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수장, 이례적 세수결손 첫 공식화
‘TK 신공항특별법’vs 광주 군공항 이전특별법 빅딜
조 단위 예산 지역현안 법안 줄줄이 ‘주고받기’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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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규 대기자. |
한국경제가 심상치 않다. 반도체 등 수출이 잘되지 않아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감산체제로 돌아섰다. 삼성전자가 위축되다 보니 한국 주력기업들도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우리나라 경제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 세수펑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나라 살림이 극도로 어려지고 있는 가운데, 여-야의원님들은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퍼주기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 아래 주고받기 식 ‘총선 스펙 쌓기용 입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추 부총리는 이날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수 펑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지난 1~2월 세수 실적에서 보듯 올해 세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올 상반기까지는 이런 부진한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경제부처 수장이 직접 세수결함을 공식화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올해 세입예산에서 국세 수입을 총 400조5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걷힌 세금(395조9000억원)보다 4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올해 1, 2월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조원 가까이 줄었다. 3월부터 연말까지 작년만큼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올해 20조원의 세수가 구멍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수펑크는 10여년 만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말기 2조8000억, 박근혜 정부 첫해 2013년 8조5000억원, 2014년 10조9000억원 등 내리 3년간 세금결손이 생겨 국민들의 삶이 쪼달리고 핍팍해 지기까지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주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제외하고 양도소득세 증권거래세 부가가치세 등 거의 모든 세수가 작년보다 감소했다. 올해 세입예산 대비 징세 실적을 뜻하는 세수 진도율은 2월 13.5%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최저였다.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면서 정부 목표치보다 세금이 더디게 걷히고 있는 것이다.
2월 누적 세수 부족분(약 16조원)을 감안해 3월부터 연말까지 작년만큼 세금을 걷는다고 가정하면 올해 걷히는 세금은 380조2000억원이다. 기재부가 올해 세출예산을 편성하면서 추정한 세입 전망치(400조5000억원)보다 20조원가량 부족하다. 애초 기재부는 “예상한 흐름”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하반기에 경기가 살아난다면 1분기 감소 폭을 만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하반기 세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세수 감소 영향이 확대된다면 세입예산 대비 세수펑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주식시장 침체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법인세 감소도 우려된다.
당장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8% 급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이날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세수 결손을 처음 언급한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데 따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세금이 걷히지 않으면 한국은행에서 부족한 자금을 일시 차입한다. 한은 차입은 정부가 한은에서 빌려 쓸 수 있는 이른바 ‘마이너스통장’이다. 한은에 따르면 정부는 올 들어 3월까지 한은에서 48조1000억원을 빌려 썼다. 지난해 빌려 쓴 34조2000억원을 올해는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정부의 올해 한은 대출금 한도는 50조원으로, 이미 한도에 가깝게 돈을 빌려 썼다. 애초 정부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예산의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장 지출에 필요한 세수가 모자라다 보니 자금을 일시 차입한 것이다. 다만 정부는 지난달 걷힌 법인세로 20조원가량을 상환했다.
올 하반기에도 세수 부족이 이어지면 정부로선 세입 예산을 축소하거나 적자국채를 찍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정부 예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 복귀를 위해 올해 관리재정수지(사회보장성 지출을 제외한 재정수지)를 지난해(110조8000억원)의 절반 수준인 58조2000억원으로 줄일 계획이었는데 이런 구상이 틀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라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나란히 처리하기로 했다. 이른바 TK와 호남 빅딜인 것이다. 기존 부지 매각으로 부족한 사업비에 국고를 지원하도록 하면서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는 면제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두 사업에 10조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영호남 의원들이 지역 현안 사업을 맞바꾸기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외에도 지역 현안을 특별법 형태로 총선 전에 해결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지역별로 △중부내륙발전지역지원 특별법(충북) △전남의대설치 특별법(전남) △대도시광역교통 특별법(전북) 등이 줄줄이 발의됐다. 역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국비 지원을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표와 맞바꾸기 위한 ‘퍼주기 법안’ 발의도 줄을 잇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아동수당을 최대 80만원으로 확대하는 아동수당법 개정안, 65세 이상 노인 100%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기초연금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전 국민 1000만원 기본대출을 입법화하겠다고 나섰다.
한 정치 논객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의원들끼리 서로 ‘법안 품앗이’를 하는 ‘로그 롤링(logrolling·통나무 함께 굴리기)’이 심해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예산 낭비를 걸러내는 입법부 본연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이 뽑은 선량들이 민생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당선에만 급급한다면 나라꼴은 만신창이가 되어간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입법부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포퓰리즘 정치가 보편화 되어 가는 처지에서 입법부의 존엄성을 외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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