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추진땐 풀뿌리 지방자치 뿌리채 흔들…지역 현실 안배한 조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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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에서 열린 ‘특별·광역시 자치구 및 군 개편’과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 방안 마련을 위한 수도권 토론회에서 좌장인 이규환 중앙대 행정대학원장이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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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정구역은 해당지역 주민이 주도해 생활권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다수의 지자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지방행정체제개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가 통합 지자체에게 보조금 지원, 개발촉진지구 지정 등 ‘당근’을 제시하면서 지지부진한 지자체 통합을 유도하고 있다. 주민 합의를 전제하지 않은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행개추위)는 수도권 등 전국 5개 권역에서 토론회를 열고 지방행정체제개편의 중점 과제인 ‘특별·광역시 자치구 및 군 개편’과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에 대한 방안을 모색했다.
행개추위는 20일 서울시청 후생동에서 열린 수도권 토론회를 시작으로 충청권(24일 대전시청), 호남권(26일, 광주시청), 경북권(31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경남권(11월4일, 부산시청) 순으로 진행 중이다.
토론에 나선 현직 구청장, 구의원, 대학교수, 시민단체, 지역 언론인 등은 지방행정체제 개편 및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에 있어 지방의 각 주체들과 지역 주민의 자율에 의한 논의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지역행정체제개편은 주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주민주도의 행정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1부 특별·광역시 자치구 및 군 개편방안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행정구역 개편이 풀뿌리 지방자치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며 주민의사를 존중해 결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빈 인천신문 정치부국장은 “현행 행정체제가 종합행정의 저해, 대주민 서비스 및 복지 불균형, 공공시설의 과다설치, 생활권과 행정권 괴리로 인한 주민 불편 등을 가져온다는데 일정 부분에서 동의하나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 부국장은 “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개편으로 주민들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현행 행정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라는 측면에서 특·광역시 내의 자치구는 존속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김영수 산업연구원 지역산업 팀장은 도시경쟁력과 자치구 간 불균형 완화 관점에서 자치구 통합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구청장 선출방식은 임명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팀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연구결과 인구규모 600만명까지는 1인당 주민소득이 정비례 관계에 있다”며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규모의 경제 확보로 도시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도시 규모 확대는 불가피하고 인근 지역과의 통합 또는 연계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자치구의회를 폐지하는 지방행정체계 개편안의 경우 정당공천제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기획처장은 “정당정치, 정당시스템, 중앙정치의 폐단 등에 대한 국민 불신이 확산일로에 있다”며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의 폐지 또는 개선이야 말로 자치구의회의 폐지나 통폐합 여부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치구 단위의 개발로 인한 재정적 낭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자치구를 행정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황춘하 서울시 서대문구의회 의장은 자치구의회는 존치시키고 생활권을 바탕으로 자치구 간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적극적인 주민참여가 자치 지름길
방청객들이 토론자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2부 토론에서는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 방안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외국과는 달리 규모가 큰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주민자치회를 강화해 근린자치를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미 지방의회발전연구원장은 “주민자치회를 정부주도로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주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관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필두 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자치회를 법인화해 주민자치활동, 지역복지 및 시민교육활동. 지자체의 위탁사무 등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신력과 책임성 확보, 대외적 신뢰성 확보 등의 측면에서 법인화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상우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주민자치회 법인화에 앞서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에 법적 지위 부여, 기능과 권한 확대, 재정지원을 강화해 현재의 주민자치회관을 확대 개편해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기초자치단체·주민자치센터·주민자치회관·주민총회를 아우르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기초자치단체와 대등한 교섭권, 예산편성·심의·의결권 등의 권한을 갖는 ‘주민자치회 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창복 (사)사람과 마을 이사는 “주민자치회가 상위에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영향력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등한 위상에서 교섭권을 가져야 한다”며 “상위조직의 대칭성 확보는 준지방자치단체형 모델이 주민자치로서 실효성을 가지기 위한 대전제”라고 강조했다.
임태순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읍·면·동 지방자치를 실시할 경우 약한 준지방자치단체형이 현실성에 맞는다며 그 이유로 주민참여의 적극성 부족을 꼽았다. 임 논설위원은 “현행 지방선거 투표율이 높지 않고 재선거나 보궐선거의 경우 10~20%에 머무는 투표율로는 대표성을 지니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율적 주민자치 모범사례정부가 주도한 주민자치센터가 근린자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근린자치를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관 주도의 근린자치가 아닌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주민자치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주민들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보충하는 균형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마을자치조직이 독립적으로 조직돼야 한다. 근린단위에서 주민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자기조직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근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주민들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제주도 하귀2리 마을자치회는 자연마을 5개동, 1274세대 3306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주민자치회다. 이장이 자연마을의 책임자인 동장과 협의 운영하고 동별로 개발위원을 선출하고 개발위원회가 마을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한다. 모든 주민이 2만5000원의 회비를 납부해 공동체 활성화, 생활질서, 교육, 환경정비, 민속보존 등의 활동을 펼친다.
부산시 물만골 공동체는 50년전부터 서민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 현재 430세대에 158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자연마을 서민촌이다. 마을 조성 초기에는 주민들이 정기적인 회비를 납부해 운영했으나 현재는 필요할 때마다 회비를 납부한다. 주민총회와 27명의 대의원회의가 매월 개최되고 운영위원회는 수시로 열린다. 지역복지, 보건의료, 교육 등 대부분의 문제를 자체조직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물만골 공동체는 마을청소, 마을 내 도로의 개선, 마을버스 운행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기 위해 마을 주변 토지 5필지 중 3개 필지(1만6000평)를 자체적으로 매입했고 나머지 필지에 대해서도 매입을 추진해 생태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충남 홍성군 풀무마을은 교육적 가치인 학교가 기반이 돼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주민들이 마을 정책에 직접 참여하는 발판을 다졌다. 협력, 동원을 가능하게 한 이 마을은 선도적인 오리농법을 도입해 생태적 자립경제의 기반을 다진 후 교육, 문화, 복지 등을 사회적 관계망을 확대해 생활공동체로 발전했다.
“구역 개편해야 도시경쟁력 ↑”
발제1_ 특별·광역시 자치구 및 군 개편을 위한 연구
조석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조석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특별·광역시 자치구 및 군 개편을 위한 연구’에서 21세기는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시대로 현행 자치구·군 제도는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자치구·군 제도는 종합행정의 저해, 재정자립도에 따른 대주민 서비스 및 복지 불균형, 대도시 경쟁력 취약, 생활권과 행정권 괴리로 인한 주민 불편 등의 문제들을 초래하기 때문이란 것.
조석주 연구위원은 “현행 자치구 문제점과 연계된 평가지표, 지방행정체계개편특별법과 연계된 평가지표, 대도시 행정의 특성과 연계된 평가지표, 선행연구에서 제기된 평가지표를 선정·측정한 후 맞춤형 대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치구 통합, 구의회 선출-구역통합, 준자치구제, 행정구 등의 4가지 개편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자치구 통합안과 구의회 선출안은 현행 시와 구·군이 독립적인 2자치계층을 유지하는 것이며 준자치구제와 행정구는 1자치계층으로 축소된다. 조 연구위원은 행정구안은 현행 자치구가 시의 하부행정기구로서 단순 집행기능을 수행하게 돼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위원에 따르면 자치구통합안은 2개 이상의 자치구를 통합하는 것으로 자치구의 지위를 유지하고 법인격을 보유한다. 주민직선에 의해 단체장과 구의원을 선출해 지자체가 자치행정권,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자치구통합안은 자치구의 구역통합으로 자치구간 인구, 면적, 재정력의 격차를 완화할 수 있고 행정기구와 인력, 시설의 통합으로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반면 자치형태 개편과 기능조정이 수반되지 않아 자치구간 갈등의 존속, 정책조정 기능의 부족으로 대도시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그는 “이 통합안은 특·광역시와 자치구간 공동계획, 갈등조정 기구 등 유기적인 협력장치 강화, 기능 재조정으로 중복기능을 최소화 한다면 이상적인 통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회 활성화가 성공 열쇠”
발제2_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방안 연구
소진광 경원대 행정학과 교수소진광 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방안 연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주민자치회 조직이 아닌 자율적 주민조직이 생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역화된 기초자치단체는 자치행정에서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렵고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 역시 주민자치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
소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기초단체인 시·군·구 평균 인구는 21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읍·면·동 단위 이하의 근린자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주민생활과 연계된 작은 일들(동네공원 관리, 생활체육시설 등)은 자치행정에서 소홀히 하거나 사각지대에 놓여 주민의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의 기초자치단체 평균 인구는 영국이 12.8만명, 일본이 6.7만명이며 대부분의 나라(이탈리아, 미국, 독일, 스페인)들이 평균 1만~3만명이다. 이들 국가는 더 작은 규모의 공동체 마을에까지 의회구성 권한을 제공하는 등 근린자치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근린자치 활성화를 위해 1999년 시범사업으로 기존의 읍·면·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하고 2005년 말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조례준칙을 개정해 주민자치센터의 기능 중 주민자치가 가장 우선이라고 규정했다.
정부 노력에도 주민자치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 활동분야에서 거의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주민자치센터는 관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로 주민들의 자치활동이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제시나 심의 등에 국한돼 프로그램 이용자로서의 역할에 한정되고 있다.
소 교수는 “근린자치를 위해서는 선출된 주민자치위원들이 직접적인 마을자치를 할 수 있도록 의제설정, 예산배정 등의 권한을 제공해야 한다”며 “마을 단위의 자율방범 프로그램, 소규모 공원이나 놀이터 설계 등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자치의식을 갖도록 하는 활동과 사업들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룸 = 라안일 기자 raanil@segye.com
- 기사입력 2011.10.28 (금) 17:45, 최종수정 2011.10.28 (금)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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