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표 옆자리 앉자 경청… 黨 유튜브 채널 생중계 방송
전문가 “야당 대표가 대사관 관저 직접 찾은 것 격에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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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싱 대사, 준비된 원고 줄줄 읽어 ‘의도된 비난’
싱 대사는 이날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가면서 “한국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데 베팅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대미 밀착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탈중국화 시도에서 비롯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싱 대사의 행동은 외교 관례를 벗어난 무리한 행동이며 발언은 사실을 왜곡해 한국을 위협하는 발언이라고 지적한다.
싱 대사는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에 대해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었지만 이젠 무역적자 1위 국가로 돌아섰다. 올해 1~4월 기간에만 10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이 한국의 탈중국화 때문이라는 주장은 상식 밖이란 지적이다.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2016년 시작된 사드 보복과 ‘한한령’, 2020년대 ‘궈차오’(애국 소비) 운동 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사실상 쫓겨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중 무역적자는 한국이 탈중국 시도 때문”사실 왜곡
현대차그룹은 2조원을 투자해 지은 중국 공장 2곳을 현재 일주일에 1~2일 돌리는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해마다 중국에서 7000억~8000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롯데는 10년 동안 10조원을 투자해 중국 내 마트·백화점 유통망 90여 곳을 구축했지만, 2016년 강제 영업 정지, 불매운동 등으로 완전히 철수해야 했다. 한국 화장품은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들의 거부 운동으로 아직도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중국 스스로 국제 규범이나 시장 논리를 완전히 무시해 놓고 적반하장식 발언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은 중국의 주장으로, 한국 정부가 지지한 적이 없다.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는 입장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대륙의 중국 정부가 전체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부속영토이고 중국에 흡수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이 그런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외교적으로 승인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도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임은 인정을 하지만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힘에 의한 무력 합병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따지고 보면 이날 회동은 윤 대통령의 외교 기조를 비판하기 위한 자리가 됐다. 싱하이밍 중국대사가 작심한 '베팅' 발언인 것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가 들러리를 서고 맞장구를 친 것이다. 싱 대사와 이 대표의 발언을 둘러싼 여진이 예사롭지 않다. 여당은 싱 대사의 발언에 날 선 반응을 보이며 책임을 더불어민주당에 돌렸고, 민주당은 국익을 위해 중국과 협조해 나가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은 무참히 짓밟힌 국민적 자존심에 대해 참회하고 반성하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김 대표는 "틈만 나면 호국영웅들에 대한 폄훼와 비하에 급급한 민주당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의 대사 앞에서는 다소곳하게 두 손 모아 그의 오만불손한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이어 "대한민국 자존심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이 대표와 민주당에게 호국보훈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이 나라의 자존심과 국익은 입에 발린 구호일 뿐이고, 윤석열 정부를 깎아내릴 수만 있다면 중국에 대한 굴욕쯤은 괜찮다는 그 천박한 인식을 언제쯤에나 버릴 것인가"라며 "생각할수록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쏘아붙였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도 논평에서 "'문재인식 중화 사대주의'를 신봉하는 자칭 '작은 나라' 민주당과 이재명이 만든, 싱하이밍의 외교 폭력에 국민 분노가 들끓는다"고 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중국을 끌어들여서라도 윤석열 정부를 악마화하려는 이 대표의 정치적 술수는 절대 통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싱 대사 발언을 두고 "'갑질 외교'의 전형"이라면서 "싱 대사는 대한민국 MZ세대에 중국 비호감 지수가 왜 높은지 그 이유를 새겨 보며 비상식적 언행을 돌아보고 반성하길 바란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싱 대사가 미리 준비한 원고를 한국어로 읽으며 한·미동맹을 이간질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정면으로 비난하는데도 불구하고, 제1야당의 이재명 대표는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끄덕이며 민주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델리민주'에서 생중계하기 바빴다"고 꼬집었다.
안 의원은 "이 대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중관계가 악화된 원인이 대한민국의 일방적인 책임인양 싱 대사와 함께 현 대한민국 정부를 사실상 협공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며 "이번 이 대표의 행동은 한마디로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또는 개인적인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국익을 훼손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재명 “한국경제 어려움 해결 위해 중국과 협력해야”
민주당은 여당의 공세에 윤석열 정부의 중국 등 돌리기로 민생과 한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1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나 "당연히 중국 정부의 태도가 마땅치는 않다"고 전제한 뒤 "국익을 지키기 위해 중국 공동 협조할 방향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게 바로 외교"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외교부가 싱 대사를 초치한 것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계속 확대하는 것이 과연 이 나라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러면서 "야당 대표로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민생의 어려움, 경제의 어려움들을 중국과의 경제협력으로 다시 활성화하는 것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누구의 탓을 하기 전에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의 삶"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한반도 핵 위기,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도 중국과 협력해 나가야 한다며 "그런 노력을 기울이려는 야당 대표 또는 야당의 노력에 대해 이런저런 폄훼를 하고 비난을 가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태도는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번 싱 대사의 폭탄 발언은 미국에 치우친 윤석열정부의 외교행보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국 정부의 외교 노선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짐작된다. 외교관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상대국 정부에 대해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싱 대사의 발언은 공개발언이라고 하기엔 고압적이며 위협적인 폭탄 발언이다. 한국이 중국편에 서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위협으로 들린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놓고 양국 협조를 구하기 위해 관저를 찾은 야당대표를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10분 넘게 주재국 정부를 공개 성토한 것도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 주재국 정부에 할 말이 있으면 외교통로를 통해 직접 긴밀하게 논의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 싱 대사의 행동은 오히려 선린우호를 훼손하는 격이 됐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여권이 일본 입장에 치우쳐 있어 야당이 국익차원에서 한-중 협력에 나설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민감한 국면에서 야당 대표가 일국의 대사관저를 직접 찾아간 건 격에 맞지 않으며, 민주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싱 대사 발언을 생중계한 것은 외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어 국민들의 눈총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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