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원전수출 1000조원 지원특별법 제정”지시
원전기술 생태계 복원 서둘지 않으면 공든탑 ‘도로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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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하지만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높고 가파르다. 장현승 수자원 체코-폴란드사업실장은 “일부에서는 체코 원전 수주를 놓고 9부 능선을 넘었다고들 하지만 이제 막 반환점을 통과했다”고 말한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장 실장은 8년 전 처음 체코 측 실무자를 만났는데 그는 한수원은 물론 한국도 잘 몰랐다”며 “그런 그가 지금은 발주처의 사장이 됐다”고 전했다. 원전 수출 사업은 그만큼 ‘장기전’이라는 얘기다. 그는 “8년을 달렸지만 아직 본계약까지도 못 갔다”며 “이후 건설 기간 등을 고려하면 20여 년은 족히 걸리는 게 원전 수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본 계약예정일은 내년 3월로 잡혀있다. 장 실장의 설명대로 원전 수출 사업은 장기전이다. 바꿔말하자면 체계적인 수출 로드맵을 세우지 않으면 K원전의 지속 수출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폴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로의 릴레이 수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고 원전 사업 확대를 반대하는 야당과의 협력을 조속히 이끌어 내야 한다. 따라서 원전이 정치적 이념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국민들도 원전 수출이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발주 국가에굳건한 신뢰를 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원자력선진화법을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한 원전 전문가는 원전수출지원법 등을 만들어 원전 수출을 체계적이고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번 체코 원전도 마찬가지지만, 원전을 수출하면 인력 채용이나 공장 증설 등을 해야 하는데 이게 얼마나 체계적으로 진행되느냐가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이 같은 후속 조치를 제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면 K원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지원법이 만들어지면 중소기업 지원 등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도 도움이 될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2020년 국내 전체 산업 인력은 3만7232명에서 3만5276명으로 5% 줄었는데, 원자력 공급 산업체 인력은 2만2355명에서 1만9019명으로 15%나 쪼그라들었다. 올해 1학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입학생이 3명, 울산과학기술원(UNIST) 원자력공학과 입학생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수출지원법이 마련된다면 중소기업 지원이 가능해져 생태계 복원이 빨라질 수 있고,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가칭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내년 3월 최종 계약 시점까지 아직 남은 과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남은 과제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수익 극대화할 원전 기자재 수출 협상. 둘째, 美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의 중재. 셋째, 사용후 핵연료 처분 시설 마련 등이 발등의 불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구성된 체코 특사단을 파견했다. 특사단을 보내면서 양국협력을 더 강화하자는 내용의 윤 대통령 친서도 전달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30일 국무회의에서 “한수원의 체코원전 수주는 100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원전시장에 진출할 강력한 교두보를 마련한 계기가 됐다”며 “우리 원전 사업이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고 흔들림 없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원전산업지원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지원법이 마련되면 원전 생태계 복원과 수출지원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 제3, 제4의 글로벌 원전 수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및 테믈린 지역에 1200메가와트(MW) 이하 원전 최대 4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한국은 두코바니 원전 2기에 대한 우선협상자가 됐고, 내년 3월 최종 계약이 성사되면 남은 2기도 체코 전력 수요 등을 살펴 추가 진행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체코 언론은 한국의 수주전략은 저렴한 덤핑이라고 지적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원전을 제대로 건설 하겠느냐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우선 한국은 수주전에서 프랑스EDF 대비 30~5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원전 수주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원전 관련 핵심 기자재 수출을 통해 추가 이익을 얻겠다는 전략이었다.
산업부와 한수원은 우리나라 기업의 터빈·원자로냉각재펌프 등 핵심 기자재를 추가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 기자재 계약은 국제 입찰로 진행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와 또 한 번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체코 기업들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요제프 시칼라 체코 산업부 장관은 “체코 산업계가 최대한 많이 참여하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고,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체코 산업계가 전체 사업 중 60% 가까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입찰 과정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체코 정부와 끊임없이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핵심 기자재 수출은 한국이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두코바니 지역에 공급하는 원전은 1GW(1000㎿) 용량의 ‘APR1000′으로, 국제입찰을 해도 해당 원전 모형에 맞는 기자재를 보급하는 데 우리나라 기업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체코 수주전에 참여했으나 탈락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22년 10월 한수원과 한전의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수출을 제한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첫 번째 소송에서 패소했으나, 이후 항소해 한수원과의 중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안 장관은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소송에서 풀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현재 마지막 조율 단계”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체코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 원전 수주를 계획 중인 만큼, 탈원전 우려를 잠재울 고준위 방폐물 처리 법안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에 관한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 역시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지 못하면 유럽 원전 수출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유럽에서는 지하 500m 이상 심저층에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봉인할 수 있는 시설 운영을 앞두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심저층 사용후 핵연료 처리 시설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고, 스웨덴은 심저층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을 위한 건설인허가를 받았다. 프랑스 역시 부지를 확정하고 건설인허가를 진행 중이다.
원전 전문가들은 “체코원전 수주 건이 추가로 남은 만큼, 체코 정부에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심저층 (사용후 핵연료)처리 시설’을 지어 운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앞으로 유럽 국가의 원전 수출 기회가 많이 남은 만큼, 상대국에서 꼬투리를 잡지 않도록 EU 택소노미 기준에 맞춘 내용을 고준위특별법에 담아 신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난제는 야권세력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원전 생태계가 붕괴되면서 고급 인력 확보와 신기술 개발(R&D)이 후퇴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에 이르렀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방폐법)은 끝내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하고 폐기된 사례가 좋은 본보기다.
우리나라는 원전을 가동한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약 1만9000톤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원전 내에 저장 중이다. 이마저도 2030년 한빛, 2031년 한울, 2032년 고리, 2042년 신월성 원전의 저장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22대 국회에서의 야동 태도는 어떤가. 윤석열 정부가 전 세계적 재생에너지 확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SMR 관련 예산 삭감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달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여전히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전혀 변경, 상향하지 않았고, 신규 원전 4기 건설 구상도 밝혔는데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없이는 기후위기 대응도 경제의 지속적 발전도 불가능하며, 높아지는 RE100(재생에너지 100%) 파고에도 맞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연구자료가 나와 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정부 여당과 야당의 시각차가 크면 힘들게 따놓은 원전 수주가 물거품이 된다. 국익을 위해서 반대를 위한 어깃장은 금물이다. 탈원전에 앞장섰던 유럽의 여러 나라가 이제 원전 생태계 복원에 나서고 있다. 호기를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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