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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이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대형 배너(가로 10m, 세로 30m)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린피스는 해운대가 고리원전에서 불과 21㎞ 떨어져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있고 방사능 방재계획이 낙후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
2월 정전사고가 났던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 국제 원자력기구 IAEA가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신뢰성 없는 조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IAEA 안전점검단은 11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대강당에서 설명회를 열고 고리1호기의 안전성 점검결과를 발표했다.
점검단은 “2월 발생한 정전사고의 원인이 된 비상디젤발전기 포함, 발전소 설비상태가 양호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안전점검을 총괄한 원자력시설안전국 과장인 미로슬라브 리파르(Miroslav Lipar) 단장은 “고리1호기의 운전년수 경과에 따른 설비상태 관리가 2007년 IAEA의 계속운전안전성 평가에서 제시된 국제기준을 만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후설비에 대한 교체와 설비개선 등이 꾸준히 수행된 점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의 안전조치에 대해 이미 폭 넓은 안전성 강화 대책이 수립돼 착실히 이행된 점 등이 우수하다”고 했다.
반면 디젤비상발전기 정전과 관련 “시설관리가 협력업체에서 진행되고 있어 완벽한 관리와 역할수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운영지침서 개선, 교육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울산·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수명연장을 위한 형식적 점검이라며 IAEA의 결과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탈핵울산시민행동 등은 11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앞에서 ‘IAEA 고리1호기 안전점검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점검단 8명 중 4명이 핵산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정비 관련 전문가도 2명에 불과할 뿐 아니라 점검기간도 터무니없이 짧았다”며 “핵산업 부흥을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기구인 IAEA의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안전성 점검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적으로도 IAEA에 안전점검을 마친 핵발전소가 폐쇄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으며, 후쿠시마 제1원전도 IAEA의 안전점검으로 수명연장 중 원자로 폭발과 핵연료가 녹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울주군 서생과 기장군 장안지역 주민 40여명은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설명회가 시작된 지 10여분 만에 퇴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오규석 기장군수도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신뢰할 만한 국내 전문가들의 참가 요구가 묵살된 채 이뤄진 안전점검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을 표명했다.
한편 이번 점검에는 7개국 8명의 국제원자력 안전전문가들이 참여해 4일부터 11일까지 고리원전 1호기 사건의 발단이 된 비상디젤발전기와 전력계통의 안전성 등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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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 안전점검단이 고리원전 1호기 안전점검 결과가 양호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
긴급진단 _ 원전 주민이 불안하다
“IAEA 면죄부… 믿을수 없다” 반발
원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부산과 울산지역 환경단체는 수명이 다한 고리원전 1호기에서 끊임없이 사고가 터지고 한수원 간부들의 납품비리, 뇌물수수가 이어지고 있다며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주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점검 역시 허술하게 진행되면서 불신을 증폭시켰다.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원전 1호기도 11월로 가동한 지 30년이 돼 원전 수명연장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원전 점검에도 불안감 여전
IAEA는 11일 고리 1호기의 발전설비 상태가 양호하다고 확인했다. 사실상 재가동 승인이다. 앞서 7일 월성 1호기에 대해서도 계속 운영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점검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점검결과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원전점검이 ‘그들만의 행사’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IAEA 점검단은 월성 1호기와 고리 1호기에 대해 일주일 가량 점검한 뒤 ‘문제없음’ 판정을 내렸다. 원전을 꼼꼼히 점검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점검단 중 상당수는 원전 진흥론자로 구성됐다.
IAEA가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안전성에 대해 종합적인 점검을 하겠다”던 한수원의 당초 발표와 달리 고리 1호기의 ‘정전사고’에 대해서만 집중 점검한 것도 불안을 키웠다.
미로슬라브 리파르 점검단장은 “정전사고 원인을 포함해 고리 1호기의 상태와 프로그램이 양호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점검은 정전사고에 주력했다”고 밝혔다. “고리 1호기를 연장 가동하느냐 폐쇄하느냐는 한국 정부나 한국 규제기관에서 결정할 일이며 IAEA 보고서에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수원이 IAEA에 고리 1호기의 안전성 점검을 의뢰하면서 발표했던 내용과 달라 논란이 제기된다. 한수원은 지난달 30일 IAEA 점검에 앞서 보도자료를 내고 “점검단은 고리 1호기 사건의 발단이 된 비상 디젤발전기와 전력계통의 안전성은 물론 원자로 압력용기의 건전성, 운전 연수 경과에 따른 설비상태 관리 등을 집중 점검한다”고 했다.
고리 1호기에 대한 IAEA 안전점검은 지역주민들이 국제수준의 안전점검 실시를 요구함에 따라 한수원이 요청해 이뤄졌다. 원자력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IAEA의 객관적인 조사와 평가를 통해 고리 1호기의 안전성을 진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주민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공신력 있는 점검단을 불러놓고 핵심시설은 점검하지 않아 불신을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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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 환경운동연합, 반핵부산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리·영광 원전 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고리 1호기 사고 모의실험…경각심 커져
고리 1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규모는 얼마나 될까.
고리 1호기 사고로 방사능이 누출되면 장기적인 인명피해가 최대 90만명, 피난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최대 628조원에 이른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다.
반핵부산대책위, 환경운동연합, 조경태 국회의원 등은 지난달 21일 부산 동구 부산YMCA에서 고리 1호기 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고피해 모의실험은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평가 프로그램인 ‘SEO code’(세오 코드)를 이용해 경제적 피해를 추정한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피해액 계산’을 한국의 핵발전소에 적용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의 인명피해에 대한 모의실험은 실시된 바 있으나 경제적 피해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의실험 결과에 따르면 고리원전 1호기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대사고)나 체르노빌 원전사고(거대사고)와 유사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발생할 경우 급성사망 4만8000여 명에 이르고 장기적 암사망으로 인한 피해가 최대 85만명으로 예측됐다. 피난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최대 62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고리원전은 인근에 대도시 부산이 있어 대규모 피폭을 피할 수 없어 인명피해가 크게 발생한다. 그나마 부산시 전역을 대피시키면 암발생률이 크게 떨어지지만 그만큼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고리원전 거대사고에서 부산시 동구(약 30㎞ 지점)에서 피난 조치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43%가 암으로 사망하지만 15일 내 전원을 피난시키면 암사망률을 5%까지 억제할 수 있다. 보다 빨리 피난을 하게 되면 암사망률을 더 줄일 수 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실험이지만 충분한 방재대책이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실험결과다.
한수원은 “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는 국내 원전에서 전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내원전은 체르노빌 및 후쿠시마 원전과는 원자로형이 다르고 격납 건물이 훨씬 견고하기 때문에 모의실험은 국내원전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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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1호기 비상발전설비. |
원전 인근 지자체 ‘민심 달래기’ 안간힘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주민 불신이 커지면서 지자체들이 민심 달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산시는 고리 1호기 점검결과와 관련 “원전 안전에 대한 부산시민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는데 미흡하고 충분하지 못했다”고 12일 밝혔다. 시는 “이번 IAEA 점검결과는 구체적인 점검내용과 결과설명이 부족해 안전이 확보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고리1호기는 시민이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안전대책 없이 재가동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11일 IAEA가 발표한 내용과 현재 진행 중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민간특별위원회 점검(5월1일~6월20일),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현장 안전점검’(5월14일~6월20일) 결과는 상세하고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고리1호기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시민의 원전운영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도록 정부는 그동안 발표한 원전안전대책을 조속히 추진하고 그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자체들 역시 최근 잇단 원전사고로 인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경북 경주시·울진군, 전남 영광군 등 원전이 있는 5개 지자체는 5월2일 울산롯데호텔에서 ‘원전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를 열어 원전 안전전담기구 설치 등 8개 조항의 공동건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지자체들은 공동건의문을 통해 지자체에 원전 안전전담기구 설치와 주변지역 환경방사선감시기 설치, 비상경보 자동시스템 구축 및 원전 주변지역 주민 보호용 방호장비 전액 국비 구입을 촉구했다.
원전 소재 지자체장을 원자력안전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임명하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원전 ‘최악의 사고’에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민사회의 경고를 수용해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경운동연합의 발표는 컴퓨터로 계산한 모의실험인 만큼 오차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다. 정부는 원전 사고 때 일어날 피해를 예측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원전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대피 훈련도 시급하다. 차량을 통한 대피 등 실제 상황에 근접한 훈련을 진행해야 한다.
정부와 고리원전을 관리하는 한수원이 원전사고 관련 대책을 공개하고 실효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전 은폐와 핵심 부품 빼돌리기, 납품 대가 뇌물수수 등 비리를 저지른 한수원의 쇄신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란 지적이다. 반핵이나 탈핵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포함시켜야 올바른 감시·견제가 가능해진다.
원전 안전점검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등을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주민들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도 요구된다. 원전의 직접적인 영향권인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제남 통합진보당 의원은 고강도 ‘스트레스 테스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어느 정도의 지진이나 해일 등 최악의 자연환경에 원자로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컴퓨터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 기사입력 2012.06.15 (금) 11:07, 최종수정 2012.06.15 (금)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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