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식(式) 뉴타운’사업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 서울시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사업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 안에 총 1340억원을 투입, 하반기부터 사업을 본격 전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업성이 떨어져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서울시는 15일 ‘서울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공포하고 하반기부터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철거 후 아파트를 짓는 기존 ‘뉴타운’식 재개발 관행에서 벗어나 낡고 파손된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을 보수하고 마을기업 등 마을공동체를 육성하는 사업으로 박원순 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서울시는 조례에 근거해 노후 기반시설 보수 등 5개 분야, 68개 사업에 1340억원을 투자한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5곳을 시범사업지로 선정할 계획이다. 새 정비방식은 전면 철거를 지양하고 마을 자생력을 높여 원주민 재정착, 세입자 주거 불안 등 기존의 재개발사업에서 도출됐던 각종 부작용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시장 스스로 ‘역점사업’으로 여길 만큼 애정을 쏟고 있어 재임 기간인 2014년까지 지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장에선 기대보다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사업성이 크게 떨어져 주민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익(效益)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추진동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현행 재개발 방식은 노후 주택지를 허문 뒤 새 아파트를 지어 조합원에게 분배하는 형태로 주거환경 개선과 더불어 시장 상황에 따른 시세차익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주택 개·보수에 드는 비용을 집주인이 부담해야 한다. 주택공급 부족 사태도 우려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건설회관에서 열린 ‘도시정비사업 정책의 진단과 과제’ 세미나에서 마을공동체 사업 등 서울시 정비사업 방향이 바뀜에 따라 향후 주택 공급량이 적정 수준의 43.3~74.2% 선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장기적 관점에서 집값이나 전세금 상승도 우려된다. 개인 재산에 관한 처분 방식을 공공에서 제한함으로써 재산권 침해 논란까지 야기할 수 있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노후 주택을 매입한 투자자 입장에선 사업 전환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하다. 서울시가 내놓은 뉴타운 출구전략은 정부와 시의 의견조정이 충분히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됐다. 정책목표 실현을 위한 구체적 대안과 방법이 정책내용에 담겨 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책발표 이후에 대안과 방법을 찾아가면서 또 다른 정책 소외계층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형평성, 주민재산권 등의 가치와 부딪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비사업 표면에 드러난 현안 해결에 치중하면서 정비사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진단에 소홀했다.
뉴타운 문제는 과다하게 많이 지정된 지역을 해제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동안 뉴타운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주민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원인진단과 대안마련이 전제되지 않으면 뉴타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타운지구 내 주민갈등의 중심에는 추가부담금 문제가 있다. 추가부담금의 이면에는 과도하게 설치해야 하는 기반시설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추가부담금은 주민이 사업 이전에 가지고 있는 자산 평가액과 사업 후에 받게 되는 자산 평가액을 근거로 해 그 차이만큼 부담해야 하는 추가비용이다. 추가비용이 원소유주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거나, 관리처분단계에서 처음보다 늘어나면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사업성이 저하되면서 최종적으로 고가의 주택이 공급돼 영세한 소유주와 세입자가 이주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해결하지 못하면 뉴타운을 비롯한 많은 도시정비 사업들은 진행 자체가 어렵게 된다.
뉴타운 등 정비사업은 낡고 슬럼화돼 경쟁력을 상실한 지역을 정비해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신동력이기 때문에 도시재생 차원에서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주민이 부담해야 하는 현 구조에서는 꾸준한 사업추진이 어렵다. 기반시설을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치하고 그 재원을 공공이 부담해 주민 부담이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지구 해제냐, 사업지속이냐’의 논란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박 시장은 서울시내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사업장 610곳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신정책 구상’을 내놓았다. 경기침체와 구역지정 남발로 사업추진이 제대로 안 되자 현지 실태를 조사해 될 곳은 밀어주고 안 될 곳은 구역지정을 해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이 나오자 해당 지역 거주자들은 찬반양론으로 갈라져 수시로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는 실태조사 결과,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소형주택을 많이 짓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규로 늘어나는 가구의 절반을 소형으로 짓겠다는 개포지구 재건축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근시안적인 미봉책이다. 박 시장의 생각대로 거주권 보장이 강화돼야 하지만 쾌적한 집에 대한 수요 증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출구전략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거주권도 최대한 보장하면서 희망자에겐 넓은 평형을 제공하는 묘안이 나와야 한다. 이왕 시작한 출구전략이니 반드시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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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12.03.16 (금) 10:31, 최종수정 2012.03.16 (금)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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