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회천 A15지구 전체기둥 154개 통째 철근 빼먹어
윤대통령 “전수조사로 건설 이권 카르텔 뿌리 뽑아라”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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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규 대기자 |
아파트는 말 그대로 공동주택이다. 사람이 집단으로 입주해 생활하는 주거공간이다. 부실시공은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재산피해를 안겨준다. 과거 와우아파트 붕괴사고(1970년 4월 8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년 6월 29일)의 대참사를 벌써 잊었단 말인가.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50년, 삼풍백화점 붕괴 25년의 세월이 흘렸는데, 아파트부실시공의 ‘흑 역사’를 언제까지 쓸 것인가.
최근 국토교통부가 도급순위 2위 GS건설이 시공한 인천검단신도시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철근을 빼먹는 등 부실시공으로 인해 지난 4월 붕괴되자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해 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98개 단지를 전수조사 했다. 그 결과 경기도 양주시 회천동 A15지구 임대아파트의 경우 무량판 기둥 154개 모두에서 철근을 빼먹은 사실이 적발 됐다. 전체조사대상 98개 단지 중 16.5%에 해당되는 15개 단지에서도 있어야할 전단보강근(철근)이 빠져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주차장 부실시공이 확인된 15개 단지 중 5개 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쳤고, 3개단지는 입주가 진행 중에 있다. 또 1개 단지는 다음 달 입주예정이며, 나머지 6곳은 아직 공사가 진행중이다. 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만으로 하중을 버티는 구조여서 철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설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누락이 발생했다고 하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기둥이 내력벽 구실을 하는 무량판 구조는 기존의 벽체 구조보다 주차장 공간을 넓히기 유리하다. 동과 동 사이의 벽을 없애 하나의 거대한 주차장으로 연결할 수 있어서 최근 대규모 아파트 위주로 널리 도입됐다. 또한 방과 방 사이의 칸막이가 기둥 노릇을 하는 벽식 구조와 달리, 기둥을 세운 뒤 칸막이는 벽돌과 시멘트 등으로 따로 설치한다. 공사비가 저렴하고 층간소음이 줄어드는 등 장점이 있어 아파트 세대별 구조에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거나 짓고 있는 민간 아파트 약 300개 단지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진행한다고 하니 철근 누락 단지가 추가로 적발될 기능성도 있다. 이 참에 한곳도 빠뜨리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서 불안에 떠는 입주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붕괴 사고가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와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도 무량판 구조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 이후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무량판 구조의 특성상 연쇄 붕괴에 의한 다수의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며 이를 ‘특수구조건축물’로 정의하자고 제안했으나 국토부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관 취업한 감리회사에가 감리 맡겨 특혜의혹
가장 큰 문제는 기둥만으로 천장을 떠받치다 보니 설계나 시공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공법인데도 총체적으로 부실이 발생했고, 이를 관리 감독할 감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LH사장이 인정했듯이, 설계와 감리에 책임이 있는 발주처가 이를 사실상 방치한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LH와 설계 및 감리 업체 사이에 ‘윗선 상납’등 나쁜 관행이 자리 잡아 ‘먹이사슬’ 같은 불법적 요소가 있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 기자들의 현장취재에서 LH 퇴직자들이 몸담고 있는 감리회사 등에 수의계약으로 감리를 맡겼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전관예우 오랜 관행이 ‘먹이사슬’ 악습양산
즉 ‘전관예우’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주었다는 지적이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밀어주고 보답(상납)하는 피라미드 식 형태의 먹이사슬의 악습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먹이사슬을 끊지 않으면 아파트 부실시공의 폐단을 차단하기는 어렵다. 이 참에 시공 단계에서 철근을 누락한 이유와 책임자도 하나하나 끝까지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반세기의 세월이 흘렸는데, 아직도 후진국 형 인재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정부 당국자와 기업인들 모두 뼈저리게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아파트 부실시공은 왜 반복되나
지난해 1월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광주 아파트가 38층부터 23층까지 폭탄을 맞은 듯 무너져 내렸다. 15개월 뒤인 올해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의 지하1·2층 주차장 상부가 붕괴했다.
지난해 11월 8개 동 847가구가 입주예정이었던 광주 아파트는 철거 뒤 준공까지 5년10개월이 소요돼 최소 2029년에나 입주가 가능하고, 검단신도시 아파트는 올해 12월 17개 동 1666가구가 입주 예정이었으나 철거 뒤 재시공이 결정되면서 5년 뒤인 2028년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두 아파트의 붕괴 원인이 모두 부실시공이라고 발표했다. 철거와 재시공 등에 현대산업개발은 3750억원, GS건설은 5500억원의 추가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따지고 들면 모두가 국익에 반하는 범법행위인 것이다.
새 아파트에 입주할 꿈에 부풀었던 2500여 가구는 앞으로 5년이 넘는 긴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현대산업개발과 GS건설은 입주예정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겠다고 하지만, 부실시공과 입주 지연으로 인한 물질·정신적 피해를 오로지 감당해야 할 입주예정자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두 아파트 사고를 조사한 사고조사위원회 등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부실시공을 발생케 한 원인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았고, 설계를 임의 변경해 작용 하중이 설계보다 2배 이상 증가했으며, 동바리(가설 지지대)를 조기 철거해 하중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재수 없어 걸려들었다“ 안일한 자세도 문제
이렇듯 매번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능한 저렴한 공사비로 아파트를 건설하고, 안전이나 시공품질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무조건 빨리빨리 공사한다는, 수십 년을 이어져 온 건설공사 관행이 그 원인이다. 정부와 건설사를 비롯해 공사관계자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은 채, 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과 제대로 된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다. 아파트를 시공하는 건설사는 공사 기간을 단축해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 LH 등 공공 발주기관이나 민간 시행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빨리 준공하기만 바랄 뿐이다. 발생하는 사고는 ‘재수 없어서 발생하는 사고’라는 안일한 건설사의 인식을 정부도 그대로 방관한 채 묵인했고, ‘단기간 공사완료’는 대한민국 건설산업의 수치스러운 경쟁력이 돼버렸다.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와 전문가는 부실시공이 문제이니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다. 아파트 부실시공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 제대로 된 ‘건설안전특별법’ 3년째 국회서 낮잠
공사의 주체인 발주자, 시공 건설사, 노동자, 지방자치단체 등이 공동으로 제대로 된 감사와 감독역할을 규정한 법안인 ‘건설안전특별법’이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에 있다. 이렇듯 건설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보듯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아파트 주차장 부실시공을 전수조사해 건설업계가 국민들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탐욕만 채우는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아라”고 국토교통부에 지시했다. 이에 원희룡 장관은 전수조사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먼저 국민들에세 사죄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설계와 감리책임자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징계조치와 함께 즉각 수사의뢰 하는 한편 건설분야 이권 카르텔에 대한 전반적인 혁신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정의구현의 실천단체인 경실련은 GS건설이 시공한 검단아파트 붕괴사고 원인은 LH의 전관예우 특혜 탓이라며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다. LH에서도 감사원 감사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때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국민안전이 담보된 아파트부실공사를 과감히 차단하고 만행된 부조리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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