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열사병, 겨울엔 동사, 혹사에 매년 2~3명씩 숨져
인력동맥경화 해소위한 쿼터 확대 좋지만 작업 환경개선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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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외국인 근로자 인력 쿼터 3만명 증원은 2022년 2000명에 비하면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통큰증원’이 아닐 수 없다. ‘노동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 확대되면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일부 우려된 비판 때문에 소극적인 개방책을 고수했으나,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는 법무부의 판단이다. ‘3D업종’은 인력난 문제로 도산 위기에 몰리는 등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조선산업은 지금 수주량 폭주로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손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숙련기능인력 제도(E-7-4)’는 2017년부터 시행됐다. 이 제도는 외국인 근로자가 오랜 기간 국내에서 단순 노무 분야에 종사해 숙련 노동자가 되면 장기 취업비자로 전환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2020년 1000명에서 올해 5000명까지 3년 새 쿼터를 5배 늘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국내 근무 기간 기준이 5년에 달하는 등 전환 요건도 까다롭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법무부가 요건 완화, 쿼터 확대 등 숙련기능인력제도 개선에 착수한 이유다.
법무부의 외국인 숙련기능인력제도 개선안에 따르면 체류 자격 전환에 필요한 근무 기간을 기존 5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근무 경력이 짧더라도 산업계 필수 인력이 된 근로자는 빠르게 숙련기능인력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선안에는 기업의 자국민 고용 인원의 20%(뿌리산업·농축어업·비수도권 제조 업체는 30%) 범위 내에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바꾼다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올해로 예정됐던 숙련기능인력 5000명을 다음 달까지 앞당겨 선발한다.
숙련기능인력은 2020년 1000명에서 이듬해 1250명, 2022년에는 2000명으로 늘린 바 있다. 올해 5000명까지 꾸준히 쿼터를 확대했으나 여전히 외국 숙련기능인력 수혈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지난해보다 쿼터를 15배가량 늘린다는 방안이다. 올해 예정 인력인 5000명에 대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이후 대규모 숙련기능인력을 추가 확보해 산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인력난’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적어도 쿼터가 부족해 외국인이 못 들어온다는 얘기는 없을 것”이라는 한 장관의 발언에서 노동시장 개방 확대에 따른 강한 드라이버를 감지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문제연구소는 법무부의 과감한 외국인 근로자 숙련기능 쿼터제 확대와 숙련기능 전환 조건완화 정책은 크게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이와 함께 시급히 개선 돼야 할 과제는 근로조건 및 작업환경이다. 기숙사 등 근로환경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쿼터 확대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인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신음하고 있다. 여름에는 극한 폭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극한 한파에 시달린다.
열악한 기숙사시설로 인해 매년 2~3명씩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숙사는 무허가 건물도 아닌 비닐하우스 내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였다. 지난 2020년 12월 20 경기도 포천 일동면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2021년 1월5일 포천의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발생한 캄보디아 여성 사망사고, 2023년 화성 터미널에서 발생한 우레탄폼스프레이 폭발사고로 베트남 출신 30대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열악한 기숙사시설에다 하루 11~12간씩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무리한 근로조건이 화를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각 지역별 환경단체 및 산업단지 자체 조사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취약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언제든지 사망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이 좁은 컨테이너에 수명씩 생활하면서 감염병 확산과 안전사고 등에 무방비 상태라는 지적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광주사무소에 따르면 광산구에 하남, 평동, 소촌, 진곡 등 4개의 산단에 지난해 7월 기준 2300여개의 기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이 중 502곳의 기업에서 공장부지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 외국인 합숙근로자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컨테이너 박스 합숙시설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1900여명으로 파악되지만,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포함할 경우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컨테이너는 최소한의 건강과 안전도 보장 받을 수 없고, 산단 일부 업체에서는 이 컨테이너를 사무실이나 휴게실로 등록한 후 외국인노동자 숙소로 불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포천의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광주에 비해 더 열악하다. 41도 찜통더위에 선풍기도 없이 일을 한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의 실상을 보면 눈물겹다.
지난 19일 낮 2시58분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가 41도로 찜통 더위다. 이날 환경단체 ‘환경정의’소속 활동가들이 포천 일대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만났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태국 이주노동자(31세)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훔쳐내기에 바빴다. 이곳엔 선풍기도 없었다. 인근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의 일터 환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선풍기도 없는 비닐하우스 안과 바깥 밭에서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거나 작물을 수확하고, 농약을 치는 등의 일을 1년째 하고 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실외와 바깥보다 온도가 높은 비닐하우스 안 양쪽을 오가며 일하는 이들은 무더운 날이면 두통과 어지러움 같은 증상을 흔하게 겪는다고 했다.
이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1시간을 일한다. 그중 휴식시간은 점심을 먹는 1시간뿐이다. 폭염주의보나 호우경보가 발령됐다는 재난 문자를 받은 날에도 노동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에서 폭염에 취약한 사업장 노동자에게 물을 제공하고, 폭염경보·폭염주의보 등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1시간 주기로 10~15분간 규칙적인 휴식 시간을 주라고 권고하지만 이주노동자 일터에선 이런 내용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포천의 두 곳 농장 모두 비닐하우스에 컨테이너를 설치, 그 위에 검은색 차광막을 덮어 씌어서 숙식을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컨테이너 공간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바깥 열기 혹은 추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한 커다란 부직포와 비닐테이프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컨테이너 방 앞 바로 위 비닐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얼마 전 폭우가 내릴 때 이 구멍으로 비가 쏟아졌다. 그 아래로 정리되지 않은 전선들이 노출돼 있었다. 화재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강추위가 계속된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고용노동부는 이듬해부터 농·축산·어업 분야 사업주가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같은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이주노동자를 새로 고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사업주가 여전히 서류에만 빌라·주택 등으로 써놓고 고용허가를 받은 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 이주노동자 역시 근로계약서에는 숙소가 빌라로 적혀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기후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안전을 사업주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숙련기능 쿼터를 15배로 확대하는 방안은 환영하지만 이들에 대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외국인 근로자 쿼터제 확대의 의미가 퇴색될 뿐 아니라 성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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