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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이황 집터. 최종욱 기자. |
원래 서소문은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의 4개의 작은 성문.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에 있던 서남향의 간문으로 소덕문·소의문이라고도 해서 지금의 서소문동 큰 길이 원래의 서소문이 위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광희문과 함께 시신을 성 밖으로 운반하던 통로로 사용된 곳인데(다음백과) 지금은 빌딩 숲으로 꽉찬 거리가 된지 오래라서 하루에 이 길을 오가는 시민들만도 수만 여명에 육박한 도심의 거리 그 차체다.
날마다 이 길을 지나는 직장인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사람에 치이고 주차장처럼 늘어선 큰길 자동차에 시선을 뺏겨 퇴계 이황의 집터 표식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지하철 시청역 2호선 쪽에서 개찰을 하고부터 10번 출구 쪽으로 정확히 100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앞에 인도 왼쪽에 허리춤 높이 정도 크기의 안내 표식이 서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공휴일과 방학 때 서울시립 미술관 관람을 가려고 삼삼오오 계단을 오르다가 헐떡이는 숨을 고르느라 지나쳐 버리기 쉬운 위치다.
그래서 누군가가 콕! 집어서 장소를 알려 주지 않으면 서소문 어느 길 한쪽에 표식 된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이 공직생활을 할 때 살았던 집터를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다.
안동의 도산서원이나 천원화폐에 퇴계이황의 초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책 속에서 배웠던 퇴계 이황 생각에 잠시 머물듯이 서울의 심장부 서소문에 퇴계 이황이 살았던 옛 집터 표식을 본 사람도 발걸음이 가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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