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
한편 인구가 줄면 가구도 감소하기 마련이지만, 고령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면서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가 오는 2038년 1,000만 선을 넘어서고, 2052년에는 전체 가구의 절반을 웃돌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는 2034년 2.0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2052년 1.81명까지 줄어들게 된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2일 발표한 ‘2022~2052년 장래 가구 추계 전국편’에 따르면 올해 전국 가구 수는 2,218만 가구에서 2041년 2,437만 2,000가구까지 늘어나 정점을 기록한 이후 감소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렇듯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사회구조가 1인 가구 중심으로 빠르게 개편됨에 따라 소비 행태나 산업구조도 격동기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취업자 수가 사상 처음 청년 취업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생·고령화의 진전에 따른 인구 구성이 바뀐 영향이 크지만, 노후 준비 부족 등으로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려는 노인들이 많아진 것도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 9월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월평균 394만 명으로 15~29세 청년 취업자 수 380만 7,000명보다 많아졌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9년 이후 처음이다. 1989년 1분기에는 청년층 취업자는 487만 4,000명이었는데 65세 이상 취업자 수 38만 2,000명에 비해 청년층 취업자 수가 무려 12.76배에 달했었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크다.
고령 취업자 증가의 대역전 근저에는 저출생·고령화의 장기화가가 자리한다. 주민등록인구 통계가 처음 집계된 1992년 말에는 고령층 인구가 236만 명으로 청년층 인구의 18%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 인구는 2022년 2월에는 고령층 인구가 894만 명을 넘어서며 청년층 인구를 추월했다. 지난달에는 전체 인구의 19.6%인 1,006만 8,440명으로 늘었다. 초고령사회에 턱밑까지 바짝 다가선 것이다. 요즘 60·70대의 건강이 웬만한 청년층 못지않아 일하는 보람을 찾아 일터로 뛰어드는 ‘액티브 시니어’도 늘어나는 추세에다 노후 대비를 위해 일하려는 고령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1일 발표한 ‘2024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4년 8월 15세이상 취업자는 2,880만 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2만 3,000명(0.4%) 증가하였고, 고용률은 63.2%로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그런데 60대 이상에서만 23만 1,000명 증가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증가 폭이 컸다. 증가 폭이 둘째로 많은 30대(9만9000명 증가)의 2배 이상이다. 20대와 40대는 오히려 각각 12만4000명, 6만8000명 감소했다. 이렇게 노인 인구가 적극적으로 취업에 나서면서 지난달 증가한 취업자 26만 1,000명 중 무려 88.5%인 23만 1,000명은 60대 이상이었다.
한국의 ‘고령층 취업 열풍’은 선진국 가운데서도 워낙 두드러진다. 65세 이상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2022년 들어 37.3%로 집계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1위로 올라섰다. 이어 2위 아이슬란드(32.6%)와 3위 일본(25.6%), 4위 뉴질랜드(25.2%) 등의 순이었다.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한 한국의 노인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달 4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세계 최악의 저출생에 따른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고령층의 경제활력을 높여 생산성 공백을 메울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고령층 10명 가운데 4명이 취업했거나 취업하지 않았더라도 일하려고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경제적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득이 일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선진국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노인 빈곤율은 66세 이상 중 소득이 중위 소득(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딱 중간 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은 2020년 이 비율이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렇듯 노인 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노후소득 불안을 해소하려는 고령층이 늘어난 것도 고령 취업자 증가의 배경이자 큰 원인이다. 연금 수령액이 월평균 60만 원대로 적은 데다 정년이 60세인 한국에선 정년퇴직 이후 최소 3년(1961~1964년생 기준)에서 5년(1969년생 기준)에 달하는 ‘소득 크레바스(Crevasse │ 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가 생긴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인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1961∼64년생은 63세, 1965∼68년생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로 퇴직 후 3∼5년의 ‘소득 공백기’인 보릿고개를 넘기려면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감지덕지 마다하기 어렵다. 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그 액수가 생계비를 충당하는데 턱없이 모자란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의 연금 수급액은 월평균 65만 원에 불과하다. 이렇듯 그 액수가 적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선 기초적 생활도 영위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은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안정성이 떨어지고, 쓰레기 줍기나 잡초 뽑기 같은 봉사 업무가 다수를 차지한다. 당연히 소득도 너무 낮다. 정부가 제공하는 103만 개 노인 일자리의 월수입은 29만∼76만 원 정도이고, 구직 포털에 지원서를 내는 고령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음식점이나 빵집도 상대적으로 젊은 40, 50대를 선호한다. 그나마 일할 사람이 부족한 지방 중소기업의 60, 70대 기술자들이 60세 이후에도 대우받으며 일하는 편이다. 당연히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잡초를 뽑는 단순한 저임금 일자리는 고령층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식사나 가사를 지원하거나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돕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 일하게 해야 한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50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0%를 넘어선다고 한다. 복지·연금에 기대는 인구가 이렇게 늘어나면 국가 재정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버틸 수 없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일자리인데 평생 해왔던 일을 정년 후 급여가 줄더라도 지킬 수 있다면 최선이다. 우리나라보다 한참 앞선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2006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기초연금 개시 연령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 ▷정년 연장, ▷계속 고용, ▷정년제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걸 의무화했다. 60세 정년을 맞은 근로자가 희망하는 경우 2000년부터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고, 2021년에는 근로자가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정년연장과 재고용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신설했다. 독일도 2029년까지 67세로, 스페인은 2027년까지 67세로 정년을 늘려가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들 국가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장기적으로 법정 정년연장도 긍정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고령층이 30~40년씩 쌓은 전문성이 사장되지 않고 숙련된 노하우와 노련한 경험을 되살려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 씁쓸한 노인 빈곤국의 오명만은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년들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소홀함이 없도록 정책적 조합과 융합 그리고 조화를 전제로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엇박자)’해소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갈리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올해부터 1964∼74년생 ‘2차 베이비 부머’ 954만 명이 11년에 걸쳐 은퇴한다. 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의 성장률까지 달라질 전망이다. 건강 상태가 좋고, 교육 수준도 높은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쓰레기 줍기 같은 단순 업무 대신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활기차게 일할 일자리를 제공할 방법을 우리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는 지난 5월 22일 발간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노동시장에 초점을 맞추어 장차 인구변화가 어떤 사회경제적 충격을 가져올지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한다. 특히 “일터에서 젊은이가 사라진다”라며 “노인을 위한 나라, 노인이 없는 사회”를 주장하며 “더 건강하고 더 교육받고 더 의욕적인 노인의 시대가 온다”라고 한다. “고령자에게 친화적인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친화적이다”라며 “나이를 따지지 않는 문화가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선한다”라고 역설한다. 나이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바라보는 제도와 관행을 서둘러 만들고 나이를 따지지 않는 성과와 직무를 반영하는 합리적인 급여체계를 도입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고령자 친화적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가야만 한다. 청년세대의 양질의 일자리도 챙기면서 더불어 동행·동반·동역의 대장정에 함께 나아가야만 한다.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