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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을 2015년까지 추진키로 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9개월만에 또 다시 재추진 움직임 논란 불씨
KTX 천성산 터널공사 우여곡절…오히려 도롱뇽 서식지 더 늘어나
제주 해군기지 등 국책사업을 두고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과학적 근거 없이 ‘무조건 반대’를 외치면서 사회경제적 손실을 불러오고 있다. 국론분열, 지역갈등 심화는 물론 건설기간 증가로 인한 혈세낭비 등 피해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 해군기지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과 마찰이 6년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시일이 갈수록 반대 집회·시위가 늘어나고 경찰의 대응도 강경해지고 있다. 올해만 2개월 새 연행된 주민과 활동가가 100명을 넘어섰다. 그러자 강정마을회 등이 급기야 ‘인권탄압’을 이유로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야당과 여당 모두 특검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해 강력 추진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제주지역 국회의원 후보들에 대해서도 이를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촉구, 특검 도입을 4.11 총선과 연계시켰다.
반면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국책사업임을 재천명하고 강력한 추진의지를 확고히 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을 2015년까지 추진키로 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그간 진보진영과 야권 등 일부의 강력한 반대운동 등에도 불구하고 안보 문제와 관련,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해군기지 문제는 이미 지난해 8월 법원이 건설 방해 금지 판결을 내린 사안이다. 2007년 4월 주민 유치 결정, 주민투표 절차 등을 거쳐 정부 보상까지 마무리된 사업이지만 일부 단체의 반대로 원칙과 법규가 무색해졌다.
영남권은 지금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3월 동남권 신공항사업의 백지화를 발표한 지 9개월 만에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재추진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범시·도민 재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신공항 재추진 선언식을 가졌다.
추진위는 선거를 겨냥해 신공항 사업을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대형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압력을 넣어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간 갈등 재현은 물론 새 공항의 경제성 논란도 우려된다. 특히 신공항은 1998년 부산이 유치계획을 발표한 이래 10년 넘게 끌어오다 갈등만 남기고 무산된 사업이다. 이 때문에 지역 이기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과학적 근거 없이 국책사업에 일방적인 반대 입장을 보여 사회적 손실을 부르고 있다.
환경정보평가원에 따르면 2001년 개항한 인천공항의 경우 환경단체들은 기상문제, 지반침하, 해양오염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또 공항이 건설되면 철새가 찾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지반은 외국의 해상 연약지반에 건설될 홍콩공항, 간사이공항, 창이공항 등에 비해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개체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KTX 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 천성산 터널공사 역시 ‘늪지 파괴로 도롱뇽 서식지가 없어지고 지하수도 고갈될 것’이라는 이유로 공사가 중단됐었다. 당시 지율 스님은 공사반대를 위한 단식을 총 321일간 진행했다. 환경단체들은 ‘도롱뇽과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공사 이후 늪이 파괴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늪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롱뇽의 서식지인 ‘1급수 습지’도 잘 보존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갈등지수는 0.71로 OECD 국가 중 4번째로 나타났다. 미국과 일본의 1.7배, 독일의 2배로 OECD 평균(0.44)보다 훨씬 높았다. 노사갈등과 국책사업 갈등으로 지불되는 비용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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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강정마을회 등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한 특별검사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긴급진단_국책사업 갈등 해법은?
LH 본사 이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새만금, 경주 방폐장…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국책사업 중 오랜 진통을 겪은 곳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이익단체가 타협 없는 평행선을 달리면서 소모적 논쟁이 불가피했다. 갈등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정부의 원칙없는 사업 추진과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 지역이기주의가 어우러지면서 대한민국을 ‘갈등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시간 걸리더라도 ‘先 소통 後 추진’이 정답
정치 논리 배제·철저한 국익·여론수렴 전담 ‘관리 시스템’ 급선무
“국책사업으로 인한 갈등을 막으려면 신뢰성 높은 사회적 조정자나 기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매번 반복되는 국책사업 갈등을 해결하려면 체계적 갈등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책사업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좋은 시설은 가까이, 나쁜 시설은 멀리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같아서다. 그러나 국가 발전의 동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국책사업이 사회적 갈등이나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본궤도를 찾지 못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권에서 선거를 의식해 국책사업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주요 국책사업 유치 과정에서 입지의 타당성보다는 정치인의 ‘실적’으로 생각해 무조건 찬성 혹은 반대를 외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 백년대계가 사업의 연계성과 효율성, 국제 경쟁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유력 정치인이나 균형발전이라는 논리 등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 논리로 추진된 경북 울진공항은 110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으나 개항도 하지 못하고 2010년 7월 비행교육훈련원으로 용도 전환됐다. 3597억원의 건설비를 들여 2002년 문을 연 강원 양양 국제공항은 정기노선이 없는 공항으로 전락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19년 동안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사회 갈등의 증폭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전북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역시 지방자치단체장의 독단과 주민 의견 무시로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거나 조정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의 사회통합정책실에서 공공갈등 관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기구는 부처 간 갈등이나 개별 부처 수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 데는 유용하다. 반면 정부가 이해 당사자가 되는 국책사업에는 공정한 갈등 조정 기구가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갈등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아 공공정책을 산출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와 규범, 정책운용 시 공정성과 일관성 등을 발휘하는 갈등조정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관련된 복잡한 갈등구조는 갈등해결전문가의 지원을 통해 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갈등관리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국책사업 추진 전 주민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대형 공공사업의 경우 공청회나 주민설명회 등 여론수렴 과정이 있지만 정부의 사업계획이 확정된 뒤 진행돼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국책사업은 ‘공짜 사업’이란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소요 예산을 분담하고 선호시설과 기피시설을 함께 묶는 패키지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 관계전문가는 “국책사업에 앞서 투명한 정보공개, 철저한 중립성 유지와 현장 소통 등으로 ‘갈등 조정’보다는 ‘갈등 원인’을 먼저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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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7일 대구디자인센터에서 열린 남부권 신공항 재추진 정책토론회에서 강주열 추진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 재추진위원회’는 선거에 신공항 사업을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어 지역 갈등 재점화가 우려된다. |
주민기피시설 성공사례
지자체 머리맞대고 진지한 고민 필수
뺄셈의 협상 아닌
상호이익 덧셈협의
주민기피시설 중 경기 수원시가 설립한 화장장인 ‘연화장’은 자치단체 간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한 성공사례로 평가 받는다. 피해 주민에게 혜택을 주고 주변의 시·군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노력이 성공의 비결이다.
본래 1962년 6월에 설립된 수원시립화장장은 1980년 이후 주변지역이 상업·문화·주거 중심지역으로 부상하면서 주민들의 이전 요구에 부딪혔다. 결국 수원시는 2000년 8월 변두리로 이전하면서 최첨단 설비를 갖춘 깨끗하고 쾌적한 연화장을 준공했다.
시는 인근 지자체의 정서까지 고려해 지난해부터 화성시, 오산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도 연화장 사용료를 1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50% 감면해주고 있다.
경남 거제시는 폐기물처리시설 인센티브로 지원한 연초면 한내마을 민박임대주택의 준공식을 지난 14일 열었다. 임대주택은 43억원을 들여 한내마을 내 2322㎡ 부지에 원룸 39.6㎡(12평형) 16호와 투룸 69.3㎡(21평형) 16호 등 모두 36호 규모로 지어졌다.
건립 사업비는 한내마을 인근에 기피시설인 폐기물처리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시로부터 받은 인센티브로 마련됐다. 그동안 폐기물처리시설 지역에 급수시설이나 방충망 등이 지원됐으나 장기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임대주택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내마을은 임대주택의 소유권을 가지고 임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게 된다.
충남 홍성추모공원은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16개 지자체가 비용을 분담하고 공동으로 이용하는 성공사례다. 홍성군과 봉서리 주민대표가 합의해 8개 사업 44억원이 지원됐다. 2008년 충남 ‘화장장 현대화 사업, 지방세외수입 운영사례’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 부천시는 인천에서 흘러오는 생활하수를 부천 하수처리시설에서 처리하는 불만에 대한 혜택 차원에서 인천 부평구에 있는 인천가족공원 화장로 일부를 부천시민 전용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 기사입력 2012.03.02 (금)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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