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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요무형문화재 47호로 지정된 궁시장 박호준 씨가 인천 부평에 있는 공방에서 대나무로 전통화살을 만들고 있다. 박호준씨 제공 |
126개 종목 중 11개 보유자 이미 사라져
인고의 세월 ‘쥐꼬리 지원금’ 전수자 기근
6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전국 곳곳이 전통문화행사로 들썩이는 가운데 잊혀가는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과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예능·기능 보유자들은 평생 외길을 걸으며 한국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지만 생활고와 주변의 무관심으로 지쳐가고 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26개 종목 중 11개 종목은 보유자가 없거나 기술을 전수받을 조교(전수교육조교)가 없어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베틀의 부속품을 만드는 바디장은 인간문화재와 전수조교가 모두 없어 단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2012년 1월말 현재 예능 73개, 기능 53개 종목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총 178명이 보유자로 인정받고 있다.
로컬세계가 2일 문화재청의 ‘중요무형문화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면서도 보유자가 없는 종목은 5개였다. 이들 종목은 거문고산조, 제주민요, 곡성 돌실나이, 명주짜기, 소반장이다. 보유자가 없다는 것은 문화재 종목은 남아있고 이를 펼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문화재 후보로 불리는 전수조교가 없는 종목도 6개로 조사됐다. 갓일, 낙죽장, 화혜장, 한지장, 금박장, 줄타기다.
이처럼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부족한 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기까지 기간이 20년 이상으로 길고 지원금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보유자가 문화재청으로부터 받는 전승지원금은 매달 130만원. 후보자인 전수교육조교, 전수장학생은 각각 70만원, 20만원을 받는다. 국가 최고의 장인이 연봉으로 1500여만원을 받는 셈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지원금은 장인들을 생활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전통화살 제조 기능보유자(궁시장)인 박호준(68)씨는 “무형문화재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전통을 이어가겠냐”며 “인기 없는 종목은 자손들이 대를 잇지 않으면 결국 단절되는 만큼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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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지정 무형문화재인 방춘웅 홍성갈산토기 대표가 토기를 만들고 있다. 홍성갈산토기는 행안부 핵심자원으로 선정돼 현대화사업을 지원받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
소중한 자산 ‘전통문화’ 위협받는다
실제적 지원 여전히 인색 ‘말의 잔치’
민족적 자부심 무형문화재 등 ‘우리의 쟁이’들 지치고·외롭고·늙고 ‘3중고’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여” 정부와 지자체들이 전통문화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한류 열풍 등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진리가 검증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품 향토자원 개발로 지역경제를 견인하고 국격 향상의 계기로 삼을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무형문화재 등의 올바른 평가부터 이뤄져야 한다. 잊혀가는 세시풍속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올바른 문화재 정책을 통한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계승,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 요구된다.
찬밥 무형문화재 더운밥 돼야
인천 부평에 있는 박호준(68) 씨의 공방.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47호로 지정된 ‘궁시장(弓矢匠)’인 그는 3대째 화살제조를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화살은 유명 사냥꾼들이 애용하거나 국궁에 사용됐다. 그러나 양궁이 보급되면서 이용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전통화살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깎고, 다듬고, 말리는 6개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화살이 나온다. 3개월 동안 음지와 양지를 번갈아가며 건조시킨 대나무 중 무게와 직경이 일정한 것으로 선별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이후 살대를 불에 구워 강도와 색깔을 내고 활줄을 끼워 오늬와 깃을 달아야 한다. 소 힘줄, 복숭아나무껍질, 부레, 꿩 깃털 등 들어가는 재료도 다양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다섯 촉 정도를 액자에 표구해 150만원 정도로 팔려나간다. 그러나 수요가 없어 일년에 1~2점을 파는 게 고작이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화살은 여름에 습기가 차면 뒤틀려 망가진다. 만들어놓고 쌓아둘 수 없으니 팔리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그냥 나눠준다. 결국 재료비도 충당할 수 없어 아예 만들지 않게 된다.
50년 경력의 박씨가 매달 문화재청으로부터 받는 전승지원금은 130만원에 불과하다. 후보자인 전수교육조교, 전수장학생, 이수자는 각각 70만원, 20만원, 0원을 받는다.
박씨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들 박주동 씨가 이수자로서 15년째 화살제조 기술을 배우고 있지만 이후 물려줄 사람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명맥 잇기도 힘든데 기술 연구와 발전은 꿈같은 얘기다.
박씨는 “무형문화재가 되려면 전수장학생부터 이수자, 전수교육보조자를 거쳐야 하는데 그 기간만 20년 이상 걸린다”며 “그제야 정부에서 130만원을 지원받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가 하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통화살 제작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찾아와도 3~5년이 걸리는 전수생 과정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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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을 앞두고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본관에서 필봉국악단원이 흥겨운 농악을 연주하고 있다. |
새로운 발굴·계승은 엄두도 못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보존관리 사업비 내역을 살펴보면 2005년 130억원, 2006년 135억원, 2007년 207억원, 2008년 205억원, 2009년 247억원 등 모두 924억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유형·무형) 문화재 보존관리 사업비 1조8080억원의 5.1%에 불과한 금액이다. 나머지 1조7156억원은 유형문화재에 사용됐다. 그나마 무형문화재 예산의 40% 정도는 인간문화재 전승지원금으로 투입돼 사실상 새로운 무형문화재를 발굴·계승하는 데 사용된 예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 전문가는 “유형문화재가 무형문화재보다 상대적으로 많고, 보존·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무형문화재에 쓰이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무형문화재 관련 기관이나 개인이 불평등을 느끼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은 국가가 ‘전승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승교육을 하려면 재료비와 작업실 운영비 등이 필요하지만 현재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입이 거의 없는 상당수 인간문화재는 지원금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실정이다.
취약종목 살리고 보유자 늘려야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정부간위원회 24개 위원국 중 하나로 국제사회에서 무형문화재를 보호하는 노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먼저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과 인간문화재 인정을 놓고 불거지는 공정성 시비와 관리부실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신규 종목 지정과 보유자 인정 방법이 객관적이고 구체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 심사기준이 없다 보니 심사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고 이에 따른 탈락자들의 반발도 크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새로운 문화와 접목시켜 자생력도 길러줘야 한다. 무형문화재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 못지않게 새로운 사업과의 연계 등으로 문화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명품 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무형문화재의 관광자원화와 함께 인간문화재들의 작품을 국가가 적극 구매하거나 판로를 뚫어주는 등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작품 구입과 전시 기회를 늘리고, 기업들이 해외 바이어 선물로 이들의 작품을 활용토록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전통문화 잘만 가꾸고 육성하면 ‘황금알’
문화관광부 ‘창조적 발전 전략’ 제시…전통기술 131건·특산물 216건 집중 육성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팔을 걷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류의 지속 성장을 위한 1단계로 ‘전통문화의 창조적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문화부는 지난 30일 “2000년 이후 드라마와 K팝 중심의 한류 붐이 확산하고 있으나 전통문화에 대한 국내외 인지도와 발전은 지체된 상황”이라며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격 제고의 주춧돌이 될 전통문화의 창조적 발전전략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문화부는 2015년까지 전통문화 부분의 국가브랜드 순위를 현재 35위에서 20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단기 10대 및 중장기 10대 핵심 과제를 선정해 올해 예산 335억원을 투입하고 2013~2014년에 필요한 예산 2300여억원도 확보해나갈 예정이다.
올해 추진할 주요 사업은 공공기관에 선도적으로 한국적 문양과 디자인적용 기준 제시, 호텔·공항 등 민간부문의 고품격 한국생활문화모델 개발, 한국문화의 특성과 가치 발굴 및 확산, 전통문화와 관계산업간 협업 프로젝트, 전통문화자원의 콘텐츠 개발 촉진장 마련, CT·IT 기술을 접목한 첨단 전통문화콘텐츠 개발, 한지 품질인증제 시범시행, 한복 인식개선 및 한복진흥센터 설립 추진, 고택의 관광산업 활용을 위한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 한국적 특색을 반영한 문화예술교육 확대 등 10개다.
문화부 관계자는 “앞으로 사업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안부 25개 ‘핵심자원’ 사업화
행안부는 향토자원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 동력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해부터 체계적인 육성작업에 돌입했다. 핵심자원은 전통기술 131건과 특산물 216건으로 총 347건. 행안부는 특히 이 가운데 전통기술을 사업화하기로 하고 지난해 3~4월 해당 지자체와 사업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했다. 서면심사와 현장평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 선정회의까지 거쳐 최종적으로 25건을 선정했다.
서울 종로구, 전북 순창군 등 각 지자체가 지역 대표자원으로 내세우고 행안부가 인증한 25개 향토핵심자원은 기술·공예분야. 국궁, 화혜장, 낙죽장도 등 장인기술과 백자, 분청사기 등 공예자원, 탈, 화문석 등 전통기술이다. 장인기술은 사라져가는 우수한 장인들 혼을 되살리고 국가 상표화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공예자원은 현대 생활용품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차원에서, 전통기술은 지역문화를 중심으로 관광상품화를 추진한다.
행안부는 전통기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사업화하는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는 전통기술과 장인기술 공예자원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대중성 있는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지난해부터 3년간 100억원을 투입해 생산설비 구축과 디자인·상표개발 홍보·판매 등을 종합 지원하고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손을 잡고 디자인·상품개발을 지원한다. 전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전통기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량 생산하도록 돕는다. 체험이나 관광·교육·전시·연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도 포함된다.
향토핵심지원이 곧 지자체 상표가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권리화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 특허청과 ‘지식재산 등록지원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각 상품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국제화 작업도 시작했다. 지난해 8월 7개 시·도 24개 업체에서 만든 80여 품목을 들고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기념품견본전시에 참여했다.
지자체 문화재 보호 앞장
지자체들도 문화재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충남 보령시는 전국 9산 선문 중 하나인 성주사지에 대한 연차적 발굴조사를 실시해 성주사지 정비의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충청수영성은 지난해 영보정터 발굴작업을 완료하고 인근 토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조성하는 등 조상의 얼과 지혜가 담긴 문화재의 발굴·관리로 품격 높은 역사·관광보령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시는 문화재 정비 사업비도 대폭 확대했다. 충청수영성 정비사업비 21억원을 비롯해 성주사지 유적정비 16억원 등 총 52억원을 투자한다. 지난해 34억 원에 비해 52% 증가한 수치다.
문화재 발굴·보존 외에도 지역 내 산재돼 있는 문화재 자료 일제조사를 실시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문화재로 지정 신청하는 등 문화재 지정을 확대해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여갈 방침이다.
광주시의회는 최근 ‘광주시 호남학 진흥조례안’을 의결해 통과시켰다. 광주와 전남·북지역 자연유산을 비롯해 역사와 문화, 철학과 사상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호남학(湖南學)의 계승·발전을 위해 지자체가 예산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조례안에는 지역 역사·문화·전통 등의 체계적인 발굴과 복원, 이 같은 자원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사업 전개, 지역 문화자원으로의 특화, 한국학 발전에 기여 등 호남학 진흥시책의 기본방향이 담겼다. 호남학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5년마다 정비하도록 규정했다. 관련 시책을 심의하는 호남학진흥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 기사입력 2012.02.03 (금) 16:35, 최종수정 2012.02.03 (금)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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