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천억 국책사업 국토부장관 말 한마디로 백지화 말도 안돼
양평군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정치권 정쟁 멈추고 재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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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주민대표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서울~양평고속도로 추진 재개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만약 현 정부의 노선 변경이 잘못됐다면 주민들이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맞다. 주민 다수가 노선 변경을 원해왔으며 환영하는 분위기인데 민주당이 원안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주민의견을 무시한 정치 공세다. 그리고 야당이 의혹 제기를 한다고 주민의 오랜 숙원사업을 하루아침에 백지화를 선언한 국토부 장관의 행동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토부 장관의 백지화선언은 야당이 주장하는 특혜 의혹을 시인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꼬집었다.
이날 전진선 양평 군수 등 양평 주민 30여 명은 더불어민주당사를 항의 방문해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가로막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전 군수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좌초한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 그는 “난데없이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일가 소유 토지를 문제 삼으면서 정치 공세를 펼쳐 고속도로 추진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전 군수와 항의 방문에 동행한 윤순옥 양평군의회 의장 등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이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원안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노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밝힌 것도 비판했다. 전 군수는 “2021년 4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원안은 양평군에는 나들목(IC)이 없는 고속도로였다”며 “전임 군수를 포함해 민주당 소속 지역 정치인도 양평군 내에 IC를 설치해야 한다는 요구를 꾸준히 제기해 실현된 것이 강하면에 IC를 짓는 수정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는 지역 정서도 모르고 국정을 혼란에 빠트린 민주당 소속 전임 군수를 문책하고 현직 군수인 저와 이 문제를 논의해달라”고 덧붙였다.
◆前 양평군수, 고속도로 원안 종점에 토지 보유 논란
김건희 여사 일가 땅과 가깝게 노선이 변경된 게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로 시작된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민주당 소속인 전직 양평군수가 원래 노선 종점 인근에 적지 않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수정안 종점에 김 여사 일가 땅이 있어 특혜라면, 원안은 전 군수에게 특혜를 주는 안이 된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현직 양평군수는 민주당사 앞에서 수정안, 민주당 소속 전직 양평군수는 원안을 바탕으로 한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을 주장했다.
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과 대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동균 전 양평군수와 친척들은 양평 옥천면 아신리 일대에 14개 필지, 1만여㎡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은 2021년 4월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인 양서면 중동리와 가까운 곳이다. 토지 상당수는 종점에서 1.6㎞ 거리에 분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토지 중에는 정 전 군수가 1998년, 2004년 매입한 땅과 아내 박씨가 2006년과 2020년 구매한 땅 3필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군수는 2018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양평군수로 재직해 원안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을 당시 현직에 있었다. 원안 추진 과정에서 정 전 군수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정 전 군수“논란이 된 땅은 나의 고향, 아버지 유산”
이에 대해 정 전 군수는 “아신리가 아버지의 고향이며, 저를 비롯해 많은 친지가 살고 있어 땅이 많다. 논란이 되는 토지도 부친이 돌아가신 10여 년 전 상속받은 것”이라며 “원안 종점까지 가려면 길도 없는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해 수혜를 누릴 수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정 전 군수의 토지 소유 사실 공개를 기점으로 여당은 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알고 보니 ‘더불어민주당 게이트’”라며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원안은 ‘민주당 전 양평군수 일가 특혜’가 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 일가 특혜론’을 주장하기 전에 ‘자당 소속 전직 양평군수 특혜 의혹’부터 똑바로 조사하라”며 “대통령 부인을 겨냥한 황당 정치 공세는 제 발등을 찍은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 조치 등을 비판하며 정부와 김 여사를 공격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정부·여당은 후안무치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지금 당장 멈추라”며 “원 장관은 국책사업을 엎어버린 장본인으로 국민께 사죄하고 사임하라”고 지적했다.
◆노선 놓고 전·현직 군수 충돌
이같은 논란에도 민주당은 원안대로 서울~양평고속도로를 건설할 것을 주장했다. 정 전 군수와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수 재임 시절 원안대로 양서면 종점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노선상에 나들목(IC) 하나를 추가할 것을 요구했을 뿐 노선 변경을 국토부에 요구한 적은 없다”며 “민주당이 먼저 노선 변경을 요구했다는 원 장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원안추진위원장인 최인호 의원은 “주말마다 정체를 겪는 두물머리 인근의 교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원안대로 서울~양평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현직인 전진선 군수와 여당 인사들은 수정안을 바탕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 군수는 “강하면에 IC를 지어야 한다는 것은 2007년 고속도로 건설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양평 주민들이 제기한 주장”이라며 “정권이 바뀌어 노선도 바뀌게 됐다는 전임 군수의 주장은 양평의 민심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원안은 양평에 IC가 없어 이름만 서울~양평고속도로”라며 “원안대로 하면 한강과 남한강을 건너가는 구조물이 상당히 크게 올라가야 해 주민들도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희룡 장관 백지화 선언에 노선 변경 특혜 의혹만 키워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안에 대한 논란은 야당의 특혜 의혹 제기에도 문제가 있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업 전면 백지화’가 논란의 확산을 더 키웠다는 평가다. 원 장관은 지난 7일 “최종 백지화 결정은 윤석열 대통령과 사전 논의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정치적 책임과 인사 책임도 각오한 결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 장관은 “야당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한 빌미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겠다”며 전면 중단을 선언한 것이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양평군 주민들의 해묵은 숙원사업이다. 고속도로가 나면 1시간 반에서 2시간씩 걸리던 서울~양평 간 통행 시간이 15분대로 대폭 줄어든다. 주말 교통 체증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도 꾀할 수 있기에 군민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이자 황당해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사를 찾은 주민대표들은 주민 투표를 해서 ‘원안’과 ‘수정안’을 결정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양평에 IC가 들어서는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가로막는 모든 행위를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부에도 사업 재개를 지속해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의 핵심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거친 양서면 종점을 강상면으로 바꾸는 게 과연 특혜일 수 있느냐다. 야권은 대안 노선이 공개된 지난 5월 “정부가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려고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강상면 종점에서 500m 떨어진 곳에 김 여사 일가의 토지가 있어 국토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대안 노선으로 바꿨다는 주장이다.
김건희 여사 일가가 보유한 양평군 강상면 땅은 서울~양평간 고속도로 종점에서 500m 걸리에 위치해 있으며, 보유한 땅은 모두 29필지로 축구장 5개 크기의 면적이다. 국토부는 강상면 종점이 IC가 아닌 분기점(JCT)이라 지가 상승에 영향이 없다고 설명에도 민주당은 지근거리에 남양평IC(중부내륙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에 IC는 원안대로 추진하는 게 맞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지 부동산관계자는 “JCT 자체가 소음·분진으로 인한 민원 발생 대상이라 지가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민주당도 기존 노선에 대안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2021년 5월 당시 민주당 소속 양평군수와 민주당 지역위원장이 당정 협의를 통해 예타안에 반대하면서 강하IC 설치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며 “그때 안이나 지금 안이나 똑같다”고 맞섰다.
지금까지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야당의 의혹 제기가 근거 부족의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주무 장관이 1조8000억원에 이르는 국책사업을 말 한마디로 뒤집을 수 있는지 의아하다. 원 장관은 “임기 끝까지 의혹에 시달리는 것 보다는 책임지고 손절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는 국민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앞세운 결정이라는 평가다. 오히려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억측을 낳게 하는 언행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양평군을 떠나 수도권 민생과 직결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적 정쟁을 당장 멈추어야 하고 정부는 최선의 안을 검토해 재추진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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