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순살아파트’ ‘통뼈아파트’ 신축 불안해요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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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27일 국토교토부는 지난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철근을 누락시킨 GS건설에 대해 영업정지 10개월이란 중징계처분을 내렸다. 이는 철근 누락 사실 확인과정에서 설계업체의 설계 잘못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공업체를 중징계한 것은 시공업체의 관리감독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철근 누락 관련 시공업체들에 대한 이어질 징계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공능력 10위권 건설사 신축도 하자 투성이
최근 LH공사 현장에서 철근 빼먹은 아파트 현장이 무려 20곳이나 발견되자 신축아파트 건축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은 대형건설사까지 불똥이 틔고 있다. 대형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에올라온 글들은 신축아파트 부실시공이 ‘자이’만이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시선이 팽배하다.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과 같이 유명한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에서도 부실시공이 나타는데 다른 곳들은 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은 '신축아파트보다 1980년대, 90년대 지어진 구축이 튼튼하다 더 라. 건설 자재값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한 2020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은 철근 빼먹은 곳이 많다 더라' 같은 글들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이런 온라인상의 글들은 최근 일련의 사고들로 더 이상 근거 없는 ‘괴담’이 아니게 됐다.
◆3년간 건설민원 42만 건, 480곳 현장 벌점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ON)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동안 국내 건설현장 508곳에서 부실시공이 적발돼 벌점이 내려졌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 건설사를 포함해 건설사 480곳이 벌점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 6월에서 2023년 5월까지 민원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아파트 부실시공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41만8535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민원분석시스템은 국민신문고 및 지자체 민원창구 등에 접수된 민원을 수집, 분석하는 권익위 시스템이다.
아파트 하자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국토부 산하 하자심사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공동주택 하자분쟁 조정신청 건수는 해마다 3000~4000여 건에 이른다. 최근 3년 만 살펴봐도 미감불량부터 석재파손, 누수와 결로, 악취·곰팡이, 미시공, 설계도면과 다른 시공 등 하자가 2020년 4245건, 2021년 7686건, 2022년 3027건 접수됐다.
◆상위 10위권 건설사도 지난 3년간 하자 7950건
대형 건설사가 짓는 비싼 브랜드 아파트도 하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종식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하자조정 신청건수는 7950건으로 집계됐다.
실제 올해 3월 GS건설이 시공한 서울 중구 서울역센트럴자이는 필로티 외벽 기둥 일부가 파손되는 하자가 있었고 최근 입주한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 동작구 흑석자이 등에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입주한 롯데건설의 노원롯데캐슬시그니처와 호화로운 커뮤니티시설로 화제를 모은 인천 검암역 로열파크시티 푸르지오 등에서도 누수피해 등이 나왔다. 준공 4년 차 강동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 단지에서는 철근 일부가 드러나는 하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들 대형건설사들이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품질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부실시공을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사건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나는 식으로 용두사미가 되어버린다. 건설업체들은 눈앞에 이익만 좇다보니 건망증이 걸리기 십상인 것이다.
◆대형사건 터질 때만 ‘안전품질’ 금새 ‘건망증’
건망증은 공기업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도 전이됐다. 시작은 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었다. 지난 4월 이 아파트 202동과 203동 사이 지하 1층 슬래브(지붕층·1104㎡)가 먼저 주저앉았고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하 2층 슬래브(185㎡)도 뒤이어 무너졌다.
국토교퉁부가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수조사를 한 결과 LH 사업현장 20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계약취소는 물론 기 입주한 아파트도 불안을 호소하며, 손해배상 청수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바람에 LH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공공분양 및 임대아파트입주자 모집도 제대로 성사되지 않고 있다. LH임직원들이 신도시아파트 건설 예정부지 정보를 빼내 땅 투기를 해온 사건이 터져 물의를 빚은 것이 엊그제 인데 이번에는 설계부터 감리, 콘크리트 타설에 이르기까지 시스템 전반에 걸쳐 후진적인 관행의 민낯을 드러냈으며, 전관예우의 이권 카르텔까지 밝혀지면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붕괴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무량판 구조물의 핵심 재료인 ‘전단보강근(철근)’ 누락이 지목됐다. 무량판은 ‘없을 무’와 ‘대들보 량’으로, 대들보가 없는 건축물 구조다. 일반적으로 기둥이 천장을 잘 지지하려면 기둥과 천장 사이에 보를 연결한다. 이를 라멘식 구조라고 한다. 기존 라멘식 구조와 달리 무량판 구조는 천장을 지탱하는 게 기둥뿐이다.
◆철근 누락은 왜? 엉터리 설계-감리에 기인
이 때문에 천장과 기둥을 결속시켜주는 전단보강근을 꼼꼼하게 감아 줘야 한다. 천장 하중을 견디지 못하면 기둥이 슬래브를 뚫는 일명 ‘펀칭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 자체에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보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지탱하는 방식인 무량판 공법을 도입했을 때 인건비는 물론 공사비가 크게 절감되고 층고를 비롯해 비교적 더 넓은 지하 주차장 공간 확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건설전문가들은 “시공회사가 무량판 시공을 하면서 공사비 절감을 위해 철근을 빼먹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변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삼성동 아이파크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타워’도 구조 설계에서 무량판 구조를 택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들어서는 코어가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 웬만한 건축물은 이 코어가 건물 전체의 균형을 잡아 주기 때문에 아주 심하게 부실시공이 된 부분이 없는 한 무량판 구조라고 해서 무너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량판 구조물의 핵심 재료인 철근은 왜 누락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시공사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철근을 빼먹었다”는 비난이 나오지만 사실이 아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전단보강근을 의도적으로 빼먹을 가능성은 없고, 설계와 감리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둥에 들어가는 전단보강근은 다른 철근보다 훨씬 얇고 단가도 싸 굳이 빼돌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검단 단지 붕괴 뒤 LH 전수 조사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된 20개 단지 사례를 보면 문제는 ‘설계-시공-감리’ 전 단계에 걸쳐 있었다. 특히 누락 원인이 파악된 단지 중 10개 단지에서 ‘설계 오류’가 확인됐다. 설계에서부터 전단보강근이 빠지는 것은 굉장히 비상식적인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무자격자들이 구조 설계 프로그램이나 시스템도 없이 엉터리로 설계했다는 얘기가 된다. 애초에 설계도면이 엉터리라면 감리에서 오류를 잡아 내기도 어려운 데다 현장에서는 코로나19 시기에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비자가 만료돼 고국에 돌아가면서 전문 인력이 부족해지자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발생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설계 다음 단계인 감리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LH가 직접 감리를 맡은 공사장의 82%에서 법이 정한 감리 인원 정원도 채우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감리는 공사 단계마다 설계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시정 또는 공사 중지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LH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7월 LH가 자체 감리를 맡은 공사 현장은 104곳이다. 이 가운데 85곳(81.7%)은 법이 정한 감리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상태로 공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19명이 배치돼야 하는 공사 현장에 4분의 1도 안 되는 4명만 투입한 현장도 있었다. 최근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이 확인된 단지 중 자체 감리를 한 4곳은 모두 필요한 감리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채 공사를 해 온 사실도 확인됐다. 장 의원실은 엉터리 감리를 해왔다고 지적했다.
설계-감리 과정에서 뿌리 깊게 자리한 이권 카르텔도 드러났다. LH는 업계에서 ‘엘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관예우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공공 주택 설계, 감리 업체 공모에서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곳이 상당수 일감을 따가는 경우가 많아 소위 전관예우에 의한 ‘인맥 수주’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LH나 건설사에서 퇴직한 인물이 감리 업체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LH의 철근 누락 아파트 15개 단지 중 일부는 LH 고위직 출신 인사가 취업한 업체에서 감리를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풍전등화 LH, 전관예우 이권카르텔 뿌리 뽑아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LH에서 근무한 2급 이상 퇴직자가 최근 5년간 재취업한 용역 업체 수는 9개사이고 이들 업체가 LH와 2019년부터 올해까지 계약한 설계·감리 건수는 203건, 2319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건설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을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오는 10월 LH 전관과 관련된 건설 이권 카르텔 해소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국민에게 불안과 실망을 안겨주는 LH는 더 이상 존속가치가 없는 것 같다”며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후폭풍에 휩싸인 LH는 풍전등화다. 공직자-건설업자간 수십 년 이어진 먹이사슬의 카르텔을 끊지 않고서는 투명성 제고가 어렵다. 분골쇄신 하지 않으면 LH명예회복은커녕 존재조차 획인하기 어려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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