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유일 바이오테스팅센터 준공…기업들 “수도권 의존 줄었다”
특허·수출·기업유치 성과…지역 산업 구조 전환 가능성 확인
단발성 지원 아닌 ‘전주기 플랫폼’ 구축에 무게
인구감소 지역 한계 넘어 미래 산업 기반 다지기 본격화
[로컬세계 = 이태술 기자] 지방 소도시에서 바이오산업은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으로 꼽힌다. 남원은 화려한 구호 대신 작은 성과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남원시바이오산업연구원이 최근 1년 동안 보여준 변화는 단순한 연구기관 성과를 넘어선다. 연구개발과 시험·인증, 기업 지원, 인력 양성까지 연결되는 산업 구조를 지역 안에 구축하려는 시도가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취임한 이영철 원장이 있다. 고려대학교 생명공학 박사 출신인 그는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원 운영 방향을 ‘성과를 남기는 연구’보다 ‘지역 산업이 실제 움직이는 구조’에 맞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프라다. 연구원은 최근 영호남권에서는 유일한 화장품 시험검사·피부임상 통합 플랫폼인 ‘남원바이오테스팅센터(NBTC)’를 준공했다. 총사업비 190억 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단순 검사기관이 아니라 제품 시험부터 임상, 원인 분석, 재시험 설계까지 가능한 통합 지원 체계를 목표로 한다.
그동안 지역 기업들은 시험·인증 절차를 위해 수도권 기관을 오가야 했다.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컸고,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개발 속도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 남원시는 이 문제를 단순 행정 지원이 아니라 산업 기반 부족 문제로 보고 접근했다.
현재 센터에는 300종이 넘는 장비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본격 운영이 시작되면 남원뿐 아니라 전북·전남권 바이오·화장품 기업들의 활용 수요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연구원은 지난 1년간 기업 맞춤형 소재·제형 개발과 기술 지원 등 30여 건이 넘는 실적을 냈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기능성 소재 개발과 스마트팜 연계 바이오 작물 연구도 병행됐다.
실제 산업화 움직임도 나타났다. 한미양행과는 배롱나무·마가목 기반 제품 개발을, 에스비씨와는 오미자를 활용한 탈모 완화 소재 연구를 진행했다. 단순 연구에 머물지 않고 상품화와 수출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방향이다.
성과는 숫자로도 나타났다. 연구원 지원 기업들의 매출은 약 590억 원 규모로 집계됐고, 베트남 수출 계약도 260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허는 모두 8건이 출원됐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미국과 베트남 국제출원까지 이어졌다.
기업 유치도 속도를 냈다. 남원첨단산업비즈센터에는 바이오·화장품 관련 기업들이 잇따라 입주를 추진하면서 현재 입주율이 90%를 넘겼다. 연구원은 단순한 입주 공간 제공을 넘어 시험·인증·기술 지원까지 이어지는 연계 구조를 구축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연구원의 운영 방식 변화다. 연구원은 기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성과 연동 평가 체계를 도입했고, 출연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재정 자립 계획도 마련했다. 현재 20% 수준인 재정자립도를 오는 2030년까지 5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는 단순한 기관 운영 개선 차원을 넘어 지방 공공 연구기관의 지속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지방 연구기관 상당수가 사업 유지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남원은 산업 연계와 수익 구조 확보를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남원시가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축으로 설정한 배경에는 지역 구조 변화에 대한 고민도 깔려 있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존 산업만으로는 지역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남원시는 바이오산업을 단기간 성과 사업이 아니라 장기 산업 구조 전환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연구개발에서 생산, 시험·인증,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플랫폼’을 지역 안에서 구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영철 원장은 “중요한 것은 단기 성과보다 산업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며 “지역 기업이 남원 안에서 연구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식 남원시장도 “바이오산업은 남원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며 “지역에 구축된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남원형 바이오산업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남원의 바이오산업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다만 눈에 띄는 점은 ‘큰 성공’보다 ‘작은 구조’를 먼저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거대한 구호보다, 지역 안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로컬세계 /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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