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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컨트롤타워 어정쩡 장관 셋 공동조직위원장
’네 탓 공방’ 한국형 부실행정 민낯 드러내
새만금 잼버리는 컨트롤타워 조차 모호하다. 행정안전부, 문화체육부, 여성가족부 등 장관 셋이 행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있다. 이러다 보니 모두의 책임이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처럼 돼 버렸다. 부실 운영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따져 나라 망신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려내 엄벌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나라 망신은 여러 매체를 통해 확산됐다. “꿈이 악몽으로 변했다”(로이터통신), “끔찍하다. 난장판이다”(가디언), “유쾌한 잔치, 즐거운 놀이의 잼버리가 재난으로 낙인 찍혔다”(인디펜던트)는 등 세계 각국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잼버리 행사가 열리고 있는 현장에는 참가자들이 폭염과 벌레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가 하면, 물이 안 나오는 샤워 시설 및 화장실의 악취, 검푸른 곰팡이 핀 달걀, 부실한 배식 등으로 영국 등 몇 개 나라는 조기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바람에 참가국은 159개국에 4만3000여명이었으나, 실제 대회 참가자는 3만여 명에 불과했다.
◆"곰팡이 달걀 줬다. 진료실 부족 링거 복도에서 맞았다“
잼버리 참가자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부실 운영에 대한 정보를 생생하게 알렸다. 한 참가자는 인스타그램에 “어제(2일) 열사병으로 진료소에서 링거를 맞고 왔다”라며 “서울 프랜차이즈 카페 매장의 절반도 안 되는 응급실 크기 때문에 베드가 부족해 복도에서 링거를 맞았다. 진료 또한 복도 의자에서 앉아서 봤다”고 썼다. 그러면서 “실신한 외국인이 계속 실려 오는데 전쟁통이 따로 없다”라며 “분쟁지역 진료소인 줄 알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중3 자녀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에 참석했다는 이현운씨는 샤워시설은 남여 공용이고 전기 시설이 부족해 휴대전화 충전할 곳이 없으며 화장실 수도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또
한 학부모는 “행사가 끝난 뒤 물이 안 나와 새벽 2시까지 아이가 못 씻고 있다”라며 “참가비를 내고 사기를 당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는 “화장실은 관리가 안 돼 역겨워 사용을 못 할 정도이고 밥은 맛이 없고 양이 적다. 매장에선 물건을 비싸게 판다”라며 “아이가 '제발 집에 가고 싶다'고 데리러 오라고 한다. 외국인 친구들도 '너희 나라 수준이 이 정도냐'고 하는데 창피하다고 한다”고 썼다.
잼버리 내 한 부스에서 일하다 2일 열사병으로 쓰러졌다는 한 20대 근무자는 이날 통화에서 “응급실이 너무 작고 자리가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링거를 맞던 외국인도 봤다”라며 “다들 불만 터트릴 힘이 없을 정도로 더위에 지친 상태라 초죽음 상태로 보였다. 정말 처참했다”라고 전했다.
잼버리 공식 SNS에는 “잼버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라며 “모든 것이 컨트롤되지 않고 있다. 음식은 없고 태양을 피할 방법도 없다. 진정한 혼돈”이라는 외국인 부모들의 성토도 이어지고 있다.
◆'화상벌레' 닿기만 해도 벌겋게 물집 생기고 통증
열악한 환경에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 등에 따르면 4일까지 잼버리 관련 환자는 줄잡아 1500여명에 이른다. 특히 개영식(2일) 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야영지로 1.5㎞를 걸어가는 과정에서, 도로에 조명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발목을 다치고 넘어지는 사고가 속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 유형별로는 벌레 물림 환자가 600여명으로 가장 많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전북 지역에서 서식하는 일명 화상벌레(청딱지개미반날개)에 물린 것으로 알려졌다. 화상벌레는 페데린(Pederin)이라는 독성 물질을 분비해 피부가 살짝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하다.
온열질환자(4일 현재 400여명)도 속출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화장실 위생 문제로 참가자들이 화장실에 안 가려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탈수 증상이 더 심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러다 보니 여성 청소년 분야 정책의 주무부처인 여가부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SNS에 “잼버리 개최를 세게 홍보했으면 책임도 확실해야 한다”라며 비판했다.
조직위원회는 논란이 커지자 폭염과 태풍 카눈 핑계로 잼버리를 새만금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한다고 7일 공식 입장을 밝혔다. 잼버리 참가 전원이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이동 대상 인원은 156개국 3만6000명이다. 이들은 버스 1000여 대에 나눠타고 새 숙소로 이동한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새만금 철수를 ‘퇴소개념’으로 봐달라”며 “잼버리는 이제부터 영지 밖 활동에 치중하게 되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앞으로 진행될 프로그램 개발을 하고 있다. K팝 콘서트와 폐영식까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재해 경고한 KIEP 지적, 왜 안 지켰나
어쨌거나 잼버리의 총체적 부실 운영은 자연재해와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가 미숙한 탓에서 비롯됐다. 새만금 잼버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유치를 추진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8월 개최가 결정됐다. 사실 새만금 잼버리는 박근혜 정부 때(2016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타당성 조사가 있었다.
당시 KIEP보고서는 행사 위험 요인의 하나로 자연재해와 안전사고를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2023년 세계잼버리가 열리는 8월1일부터 12일까지는 한반도에 무더위가 가장 심하고 태풍과 호우로 인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쉬운 기간이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철저해야하고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덧붙여 “새만금처럼 간척지에서 열린 2015년 일본 세계잼버리를 벤치마킹하라”며 “일본도 잼버리 기간에 날씨가 매우 무더웠으나 2013년 사전대회의 경험을 토대로 쉼터용 텐트를 충분히 마련하고 물 제공량을 늘리며 식자재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무더위와 관련한 특별한 사고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광 잼버리’라도 잘 치러 국제 망신 만회를
이제 잼버리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동함에 따라 본연의 잼버리 행사는 취소되고 ‘관광 잼버리’로 변질되게 됐다. 한국을 잘 홍보하려는 당초 유치 목적은 물 건너갔다. 비정상투성이의 새만금 잼버리는 준비에서부터 운영까지 한국형 부실 행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홍보는커녕 국제 망신살을 자초하고 말았다. 대회 유치 행사 비용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물 부족 사태 등이 벌어 지자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67억원의 예비비도 긴급 수혈됐다. 행사가 끝나면 예산이 적절히 사용되었는지, 준비-운영 부실 행정의 책임도 무겁게 따져야 한다. 남은 일정은 4일. ‘관광 잼버리’라도 알차게 치러 실추된 국제 망신을 다소나마 만회하길 신령님께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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