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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첨단 화약 무기인 비격진천뢰.(사진=김경락 기자) |
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이번 발굴 조사에서 훈련청과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포대(砲臺)시설, 화약 무기인 비격진천뢰 11점 등을 새롭게 출토했다고 15일 밝혔다.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발굴조사는 고창군이 2003년부터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연차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는 사창지 등의 건물지와 문지, 성벽, 해자(垓字), 적교(吊橋)시설 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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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이 나온 고창 무장읍성 발굴 현장 모습. |
또한 발굴조사 및 고지형 분석을 바탕으로 읍취루, 진무루, 동헌 담장과 삼문, 연지와 정자 등이 복원됐으며, 성벽의 정비복원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은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해 1417년(태종 17)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됐으며, 행정과 군사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훈련청과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지 10여동과 수혈, 도로시설 등이 확인됐다. 특히 1호 수혈에서는 조선시대에 발명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가 출토됐다. 바로 인접해 포대(砲臺)시설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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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
이번에 나온 비격진천뢰는 11점이다.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며, 크기는 직경 21㎝, 무게 17~18㎏으로 비슷하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비격진천뢰는 보물(제860호)로 지정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해 모두 6점에 불과하다.
비격진천뢰는 조선 선조 때에 발명됐으며, 목표물에 날아가서 천둥번개와 같은 굉음과 섬광, 수많은 파편을 쏟아내면서 폭발하는 작렬(炸裂·산산이 흩어짐) 시한폭탄으로, 중완구(中碗口)라는 화포에 장전해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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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가 출토된 수혈 주변에서는 포사격 시설로 추정되는 포대(砲臺)가 조사됐다. |
또한 비격진천뢰가 출토된 수혈 주변에서는 포사격 시설로 추정되는 포대(砲臺)가 조사됐다. 평면형태는 원형이고 규모는 직경 170㎝이며, 돌을 편평하게 깔아 견고하게 시설한 후 흙을 다져 바닥면을 마련했다. 또한 포의 거치대로 추정되는 2개의 기둥구멍이 포대 남쪽에서 확인됐다.
따라서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이 왜구의 방어를 위해 축성된 점으로 볼 때, 훈련청・군기고, 비격진천뢰와 포대시설, 해자 등의 군사시설 및 100여 평의 국내 최대 규모의 군량창고(사창터)와 이를 원활히 운반할 수 있는 도로 및 적교시설 등은 무장읍성이 호남지역 중요 군사요충지 이었음을 밝힐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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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비격진천뢰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며, 크기는 직경 21㎝, 무게 17~18㎏으로 비슷하다. |
유기상 고창군수는 “그동안의 무장현 관아와 읍성의 발굴성과가 ‘한반도 첫 수도’인 고창이 조선시대까지도 중요 거점지역이었음을 알려주는 근거”라며 “앞으로도 문화재를 활용한 지역민의 소득창출방안을 적극 마련하고 무장읍성을 문화유산 거점지역으로서 대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창군과 (재)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는 15일 오후 ‘현장공개 설명회’를 열고 연구자들과 군민들에게 우리 문화재의 중요한 가치를 알리고 발굴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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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현 관아와 읍성 비격진천뢰 발굴 현장 설명회 모습.(왼쪽부터 유기상 고창군수, 정재숙 문화재청장, 조규철고창군의회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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