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 인사전횡 지방자치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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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 경기 수원 행궁동에서 열린 목민관클럽 정기포럼에서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목민관클럽은 지역과 정당을 초월해 모임의 취지에 동의하는 민선5기 기초단체장 등으로 구성됐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관의 처세를 담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으로서 선물을 받기보다 베풀기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현대판 ‘매관매직’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멍들게 하고 있다. 승진이나 채용을 대가로 돈을 받는 인사비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안팎에서는 ‘승진하려면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은 기본’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지자체장들의 인사전횡은 지방재정 악화를 부르고 있다. 돈을 주고 승진 또는 채용된 공무원은 공금을 횡령하거나 뇌물을 받는 등 또 다른 비리로 이어져 지역 ‘곳간’ 채우기는 뒷전에 두고 제몫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 등에 따르면 대구 기초지자체에선 서기관 3000만원, 사무관 승진에 2000만원이 필요하고 경북은 서기관 7000만원, 사무관 5000만원, 7급에서 6급 승진은 3000만원이면 된다는 설이 공공연히 나돈다.
한 전직 기초단체장은 “직접 나서지 않고 최측근을 통해서만 받는다”며 “승진대상자 간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면 돈을 더 내야 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12월 전국 65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조직·인사업무 감사를 벌인 결과 49개 단체에서 101건의 인사비리를 적발했다. 일부 지자체장은 자신의 측근을 승진시키거나 채용하려고 근무성적평정과 채용기준 등을 멋대로 바꿨다.
지방공무원 평정규칙 등에서 지자체장은 직원들의 근무평정에 일절 관여할 수 없다고 명시했지만 유명무실했다.
인사 비리는 규모가 작은 기초지자체에서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기초지자체는 인간관계로 얽히고설키는 경우가 많아 지자체장과의 친분이 인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인사비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산하기관장 지방의회 청문회, 감사기구의 독립성 강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자체장 측근이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위원장 및 위원들을 각계각층의 외부인사로 선정해 공직사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장들의 비위·비리가 끊이지 않는데는 공천제도의 문제도 크다. 한 지역인사는 “무소속보다는 정당출신 단체장들에서 매관매직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본다”며 “정당출신 단체장들은 아무래도 공천헌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지자체장들의 인사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한 지방자치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현재보다 더욱 엄격한 제도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한 전문가는 “지방자치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인 만큼 지자체장 등 공직자들의 기강 확립은 주민 삶과 직결된다”며 “지자체장의 인사비리에 대해서는 전·현직을 불문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선심성 개발 남발 ‘금고 텅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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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4일 경기 용인 구갈역에서 수원지법 최재혁 부장판사와 김학규 용인시장, 김학필 용인경전철 대표이사 등 관계자들이 용인경전철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용인시는 경전철 문제로 최근 국제중재법원으로부터 공사비 명목으로 경전철사업의 시행사에 5159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는 시 총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액수다. |
바닥을 보이는 지방재정이 지방자치를 위협하고 있다. 재정난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은 내년 신규사업 추진을 보류하고 있다. 주민 삶의 질과 직결되는 복지예산 줄이기도 현실화하고 있다. 자체 세입으로 직원 월급을 못 주는 곳도 허다하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뿌리가 썩으면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법. 지방재정 악화에 따른 지방자치의 위기는 곧 중앙정부의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자구노력과 함께 지방세 비율 조정, 재정 분권화 등 정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충남도에 따르면 도내 16개 시·군 가운데 11곳이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의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재정력지수는 천안(0.728)과 아산(0.738)을 제외한 14곳이 0.5에도 못 미쳤다. 재정력 지수가 1을 넘으면 자체 세입으로 인건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는 6개 자치구 중 4곳, 전남은 22개 시·군 중 16곳이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 고성군도 오는 12월 직원들의 월급 줄 돈이 부족해 추경에서 17억원을 요청했다. 9월 기준으로 직원 692명의 한달 월급 총액은 20여억원. 월급 인상분 5% 등을 감안하면 12월 17억원이 부족하다. 재정자립도가 27.7%인 인천 부평구도 11~12월 두달분 직원 인건비 41억원을 편성하지 못하다가 2차 추경안에 상정했다.
지자체 재정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주민편익을 위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복지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광진구는 구립은 물론 민간 어린이집에 대해 간식비 등 보육료 지원 명목으로 해마다 수억원씩 지원하던 것을 대폭 줄이려 하고 있다. 내년 세수가 120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구 관계자는 “내년 공무원 월급이 3.5% 늘어나는 등 경직성 경비가 해마다 증가해 각종 사회단체 보조금과 민간 경상보조금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는 내년 지출이 세입보다 400억원 이상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도서관 등 3곳에 대한 지원을 당초 30억원에서 대폭 줄일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지자체는 매년 정부 보조금 규모에 따라 예산을 편성하는데 정부 지원금도 한계가 있다 보니 신규 사업은 거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구 서구는 낡은 집을 수리해 주는 정부보조사업인 해피하우스사업 내년 지원 대상 가구를 절반으로, 지원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했다.
‘워크아웃’ 지자체 등장 현실화하나
인천시와 강원 태백시, 경기 시흥시는 재정난으로 워크아웃(재정위기단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9월말 기준으로 각 지자체의 재정상황을 진단해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40%를 넘거나 지방공사 부채가 순자산의 6배를 초과하는 곳을 재정위기단체로 지정하고자 심의를 진행 중이다.
행안부 등에 따르면 인천시의 올해 채무액은 2조7045억원. 기금을 포함한 예산 6조9780억원 대비 38.7% 수준이다. 아시안게임 준비와 도시철도 2호선 건설로 내년과 2013년 각각 지방채 5600억~5700억원을 발행하면 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흥시도 채무비율이 43.2%에 달한다. 태백시는 641억원을 출자한 태백관광개발공사를 통해 휴양시설인 오투리조트를 개발했지만 자산 규모가 402억원으로 급락하고 부채가 3361억원으로 늘어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근접했다.
이들 지자체는 제반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부 수치만으로 재정난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반발한다.
인천시는 인천도시철도 2호선의 경우 정부가 2018년까지 나눠서 지원하는 국비에 해당하는 지방채를 발행하기 때문에 재정위기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시안게임 관련 지방채 발행도 국제대회 개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만큼 2014년까지 평가를 유예해 달라는 입장이다.
시흥시도 지방채무 총액은 2011년 9월말 현재 3414억원이지만 3000억원은 배곧신도시(군자지구) 개발사업에 따른 토지 매입을 위해 2009년도에 발행한 지방채라고 했다. 재정으로 갚아야 할 악성채무가 아니라 토지 개발을 통해 자산을 매각하는 투자비 성격이란 것이다.
지자체의 자구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태백시는 오투리조트 매각에 속도를 내고 내년도 긴축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연말까지 오투리조트를 매각할 계획으로 1,2차 입찰이 유찰됐지만 최적의 업체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의회 10곳 중 4곳 내년도 의정비 인상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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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남 여수시의회 앞에서 여수지역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수지역정치개혁연대 회원들이 뇌물비리 정치인 사퇴촉구 및 의정비 인상추진 철회요구 집회를 갖고 있다. |
지방의회 10곳 중 4곳이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지자체들이 지방재정 악화로 소유한 토지를 팔거나 봉급을 깎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 지자체 등에 따르면 244개 지자체 의회 중 101곳(41.4%)이 내년 의정비를 인상할 계획을 세웠다. 95곳(38.9%)은 아직 인상이나 동결 여부를 정하지 못했으며 동결을 결정한 곳은 106곳(43.4%)에 불과하다.
인천 부평구, 동구, 서구, 남구, 연수구, 남동구 등 7개 구의회가 일제히 의정비 인상을 계획해 시민과 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계양구의회를 제외한 모든 구의회에서 의정비 인상을 추진해 사전에 담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지난달 29일 부평구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정비 동결을 촉구했다. 연대는 “시 부채비율이 40%에 육박하고 부평구 재정자립도가 27.7%에 불과해 직원들의 2개월치(11~12월) 인건비 41억원을 편성하지 못한 점을 들어 오히려 의정비를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용인시의회도 용인시가 재정위기를 겪는 가운데 의정비 인상을 추진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용인시는 경전철 사업, 호화 청사 건립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했다가 극심한 재정난을 맞았다.
특히 경전철 사업은 민간사업자인 (주)용인경전철의 공사대금 등 5159억원과 하루 최대 1억3000여만원, 연간 500억원의 이자를 떠맡게 될 상황에 놓여있다.
김해시의회는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다 시민들의 반발과 부산~김해 경전철 운영 적자로 12일 동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김해시의회의 갑작스런 동결선언은 20년간 민간 사업자에게 연평균 700억원이상을 지급해야 하는 경전철 사업의 재정적자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의정비 인상을 추진 중인 광역의회는 광주시와 경남, 경북, 충남, 충북, 강원 등 6곳이다. 기초 자치단체 중 서울에서는 마포구·노원구·은평구 등이, 부산은 남구·북구·사하구·해운대구 등이 추진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중구·동구·북구, 광주에서는 서구·북구 등이, 대전은 동구·대덕구 등이 의정비를 올릴 예정이다.
경기 고양·가평·화성 등, 강원 양구·인제·춘천 등, 충남 공주·천안·아산 등, 전남 고흥·목포·여수 등, 경북 문경·예천 등, 경남 진주·고성·산청 등이 예정하거나 검토 중이다.
지방의회가 의정비 인상을 요구하는 근거는 지방의회 월정수당 기준액 상승이다. 월정수당 기준액은 지자체 재정력 지수와 인구, 물가상승률, 공무원 봉급 변동 등이 반영된 기준 산식으로 결정된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이 5.1%올랐고, 물가 상승률도 높았다.
또 최근 2~3년간 지방의회 의정비를 동결했거나 다른 지자체에 비해 의정비 수준이 낮다는 점도 의정비 인상 이유로 꼽혔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과 달리 겸직을 하고 있다”며 “겸직을 제한하지 않고 의정비를 인상한다면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 _ 정부 공동책임론
공기업 먼저 내실을…강형기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지방재정 악화는 단순히 지자체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를 사전에 논의하고 동의한 정부에도 공동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자체가 자율권을 갖고 추진한 부실 사업도 있지만 정부의 승인·동의 과정을 전제로 했던 사업이 대부분으로 정부책임론은 당연하다. 정부가 사업 당시 지도권을 발동하지 않다가 이에 대한 문제점이 나타나거나 재정악화 이어졌을 때 지자체에게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것은 책임회피다.
지자체의 부실을 논하기 전 정부, 공기업의 부실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한 부실사업을 먼저 개선하지 않고 지자체에게만 ‘재정위기 단체’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토건사업도 지방재정 악화를 이끈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인천시, 태백시, 용인시 등 경기예측을 잘못하거나 방만한 경영을 한 결과다. 전문가들이 몇 년 전부터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지자체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 넘겼기에 오늘과 같은 재정 악화가 벌어졌다.
지방재정 악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복지사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꼭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복지정책을 펼치면서 재원마련을 지자체에 떠넘긴다는 것은 ‘큰집 잔치에 작은집 돼지가 죽는’ 경우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펼칠 때 지자체가 경제적 부담을 진다. 새로운 복지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지자체에 추가로 지원되는 재원이 없어 지방재정이 악화된다. 정부는 신규 복지사업을 펼칠 때 지방정부의 매칭펀드에 가능해서 설정해야 한다.
개방형 감사관제 시급…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승진이 최대 목표인 공직사회에서 단체장이 사실상 모든 인사권을 행사하는 현재 구조로는 매관매직과 청탁, 비리 문제를 끊을 수 없다.
인사비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 및 산하기관장 지방의회 청문회, 감사기구의 독립성 강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지자체가 개방형 감사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내부인사나 전직 감사원 직원을 감사관으로 선발해 투명성 확보가 어렵다. 감사관의 낮은 임금 등의 문제를 개선해 외부인사에게 맡겨야 한다.
지방재정 악화는 단순한 지자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자체에게 재정조기 집행과 지방채 발행을 장려하고 감세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들로 지방정부 예산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 공동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방재정 악화 지자체로 꼽히는 인천시와 용인시의 경우 무리한 기반시설 투자에 나선 집행부의 책임이 크지만 이를 감시해야 하는 시의회의 책임도 크다. 특히 시의회가 사전 정책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고 감시·견제 기능을 제대로 못했다.
의정비 인상문제는 국민 정서적 문제라고 본다. 정책적으로는 지방의원들의 겸직을 금하고 이들에 대한 의정비를 인상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에 대해 국민들은 납세자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고 싶은 것은 지방의회 의정비 인상이 지방재정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다는 점이다. 지방의회 예산이 지자체 예산의 약 0.02%이다. 이중에는 의회에 속해 있는 공무원들의 인건비도 포함된다.
현재 지방의원의 반은 겸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의정비 인상에 대해서 시큰둥하다. 하지만 전업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의원들에게는 현실적인 의정비를 지원해야 한다.
로컬종합 = 이진욱·라안일 기자 jinuk·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1.10.24 (월)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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