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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 발효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전남도, 59개 과제 정부에 건의…쥐꼬리 반영 ‘불안감 확산’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이래 44개국과 FTA가 발효되는 등 시장 개방이 바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특별법 등 관련 대책 마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농가를 중심으로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
전남도와 농업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도는 한·유럽연합(EU)과 한·미 FTA를 앞둔 지난해 5월 FTA 대응방안을 골자로 한 4대 분야 59개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반영된 과제는 11개로 반영률이 18.6%에 그치고 있다.
대표적인 FTA 대안으로 거론돼온 ‘농업·농촌활성화 지원 특별법’의 경우 FTA로 수혜 받는 산업에서 재원을 확보해 농업·농촌에 재투자할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임에도 2년째 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농업과 제조업간 양극화와 농업인 소득감소로 인한 신규 투자 위축 등으로 농업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자는 것이다. 농촌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개별적으로 시행 중인 농업인 복지사업도 한데 묶어내자는 게 주요 골자지만 법적 장치는 외면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과 환율의 급·등락에 맞서 국내 배합사료의 가격안정을 위해 마련된 배합사료 가격안정기금 2조원 조성(3년 이내)도 정책 우선 순위에 밀려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옥수수 등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배합사료 의존도가 높은 돼지와 닭, 오리 사육농가의 경영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배합사료값이 오를 때 인상액을 보전할 수 있도록 기금 조성이 시급한 실정이며 일본은 이미 1995년부터 배합사료 가격 안정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별법 제정과 축산배합사료 안정기금은 전남도 등이 요구하는 FTA 핵심 과제다. 도는 청와대 등에 수차례 요구했으나 정부가 난색을 표해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
박병홍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관은 “특별법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FTA 이익과 손해’를 계량화하기가 쉽지 않는 등 여러 어려움으로 제도화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반영된 과제 중에서도 소득보전직불금 지원 기준가격의 경우 80%에서 95%로 상향을 요구했지만 90%까지만 반영됐다. 축산경쟁력 강화기금은 10조원을 요구했지만 시설현대화사업 FTA 기금 3조원과 축산발전기금 2조원 등 5조원만 반영됐다.
도 관계자는 “FTA로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축산업 분야의 붕괴는 식량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신속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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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 평택에서 열린 농민 결의대회에서 전국한우협회 경기도 안성, 용인 평택지부 농민들이 청와대에 한우를 반납하기 위해 상경하려 하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
대책마련 뒷짐 진 정부 ‘FTA 쓰나미’ 농가 덮쳐
소값 폭락 우려가 현실로…축산농 ‘한우 반납’ 시위·집회 잇따라
‘소값 파동’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안으로는 가격 폭락, 밖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의 거센 파고로 농가 주름살이 늘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시장 개방에 몰두하는 사이 소값은 추락을 거듭했다. 값싼 수입산 쇠고기의 물량공세에 한우는 설자리를 잃었다. 소값뿐 아니다. 농산물 등 외국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품목들은 모두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소값 파동으로 들여다본 FTA의 문제점을 점검했다.
“정부는 돼지 삼겹살보다 못한 송아지 값을 책임져라”
한우 가격 폭락에 항의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축산 농민들의 항의 시위로 5일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전국한우협회 11개 지부 축산 농민들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한우를 정부에 반납하는 시위를 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주요 고속도로 나들목과 예상 출발지 등에 경찰병력을 배치해 농민들의 서울행을 원천봉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민과 경찰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일부 고속도로 주변은 농민들의 시위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한우협회 경북지회 회원 1000여명은 이날 경북대 상주캠퍼스 앞에서 ‘한우 반납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한·미 FTA 비준과 사료값 인상으로 축산업이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우 농가 다 망한다. 대책 마련하라’ 등의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1㎞가량 떨어진 상주~청원 고속도로 남상주 나들목으로 진출했다. 농민들은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고 주변 도로는 3시간여 동안 교통 혼잡을 빚었다.
광주·전남지회 소속 농민 250여명은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 한우값 폭락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이날 차에 싣고 온 한우 5마리 가운데 1마리를 청사 앞에 20여분 동안 풀어놓고 박준영 전남지사 면담을 요구했다.
한우협회 전북지회 회원 200여명은 트럭과 한우를 이끌고 한우 반납 운동을 벌인다며 청와대 상경 투쟁에 나섰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경찰이 원천봉쇄하면서 상경이 무산됐고 이 과정에서 농민과 경찰간 마찰이 빚어졌다.
전국농민회총연합 전북도연맹도 성명을 내고 정부와 국회가 한우산업 붕괴를 수수방관한다면 정권 퇴진운동과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농민들은 “정부는 농촌의 현실을 외면한 채 한·미 FTA에 따른 관세철폐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한우산업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울수록 손해를 보는 축산 부문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한우 수매, 암소 도태유도 장려금 및 사료자금 지원 확대, 비육우 가격 안정제도 도입, 송아지생산 안정제 보전금액 확대 등을 요구했다.
이윤경 전국축협 노조위원장은 “축산농가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정부가 내놓은 한우대책은 고작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소고기의 일정부분을 한우로 대체하자는 것 뿐”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고 수입산 쇠고기 개방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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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 평택에서 열린 ‘한미 FTA 무효! 한우농가 피해대책 마련을 위한 농민 결의대회’에서 같은 매매가가 적힌 송아지와 개가 눈길을 끌고 있다. |
소값 곤두박질 사료값도 안나온다
한·미 FTA 발효땐 15년간 전국 10조470억 소득 감소…농민 많은 전남지역 직격탄
“송아지 가격이 삼겹살 1인분 값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축산 농가들의 분노어린 하소연이다. 추락한 소값은 여전히 바닥을 치고 있다. 8일 현재 600㎏ 한우 수소의 가축시장 평균거래 가격은 320만원. 구제역 발생 이전인 2010년 11월 484만원에 비해 164만원, 비율로는 33.8%나 하락했다.
한우 암소의 산지거래 가격도 380만원으로 1년 만에 35% 하락했다. 4∼5개월된 한우 암송아지도 170만원에서 9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젖소수컷 육우송아지(7일령)의 경우 1만원 대로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내놓은 쇠고기 등급별 가격에 따르면 600㎏ 한·육우를 기준으로 최상급인 1++등급 소를 판 농가에서 받는 돈은 563만2000원(㎏당 1만5910)이다. 사육 경영비를 빼면 마리당 148만9000원,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비를 제외하면 45만2000원이 남는다.
나머지 등급은 사정이 다르다. 생산비를 빼고나면 1+등급은 -14만3000원, 1등급은 -69만5000원, 2등급 -189만9000원, 3등급은 -281만6000원으로 모조리 적자다. 인건비를 계산하지 않은 경영비만 고려해도 2, 3등급은 각각 마리당 86만2000원, 177만9000원을 손해보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육 규모도 대폭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으로 한·육우는 전남 51만 마리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295만 마리로 전분기보다 3.1%(9만4000마리) 감소했다.
FTA도 근심거리다. 국내 축산농가가 한계에 달했고 여파가 4∼5년은 유지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축산업을 보호할 ‘FTA 빗장’은 이미 풀린 상태다.
한·칠레 FTA 협상이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유럽연합(EU), 페루 등과 7건(44개국)의 FTA가 발효 중이다.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콜롬비아, 터키 등 12개국과 7건의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당장 한·미 FTA가 발효되면 앞으로 15년간 전국적으로 10조470억원의 소득 감소가 예상되고 전남에서만 1조4085억원, 전국 대비 무려 14%의 농가 소득감소가 현실화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남 축산농가 피해액은 연평균 700억원에 달해 기반 붕괴마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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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제주도의회에서 제주도농업인단체협의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억지 논리를 펴는 지역 순회 설명회를 중단하고 농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소값폭락 원인은
정책·유통·소비 등 총체적 난국
당국의 정책 실패에 외국산 쇠고기 빠른 시장잠식
소값 파동은 사육두수는 물론 빗장 풀린 수입축산물, 왜곡된 유통구조, 소비패턴 변화 등이 작용한 결과다. 정부 당국의 정책 실패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상반기 송아지와 소 입식비가 200만원 안팎인데 비해 한우 비육우 600㎏ 1마리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600만원을 넘어섰다. 사료비도 220만∼230만원으로 입식비를 추월한 상태였다. 정부가 별다른 손을 쓰지 않는 사이 농가에선 사육두수를 계속 늘렸고 그 결과 수급불균형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가 FTA 협상을 숨가쁘게 진행하는 동안 한우는 수입소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육류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까지 수입된 외국산 쇠고기는 24만4573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3%(4만1249톤)나 증가했다. 저가 공세에 국내 소비시장이 빠르게 잠식된 것이다.
유통구조도 발등의 불이다. 축산농가에서 수집, 도축, 가공, 중간 유통업체(도매상), 대형 유통업체(소매상), 소비자 등 7단계의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다보니 한우값 폭락에도 소비자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농협이 농가생산물의 절반 이상을 팔아 중간상인들이 가격을 조작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 대책이지만 중간상인만 이익보는 왜곡된 구조를 무너트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비패턴도 바뀌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도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 ‘시장 개방이 확대돼 우리 농산물값이 더 비싸더라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39.1%로 1년 전보다 6%포인트 내려간 반면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품질 우수성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38.2%로 1년 전보다 11.5%포인트가 증가했다.
피해대책은
농가지원 늘려 경쟁력 높여야
특별법 마련 수혜업종 이익 피해업종 ‘교차지원’
묘책이 없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사료값과 끝없이 폭락한 소값에 전문가조차 확실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병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장은 “축산 농가 대부분이 소 20마리 미만 영세 번식농가다 보니 시장가격에 매우 민감한 상황”이라며 “지난해 초 구제역이 종료된 이후에 태어난 송아지들이 본격 출하되는 올해 봄 상황을 지켜봐야 소값 안정화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FTA로 수혜받는 산업에서 재원을 확보해 농업·농촌에 재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FTA로 천문학적인 관세면제 혜택을 받은 무역업자와 수입원료 가공기업에 ‘농촌부흥세’를 부과해 유기농업 육성과 농업 발전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곡된 유통구조도 바로잡아야 한다. 산지와 소매점 간 가격연동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복잡한 유통구조를 간소화해 중간 상인들의 과도한 이윤을 없애야 한다.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 활성화도 가격 인하의 한 방법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이 주도하는 한우소비 촉진운동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농촌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농가를 위한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 담보부족과 높은 대출금리에 좌절하는 농가를 위해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과 무담보 대출은 확대하되 수수료를 낮추는 금융지원 방안이 요구된다.
자격기준이 까다로워 소규모 농가에는 ‘그림의 떡’이었던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 등 농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의 기준 완화도 필요하다.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 기사입력 2012.01.13 (금) 15:30, 최종수정 2012.01.13 (금)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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