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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문화의 날’ 행사장을 찾은 한 시민이 원하는 수의 스타일을 고르는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로컬세계 김정태 기자 / 이승민 특파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경시대를 거치면서 ‘품앗이’와 ‘계’라는 서로 돕는 상부상조 나눔의 고유한 전통이 있다. 이런 전통이 현재도 남아있어 흔히들 애경사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품앗이 한다’라는 표현을 쓰며 부조(扶助)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에서 들어온 잘못된 상조(相助)문화가 우리사회 애ㆍ경사(哀慶事)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특히 장례와 관련해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며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편집자주>
현재의 상조는 일본에서 들어온 문화로 약 3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의 문화와 유행을 가장 빨리 접하는 부산에서 지난 1982년 부산상조가 설립됐다. 한국적 전통 상조문화(품앗이ㆍ계ㆍ두레)에 편승해 급속한 성장을 거쳐 현재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상조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일부 대형 상조회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조회사는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게 국내 상조시장의 현 주소이다.
현재 국내 상조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조회사의 난립으로 인해 신규 영업 즉 회원 가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신규 회원이 늘지 않으니 대형 상조회사는 신규 회원 확보를 위해 회원들의 적립금으로 모은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광고를 하며 과다한 경비를 지출하고 있다. 또한 일부 상조회사에서는 리베이트와 값싼 중국산 수의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 하는 등 다양한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의 피해와 부담은 늘고 있다.
또한 국내 상조회사는 직영으로 운영하는 장례식장이 대략 30여개 정도로 턱없이 모자라 원스톱 장례서비스제공에 한계가 있는 문제가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상조회사는 장례식장에 투자할 자본력이 없어 장례식장을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와 자본력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전국적으로 1100여개의 장례식장이 있어 신규 장례식장이 들어설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장례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례식장을 임대해서 사용하다보니 상조회사는 회원들에게 장례관련용품과 의전에 국한한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다. 상조회사의 주 수입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종 비리에 쉽게 노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신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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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H 상조회사를 고가의 장례용품을 사용하도록 부추겨 그 대금의 일부를 리베이트로 주고받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진은 증거품. 연합뉴스 |
상호부조 개념으로 시작된 상조회사는 언제부터인가 보험회사와 같은 영업방식을 하고 있는데 상조회사는 보험영업하고는 그 취지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보험회사 영업방식을 모방한 것 중 하나인 중도해약금 지급방식은 상조 소비자들의 민원 일순위로 가장 불만이 많다. 상조회사의 아킬레스건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상조회사 관련 2013년 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민원 유형은 해약과 관련된 피해(91.2%)가 대다수며 약정된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데 대한 서비스불만과 청약서 교부나 본인 동의 없이 가입시킨 부당 가입 순이었다. 특히 해약 관련 피해인 경우 해약 환급금 미지급(77.5%)이 가장 많았고 해약 환급금 과소 지급, 해약 거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중도해약 시 해약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엄밀히 따져 상조회사는 회사운영에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최대한으로 소비자에게 환급을 해줘야 한다.
일본 법원, ‘해약시 납입금 모두 돌려줘라’판결
상조 종주국 일본에서도 현재 상조문제는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상조회사와 소비자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해약금과 관련한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상조회사가 해약금 반환 소송에서 소비자단체에 패소해 일본 상조시장에 지각 변동을 예고했고 한국 상조시장에도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상조회사중에서 전국매출 3위인 ’세레마’상조회사의 해약수수료가 너무 많은 것에 대해 소비자 단체인 NPO법인 ’교토 소비자네트워크’가 제소한 재판에서 오사카 고등재판소는 2013년 1월 25일 ‘계약조항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번 무효 판결은 상조회사 세레마 상품으로 매월 2500엔씩(한화 약 2만5000원) 200회를 적립하는데(총액 50만엔) 1회부터 9회까지 납입하고 해약하면 해약환급금이 없으며 10회째를 지불한 상태에서 해약을 하게 되면 해약금 24,650엔을 공제하고 계약자에게는 350엔을 돌려주는 부당한 계산방식이었다.
이에 법원은 “회원 적립금을 입ㆍ출금할 때 발생한 비용 60엔과 회원에게 연락할 때 사용 된 비용 14엔을 공제하고 남은 적립금 모두를 해약자에 반환할 것”이라 판결하고 “상조 가입자는 언제라도 해약할 자유가 있고 해약할 때에는 적립한 금액을 모두 돌려받아야 하는 게 이번 판결 이유이다”고 덧붙였다.
이 재판 결과로 인해 일본 상조회사는 해약자가 증가해 상조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 법원의 판결 결과를 참고해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이 중도 해약 할 경우 실 경비를 제외하고 적립한 금액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절차인 장례는 죽은 자가 존엄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살아있는 자의 의무이며 예의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가장 엄숙하게 진행돼야 할 장례문화에 부도덕한 상조업체들이 독버섯처럼 기생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런 상조폐해를 잘 알고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조시장이 너무 커지면서 사실상 제도 정비나 소비자피해 구제와 관련한 부분을 보강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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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문화의 날’ 행사장을 찾은 어르신들이 장례 정보 안내문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
새로운 장례문화 패러다임 구축해야
국내 장례문화는 상조의 폐단에 앞서 과거 일부 장례업자들의 횡포로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아왔다. 일부 부도덕한 장례업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불신을 해소시키려고 장례업종사자들은 그동안 종사원 교육과 시설개선 그리고 장례용품가격 공개 등을 통해 자정 노력해 가는 중이었다.
이러한 자정 노력으로 장례업계가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던 중 상조회사의 출현과 난립 그리고 이들의 각종 비리로 인해 장례업계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장례업 관계자는 “국민들의 모든 화살을 상조회사가 아닌 장례업계가 뒤집어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실례로 상조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장례업계가 지탄을 받자 장례업 종사자들은 장례와 관련된 비용과 장례용품 등을 공개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사)한국장례업협회는 서울지방경찰청과 공동으로 일부 장례식장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음식 재사용’, ‘화환재사용’, ‘중국산 수의 국산둔갑 행위’ 그리고 상조회사 직원 등이 ‘고인유치를 위한 금품제공 및 수수행위‘를 금지하는 것 등을 정하고 건전장례문화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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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지나친 상업화와 허례허식으로 사회ㆍ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장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그나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을 주축으로 우리사회가 고령화 사회에 들어가면서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장례문화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지난 4월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양승조 의원(충남 천안갑)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 안’을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에 있다.
양승조 의원은 발의 배경에 대해 “장례식장의 기능과 역할이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매장, 화장, 자연장, 봉안시설, 묘지의 설치기준 등에 관한 사항을 위주로 규정하고 있다”며 “장례식장과 관련해서는 현재 장례식장의 설치·운영, 장례식장 영업자의 준수사항, 시신의 보건위생상 위해방지 및 위생적 처리 규정 등이 미흡해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한편 지속적으로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장례식장을 제도권 안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현재 비정상적인 장례문화를 개선하고 유족들이 깨끗한 환경 속에서 마음 편히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 의원은 “장례식장 영업자와 종사자들이 장례 관련법규, 보건위생 및 장례서비스 향상을 위한 교육을 매년 받도록 하는 의무 규정 신설을 통해 국민의 보건위생에 이바지하고 불건전하고 부정적인 장례식장의 관행과 이미지 개선에 도움일 될 것이며 장례식장 영업자의 자질향상과 장례의식 등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은 장례식장 영업자협회를 설립해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정부도 국회와 장례단체 그리고 전문가들과 충분히 검토해 국민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표준 매뉴얼을 제시하고 장례문화 정책에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도 보편적인 작은 장례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평균 장례비용은 1200만원으로 외국보다 3~4배 높은 고비용이 든다. 소모적인 장례절차로 가진 자나 못가진자, 지위가 높거나 낮은 자 등 계층 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또한 국민들도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장례문화로 과감히 변화해야 하며 복잡한 형식만을 갖춘 채 체면과 과시를 중시하는 의식의 전환도 절실하다.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수백만 원짜리 수의를 2~3일 입고 상조회사에서 광고하는 최고급 캐딜락영구차를 타고 호화스럽게 치장한 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웰다잉(Welldying)은 아닐 것이며 죽은 자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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