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곳에서 맞이한 ‘광복’
이 소식을 들으려 그토록 모진 목숨을 이어왔던가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일왕의 항복 선언은 반만년 역사상 가장 뜨거운 눈물이 되어 흐르나갔다. 하지만 그 감격의 무게는 저마다 달랐다. 평생을 조국에 바친 독립운동가 문윤국(文潤國) 지사에게, 그리고 그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가족들에게 광복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거대한 생의 보상이었다.
살아서 이 날을 보다니
상해와 국내를 오가며 이념적 갈등과 밀정의 위협을 버텨냈던 문 지사에게 광복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그는 거리에 쏟아져 나온 만세 소리를 들으며 가장 먼저 정주 오산학교의 교정과 안동역 검문소의 차가운 공기를 떠올렸다.
독립신문을 숨겨 나르던 긴박했던 밤들, 독립 자금 7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상 대대의 땅을 팔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는 승리의 기쁨에 앞서, 먼저 간 동지들을 향한 죄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자네들이 보았어야 할 빛인데…”
투사 문윤국이 광복의 순간에 올린 가장 경건한 기도였다.
이제는 숨지 않아도 되는구나
고향 정주에서 일경의 감시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가족들에게 광복은 ‘해방’인 동시에 ‘안도’였다. ‘불령선인의 자식’이라 손가락질받으며 학교에서 쫓겨나고, 집안 곳곳을 파헤치던 순사의 구둣발 소리에 가슴을 졸이던 세월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문 지사의 아내는 서랍 깊숙이 숨겨두었던 낡은 태극기를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남편이 조국을 위해 집을 떠난 후,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견뎌온 가난과 외로움이 그 태극기의 주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자식들에게 이제 아버지는 ‘가족을 버린 가장’이 아니라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돌아올 존재였다. 그들에게 광복은 비로소 ‘당당하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환희 속에 깃든 고독
거리는 온통 축제였으나, 문 지사의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먹구름이 드리웠다. 광복된 조국은 다시 좌우의 대립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상해에서 목격했던 지긋지긋한 파벌 싸움이 재현될 조짐을 보며, 그는 권력의 중심부 대신 다시 한번 ‘정결한 길’을 고민했다.
그렇기에 그는 화려한 환영회나 관직의 제안을 뒤로하고, 조용히 다시 짐을 챙겼다. 자신이 꿈꿨던 독립은 누군가의 위에 서는 권력이 아니라, 모두가 화평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광복의 환호가 정점에 달했을 때, 그는 이미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골로의 ‘은둔’이었다.
광복이 남긴 숙제
문윤국 지사와 그의 가족이 맞이한 광복은 완성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투사는 총을 내려놓았고, 가족은 눈물을 닦았다. 비록 35년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목놓아 만세를 불렀다.
그 만세 소리는 지난 세월의 고통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불꽃이 되어 그렇게 온 나라를 덮었다. 그것은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스러져간 동지들을 향한 진혼곡이었으며,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견뎌온 이들을 향한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러나 환희의 태극기 너머로 문 지사는 보았다. 진정한 광복이란 단지 외세가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상처받은 모든 영혼이 비로소 평안에 이르는 길임을. 빛이 남긴 그 숭고한 숙제를 가슴에 품은 채, 노병은 다시 조용히 길을 나섰다.
【企画連載 文潤國 ⑪】 ついに響いた光復の歓声、その歓喜と苦悩の間で
1945年8月15日、奪われた野に訪れた春 それぞれの場所で迎えた「光復(解放)」 「この知らせを聞くために、これほどまでに過酷な命を繋いできたのか」
【東京=李勝敏 特派員】 1945年8月15日正午、ラジオから流れた天皇の降伏宣言は、半万年の歴史の中で最も熱い涙となって流れた。しかし、その感激の重みは人それぞれに異なっていた。生涯を祖国に捧げた独立運動家、文潤国 志士にとって、そして彼の影として生き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家族にとって、光復は単なる事件ではなく、壮大な生の報いであった。
闘士の視線:「生きてこの日を拝めるとは」
上海と国内を行き来し、理念的葛藤と密偵の脅威に耐え抜いた文志士にとって、光復は文字通り「奇跡」であった。彼は街に溢れ出した万歳の声を聞きながら、真っ先に定州 五山学校の校庭と、安東駅検問所の冷たい空気を思い出した。
聖書に独立新聞を隠して運んだ緊迫した夜、独立資金7万ウォンを工面するために先祖代々の土地を売った瞬間が走馬灯のように駆け巡った。彼は勝利の喜びに先立ち、先立った同志たちへの罪悪感に項垂(うなだ)れた。
「君たちが見るべき光だったのに……」
闘士・文潤国が光復の瞬間に捧げた最も敬虔な祈りであった。
家族の視線:「もう隠れなくてもいいのだ」
故郷の定州で日本警察の監視を全身で受けてきた家族にとって、光復は「解放」であると同時に「安堵」であった。「不逞鮮人の子」と指を差され、学校を追われ、家の中をくまなく掘り返す巡査の靴音に胸を締め付けられた歳月が、ついに終わったのである。
文志士の妻は、引き出しの奥深くに隠していた古びた太極旗を取り出し、埃を払った。夫が祖国のために家を去った後、一人で子供たちを育てながら耐え抜いた貧困と孤独が、その太極旗の皺の中に克明に刻まれていた。子供たちにとって、今や父は「家族を捨てた家長」ではなく、「国を救った英雄」として帰ってくる存在であった。彼らにとって光復は、ようやく「堂々と名を呼べる自由」を意味していた。
歓喜の中に宿る孤独
街は祝祭一色であったが、文志士の心の一角には重い暗雲が垂れ込めていた。光復された祖国は、再び左右の対立に揺れ始めていた。上海で目撃した、あの忌まわしい派閥争いが再現される兆しを目の当たりにし、彼は権力の中心ではなく、再び「清らかな道」を模索した。
それゆえ、彼は華やかな歓迎会や官職への誘いを辞退し、静かに再び荷をまとめた。彼が夢見た独立は、誰かの上に立つ権力ではなく、誰もが和やかに笑い合える世界だったからだ。光復の歓喜が絶頂に達した時、彼はすでに次の歩みを準備していた。それは、誰も訪れない深い山奥への「隠遁」であった。
光復が残した宿題
文潤国志士とその家族が迎えた光復は、完成ではなく新たな始まりであった。闘士は銃を置き、家族は涙を拭った。たとえ35年の傷跡は容易には癒えないとしても、それでも彼らは声を限りに万歳を叫んだ。
その万歳の声は、過ぎ去った歳月の苦痛を洗い流す「浄化」の炎となり、国中を覆った。それは冷たい監獄の床で散っていった同志たちへの鎮魂曲であり、「独立運動家の家族」という過酷な刑罰に耐えてきた人々への熱い涙であった。
しかし、歓喜の太極旗の向こうに、文志士は見ていた。真の光復とは、単に外勢が退くことではなく、この地の傷ついたすべての魂がようやく平安に至る道であることを。光が残したその崇高な宿題を胸に抱いたまま、老兵は再び静かに旅立った。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