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행사 넘어 도시 브랜드 실험장으로 진화… 상권·관광 흐름도 달라졌다
전통축제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익숙한 공연과 먹거리만 반복하면 사람들은 금세 등을 돌린다. 지방 축제 상당수가 ‘하루 다녀오는 행사’에 머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남원 춘향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조금 다른 흐름을 만들고 있다.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시에 머무르게 하는 방향으로 축제 구조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시와 춘향제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열린 제96회 춘향제 방문객은 150만8565명으로 집계됐다. LG 통신 데이터 기준으로 20분 이상 체류자를 분석한 수치다. 3년 연속 100만 명을 넘기며 다시 한번 전국 대표 전통축제라는 존재감을 확인했다.
하지만 올해 춘향제에서 눈에 띈 건 단순 방문객 숫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예년보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로 광한루와 요천 일대는 밤 늦게까지 한복을 입은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붐볐다.
교통 흐름 변화도 확인됐다. 축제 기간 남원 인근 고속도로 IC 통과 차량은 22만3000여 대로 지난해보다 늘었고, 남원역 철도 이용객과 무료 셔틀버스 이용객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셔틀버스 이용객은 전년 대비 70% 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차량 중심 축제에서 대중교통과 연계된 체류형 관광 구조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숙박업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광한루원 인근에서 숙박업을 하는 한 업주는 “예전에는 당일치기 손님 비중이 높았는데 올해는 1박 이상 머무는 예약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밤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저녁 이후에도 거리에 사람이 계속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상권 분위기도 달라졌다. 광한루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축제장 안에서만 소비가 끝나는 느낌이 예전보다 줄었다”며 “밤 시간대 손님이 늘면서 주변 상권까지 유동 인구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남원시는 몇 년 전부터 춘향제를 단순 공연형 행사에서 시민 참여형 축제로 전환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올해는 그 흐름이 더 뚜렷했다. 축제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대동길놀이’에는 6000여 명 시민이 직접 참여했고, 읍면동 주민들이 준비한 거리 퍼레이드와 공연도 축제 중심축 역할을 했다.
관광객이 구경만 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움직이는 축제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실제 축제장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관광객에게 프로그램을 안내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야간 콘텐츠 강화 역시 체류시간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광한루 달빛야행과 요천변 야간 프로그램은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이끌었다. 전통 한복 체험과 야간 조명이 결합되면서 SNS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올해 춘향제는 전통이라는 소재를 무겁게만 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차별화됐다. 국악과 현대 퍼포먼스를 결합한 무대, 글로벌 춘향선발대회, 시민 참여형 거리 콘텐츠 등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세대 간 거리감도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먹거리 운영 방식 변화도 눈길을 끌었다. 가격 논란이 반복됐던 일부 지역축제와 달리, 남원시는 먹거리 부스 정찰제와 메뉴 표준화에 집중했다. 관광객 사이에서는 “지역축제 음식 가격 부담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친환경 운영 성과 역시 분명했다. 시는 올해 다회용기 45만 개를 도입해 약 35톤의 쓰레기를 줄였다. 행사장 주변에 일회용 쓰레기가 넘쳐나던 과거 축제 풍경과 비교하면 현장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다.
지역 축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춘향제가 최근 몇 년 동안 ‘전통행사’에서 ‘도시형 문화 콘텐츠’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순 행사 규모 경쟁보다 시민 참여, 체류시간, 야간관광, 친환경 운영 같은 도시 전략 요소들이 결합되고 있다는 의미다.
남원시는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춘향제 100주년 준비에 들어간다. 규모를 키우는 방식보다 남원만의 문화 자산과 시민 참여를 연결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겠다는 구상이다.
최경식 남원시장은 “춘향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머무르고 즐기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며 “앞으로도 남원만의 색깔을 담은 콘텐츠를 꾸준히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올해 춘향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화려한 무대보다 밤늦게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관광객은 공연 하나만 보고 떠나지 않았고, 시민은 축제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움직이는 주체가 됐다. 남원은 지금 ‘전통을 보존하는 도시’에서 ‘전통으로 사람을 머물게 하는 도시’로 방향을 바꾸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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