장진호 전투가 무엇인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인천 상륙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두만강까지 북진했지만 참전한 중공군에게 미군 제1해병사단과 미 육군보병 제7사단 일부가 포위돼 악전고투 끝에 흥남 부두로 도피 및 탈출에 성공한 전투가 아니던가. 이 때 장진호 곳곳에 잠입해 있던 중공군은 무려 7개 사단, 12만 명 규모의 병력이었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생과 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62년 만에 돌아온 12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

그 어렵고 다급한 상황에서도 미 해군의 전통대로 동료의 시신을 수거해 가기도 했다. 그러나 미처 챙기지 못한 전우의 시신은 부지기수. 이에 미국이 2000~2004년 북한에서 발굴한 유해가 긴 세월을 기다리고, 하와이를 거쳐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통한의 ‘귀대(歸隊)’다. 너무나 늦게 찾아와 영령들께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봉환이 이뤄진게 감동스럽다. 

국방부에 따르면 6.25 전쟁으로 국군 13만7000여명이 전사하고 3만2000여명이 실종됐다. 전사자 가운데 60%인 7만8000여명은 한국 지역에, 30%인 3만9000여명은 북한 지역에, 나머지 2만여명은 비무장지대(DMZ)에 묻혀 있다고 한다. 그동안 조국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친 이들의 유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당하다가 2000년부터 유해발굴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한 국군 장병 유해는 7000구에 못 미쳐, 아직도 13만여 구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문제는 북한이 유해 발굴과 송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북한의 행태는 군사정전위를 통해 시신을 송환하기로 규정돼 있는 정전협정 위반임은 물론 전쟁 중 사망 군인의 유해를 돌려줄 것을 규정하고 있는 제네바협약, 즉 국제인도법의 명백한 위반이다. 그 반면 대한민국은 파주시 적성면에 6.25 전쟁 당시 사망한 북한군과 중공군의 묘역을 조성해 놓고 있다. 심지어 침투 중 사망한 간첩의 시신도 이곳에 안치해 돌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하나 돼 이들 ‘영령’이나마 가족 품에 안기게 해야 한다. 가끔 현충탑 참배를 마친 후, 위패실에 들어가 보면 이름만 새겨진 위패판 앞에 무릎 꿇고 흐느끼는 유가족을 만나게 된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가슴 먹먹한 모습이다. 그곳에는 죽기 전 시신만이라도 찾을 수 있길 소원하는 피 맺힌 유족의 한이 향연(香煙)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참전용사 靑史에 기억하고 유족 보살펴야

군인은 나라를 위해 전장에 임하며 목숨으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한다. 이러한 희생에 보답하고 그 명예를 기리기 위해 국가가 해 온 유해 발굴 및 봉환 노력은 역사 속에 뿌리 깊다. 기원전에 이미 로마제국은 포에니 전쟁에서 패해 노예로 팔려간 병사들을 20년이 지난 뒤까지도 본국으로 귀환시켰고, 전사자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유품이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애국심에 불타던 시민군의 자리를 용병이 메웠을 때 로마의 쇠퇴는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유해 발굴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국군 유해 봉환에 도움을 준 미군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를 통해 전 세계에 산재한 미군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1조4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국가가 군인에 대해 보답하는 명예 회복 차원을 넘어서 애국심과 군 사기의 원천으로 강군·강국(强軍强國)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황금시절을 나라에 바친 젊은이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군복무 중 적의 포로가 돼 신음하거나 생명을 잃고 다친 청년들의 아픔이 망각되는 곳에 제대로 된 나라가 설 수는 없다. 시리도록 푸르른 6월, 우리는 참전용사들을 청사(靑史)에 기억하고 유족을 보살펴야 한다. “조국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고 다짐하며!

기사입력 2012.06.01 (금) 11:46, 최종수정 2012.06.01 (금) 11:45 [ⓒ 세계일보 & local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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