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표 의식한 계산된 대표적 포퓰리즘 정치“지적
윤대통령 “국회숙의 아쉽다” 거부권 행사…간호사 연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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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을 행사 하면서 “국민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 지킬 수 있다. 이번 간호법은 이와 같은 유관 직역간의 의견을 배제함으로써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정치-외교-경제-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건강 앞에서는 후순위”라며 거부권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간호계서는 하루가 멀다시피 하며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의 세를 과시하며 단독 강행처리한 간호법이 왜 전문 직역간 갈등을 부추기는 지,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를 짚어 본다.
간호법의 충돌은 의원발의 때부터 시작된다. 간호법은 2년 전인 2021년 3월 26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등 49인이 발의했으며, 국민의힘은 서정숙 의원 등 33인이 발의했다. 이 법안은 기존의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 관련규정을 떼어내어 간호법을 새롭게 만드는 법이라고 해서 ‘간호단독법’이라고 붙여졌다.
이 간호단독법이 발의되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 다른 보건의료단체들이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대한의사협회장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2022년 5월 간호단독법에 반대하며 삭발까지 감행하며 강력한 반대의지를 드러냈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단독법이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법”이라며 반대했고,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85만 간호조무사를 죽이고 간호조무사의 일자리를 빼앗는 법안”이라며 반대했다.
발의 후 이법은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장기 계류 중이었다. 그러나 다수당인 민주당이 강공으로 밀어붙이기 시작됐다. 간호단독법은 지난 2023년 2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간호단독법 등 7건의 법률안을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국회의장에게 요구하기로 의결함으로써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고 국회 본회의로의 직행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는 이 결정이 ‘더불어민주당의 만행’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2022년 11월 열린 간호법 제정 총궐기대회에는 무려 24명의 야당 의원들이 출동하여 간호단독법의 통과를 약속했으며,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SNS를 통해 “가급적 여야 합의를 통한 협의 조정을 원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간호법을 합의처리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 단독 처리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고 본회의로 직행하게 된 간호법의 본회의 통과는 초읽기에 들어갔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3년 4월 3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사협회를 잇따라 만나면서 합의를 위한 문구 조율에 들어간 것으로 보도되었다. 문구 조율이 끝난 지난 4월27일 간호단독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통과 되자 대한간호사협회는 “국민의 보편적 건강보장과 사회적 돌봄을 위한 간호법 국회통과를 환영한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조무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은 “이 법은 간호사 권익만을 추구하는 졸속법안으로 시행되면 직역간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며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종래는 국민건강 증진에 심각한 유해를 끼치게 된다”며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끄러운 간호법, 국민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심각한 쟁점 1순위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이다.
기존 의료법에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업무’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이 ‘의사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바뀐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의사 지도 또는 처방 하에”로 바뀐 것은 그동안 의사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던 것에서 벗어나, 마치 처방을 받아 약을 조제하는 약사들처럼 의사의 처방을 받아 간호사가 단독으로 간호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즉 독립개원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진료보조업무‘가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된 것은 간호사의 업무를 진료를 보조하는 제한적인 업무 영역을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모호하고도 방대하고 제한 없는 단어로 업무영역을 규정함으로써 타 보건의료직종과의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점이 독소조항으로 언급되고 있다.
쟁점 2순위는 간호사 업무에 대한 배타적 규정이다.
이번 간호법은 ‘간호사가 아니면 누구든지 간호업무를 할 수 없으며, 간호사도 면허된 것 외의 간호업무를 할 수 없다’라고 간호사의 업무를 규정해 놓았다.
이는 ‘의료인이라 하더라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기존의 의료법 규정을 차용한 것이다. 이 조항은 의료법 안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으나 이 조항을 간호법으로 가져오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간호업무에 대해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과 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해 놓았다는 점에 있다.
즉 간호사가 아니면 위의 포괄적인 간호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간호란 환자나 노약자를 보살펴 주는 것을 의미하고 진료행위보다 의미가 넓기 때문에 간호법이 시행될 경우 향후 환자나 노약자의 가족이나 친지, 전문간병인, 간호조무사 등의 간호행위가 무면허 간호행위에 해당되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이 부분의 문제점을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무면허 간호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의료행위를 의사가 시행하는 ‘의사행위’와 간호사가 시행하는 ‘간호행위’로 나눠야 한다. 그래야만 간호사가 아닌 자가 ‘간호사 의료행위’를 할 때 처벌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게 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 응급환자가 와서 수술이나 처치를 해야 되는데, 만일 수액 주사를 놓는 행위를 지금은 의사가 수액 주사를 놓아도 되지만 간호법이 통과되고 나면 아무리 응급 상황이라도 간호사가 없으면 의사라 할지라도 수액 주사를 놔줄 수 없게 된다. 이번 간호법이 진료 현장의 큰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쟁점3은 공중에 뜨게 되는 지역사회 간호이다.
현행 의료법이나 발의된 간호법 모두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으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하에 업무를 수행’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업무지시를 받아야 하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사가 의사의 직접 업무지시를 받아 간호업무를 시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장기요양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지역사회에서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없이 촉탁의사의 지도하에 간호업무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없이 촉탁의의 지도하에 장기요양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간호업무를 하는 것이 불법행위로 간주되어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쟁점 1,2,3에서 보듯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간호단독법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본회의에서 왜 강행처리했을까? 그들의 머릿속에는 국민의 건강은 보이지 않고 표만 보이는 것일 게다. 가까스로 대통령께서 거부권 행사로 다수당의 횡포를 막았지만 국민건강과 직결된 법안까지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뒷골을 당기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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