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땅을 팔아 보낸 자금, 남겨진 것은 빈손
연좌제의 사슬과 ‘그림자 감시’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역사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들을 기록한다. 하지만 그 영웅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남겨진 가족들이 온몸으로 가난과 핍박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정주의 거목 문윤국(文潤國) 지사의 가족들에게 ‘독립운동’은 자랑스러운 훈장이기 전에,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를 견뎌야 했던 가혹한 삶의 현장이었다.
집과 땅을 팔아 보낸 자금, 남겨진 것은 빈손
문 지사가 독립 자금으로 내놓은 ‘7만 원’은 당시 정주 일대의 거대한 토지와 가산을 처분한 돈이었다. 가장이 그 거액을 들고 상해로 떠났을 때,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의 발밑에서는 삶의 터전이 사라졌다.
독립운동가의 아내들은 남편이 보낸 짧은 안부 편지 대신, 집을 압류하러 온 순사들의 구둣발 소리를 먼저 들어야 했다. 문 지사의 가족들 역시 끼니를 잇기 위해 남의 집 일을 하거나 산나물을 캐며 연명해야 했다. 그들에게 ‘조국 광복’이라는 대의는 멀리 있었고, 당장 아이들의 입에 들어갈 미음 한 그릇은 너무나 절박했다.
연좌제의 사슬과 ‘그림자 감시’
일제는 문 지사를 잡기 위해 남겨진 가족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자식들은 학교에서 ‘불령선인의 자식’이라 손가락질받았고, 일경은 수시로 집을 들이닥쳐 가재도구를 부수며 남편의 행방을 추궁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그리운 존재인 동시에, 우리 집을 이토록 힘들게 만든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린 자녀들은 명절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고, 성장해서는 독립운동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업조차 가질 수 없는 사회적 격리에 부대껴야 했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으나, 정작 내 가족은 구하지 못한 야속한 가장이기도 했다.
어머니, 독립운동의 또 다른 이름
이 모든 고난을 묵묵히 버텨낸 것은 문 지사의 아내였다. 남편이 상해에서 이념 투쟁과 외교 활동에 매진할 때, 그녀는 고향에서 일제의 고문보다 지독한 배고픔과 싸우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녀는 남편이 보낸 비밀 연락책에게 쌀 한 줌을 쥐여 보내면서도 정작 자신은 물로 배를 채웠다. 독립운동가의 아내들에게는 ‘투사’라는 칭호도, 기록도 남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켜낸 자식들이 곧 독립된 나라의 뿌리가 되었다. 문 지사의 가족사가 보여주는 비극은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 가문이 겪었던 보편적인 아픔이었다.
잊힌 가족들의 눈물, 이제는 우리가 닦아야 할 때
문 지사가 훗날 해방된 조국에서 권력을 멀리하고 정선의 깊은 산골로 숨어든 배경에는, 자신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았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서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독립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총칼을 든 투사들의 용기 뒤에는, 그들이 버리고 떠난 자리를 지키며 눈물로 생을 지탱했던 가족들의 위대한 인내가 있었다. 문윤국 지사의 연재를 이어가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웅의 이름 뒤에 가려진 그 가족들의 시린 이름들이다.
【企画連載:独立運動家 文潤国 ⑩】独立運動家の妻、そして子として生きること
家産は独立資金に、家長は亡命地へ… 残された家族を待ち受けていたのは「貧困」と「監視」
【東京=李勝敏 特派員】 歴史は、国を取り戻すために命を懸けた英雄たちを記録する。しかし、その英雄たちが後ろを振り向かず前だけを見て突き進むことができたのは、残された家族たちがその身を挺して貧困と弾圧に耐え抜いたからに他ならない。平安北道定州の巨목、文潤国志士の家族にとって「独立運動」とは、誇らしい勲章である前に、日々の食いぶちに窮し、日帝による容赦ない監視に耐えなければならない過酷な生活の現場であった。
家と土地を売り払って送った資金、手元に残されたのは「空の手」
文志士が独立資金として差し出した「7万ウォン」は、当時の定州一帯の広大な土地と家産を処分して作った金であった。家長がその巨額を手に上海へと発った時、残された妻と子供たちの足元からは、生活の基盤が消え去った。
独立運動家の妻たちは、夫から届く短い安否の便りの代わりに、家を差し押さえに来た巡査たちの靴音を先に聞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文志士の家族もまた、食いつなぐために他人の家の手伝いをしたり、山菜を掘ったりして命を繋いだ。彼らにとって「祖国光復(独立)」という大義は遠い空の上の出来事であり、目の前の子の口に入れる一杯の重湯こそが、あまりにも切実な課題であった。
連座制の鎖と「影の監視」
日帝は文志士を捕らえるため、残された家族を執拗に苦しめた。子供たちは学校で「不逞鮮人の子」と後ろ指を指され、日本警察は頻繁に家に押し入り、家財道具を壊しながら夫の行方を問い詰めた。
子供たちにとって、父は恋しい存在であると同時に、我が家をこれほどまでに苦境に陥れた「恨の対象」になることもあった。幼い子供たちは、名節(旧盆や正月)になっても帰ってこない父を待ちわびて眠りにつき、成長してからは独立運動家の子であるという理由で、まともな職にすら就けない社会的隔離に翻弄された。彼らにとって父は国を救った英雄であったが、一方で、自分の家族さえ救えなかった薄情な家長でもあった。
母、独立運動のもう一つの名
これらすべての苦難を黙々と耐え抜いたのは、文志士の妻であった。夫が上海で理念闘争と外交活動に邁進している間、彼女は故郷で日帝の拷問よりも過酷な飢えと戦いながら子供たちを育て上げた。
彼女は夫が送った秘密の連絡員に一握りの米を握らせて送り出しながら、自分自身は水で腹を満たした。独立運動家の妻たちには「闘士」という称号も記録も残らなかったが、彼女たちが守り抜いた子供たちこそが、やがて独立した国の根となった。文志士の家族史が示す悲劇は、当時、数多くの独立運動家の家系が経験した普遍的な痛みであった。
忘れ去られた家族の涙、今こそ私たちが拭う時
文志士が後年、解放された祖国で権力から距離を置き、江原道旌善の深い山奥に隠居した背景には、自分ゆえに一生を苦しんだ家族への申し訳なさが込められ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
独立は決してタダで手に入ったものではない。銃刀を手にした闘士たちの勇気の陰には、彼らが捨てて去った場所を守り、涙で生を支えた家族たちの偉大な忍耐があった。文潤国志士の連載を続ける中で、私たちが必ず記憶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英雄の名に隠された家族たちの冷たく凍てついた名前である。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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