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왕소군 미인의 한탄>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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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localsegye.co.kr | 2020-03-12 00:01:01

이동한 세계수도문화연구회 회장


▲이동한 세계수도문화연구회 회장.
왕소군(왕소군)은 춘추시대 서시, 삼국시대 초선, 당의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이다. 서한 원제 때의 궁녀다. 흉노와의 화친을 위해 흉노왕 선유에게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았으며 선유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아들 복주루와 재혼하여 두명의 딸을 낳았으며 11년 후에 복주루가 사망했을 때 그의 나이는 35세 였다고 한다. 
 
왕소군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화되고 윤색되어 전해 졌다. 두보와 이백의 문학어도 나오며 명대에는 희곡으로 각색 되기도 했다. 서경잡기에 왕소군에 대한 가록이 있다. 한나라 원제 때에 흉노와 화친을 맺기위해 중중에 있는 못생긴 여인을 골라 보내려고 화공인 모연수에게 후궁들의 초상을 그려 올리라고 했다. 다른 후궁들은 화공에게 뇌물을 바쳤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화공이 왕소군의 얼굴을 추하게 그려 올렸다. 그로 인해 왕소군이 흉노의 추장 선우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직접 왕소군의 얼굴을 본 원제는 그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을 알고 선우를 따라 떠나기 전에 왕소군을 불러 정을 나눈다. 왕소군을 보낸 후 원제는 모연수를 국문하여 사실이 드러나자 참형을 해 거리에 시체를 버리는 기시를 했다. 
 
왕소군이 흉노의 추장 선유를 따라 떠난 후 3개월이 지나서 한나라 원제는 왕소군을 그리워 하며 세상을 떠났다. 왕소군은 겉으로는 그나라의 왕후의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 형제와 조국을 떠나 인질처럼 잡혀온 이국에 살고 있는 자신이 너무도 외롭고 쓸펐다. 그 곳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 왔다. 
 
당나라 동방규가 지었다는 소군원(소군원)의 끝 부분이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이 아니로다/ 자연히 옷에 맨 허리끈이 헐렁해지니 /가느다란 허리를 가꾸려는 것 아니라네(胡地無花草/春來不似春/自然衣帶緩/非是爲腰身)" 봄이 와서 꽃이 피고 있는데 날씨가 겨울처럼 추울 때나 계절의 봄은 와도 마음의 봄이 오지 않았을 때에 하는 "춘래불사춘' 이라는 말이 이 시에서 비롯됐다. 
 
전해오는 왕소금에 대한 시 중에는 명비의 노래(명비곡)가 있다. 왕소군의 친 아들인 왕이 자신의 조국인 한나라와 전쟁을 하려 할때에 아들을 설득해 전쟁을 막으려 했으나 그의 만류가 관철되지 아니하자 왕소군은 자진을 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한에 사무처 한 겨울에도 풀들이 시들지 않고 푸러렀다고 한다. 이 전설에 대한 시다. 
 
"작은 은혜라도 잠시라도 어찌 잊을까?/아들인 왕이 한을 배반하고 공격하려 할때/스스로 죽어 천년 눈속도 무덤은 푸르럼속에 있네/천년 동안 많은 영웅들이 의로움에 안타까워 눈물 뿌리네(何忘小恩詔時憶/子君背漢慾攻國/自盡千雪塚中靑/千年多英淚義惻)" 후대 많은 문인들이 흉노와의 화친을 위해 제물이 되어 한 많은 삶을 살다 죽은 왕소군의 미모와 한을 노래했다. 
 
왕소군은 너무도 아름답지만 불쌍하고, 너무도 의롭지만 애처롭고, 너무나 화려하나 비참한 여인이 였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코로나19 때문에 팬데믹 상황이 되고 국내는 전념병 경보 심각 단계를 선포하고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 3월10일 20시 현재 획진자 7513명, 사망자 59명으로 늘어 났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리고 있는 환자와 가족 방역 최일선에 헌신하는 의료진들과 공포에 떨고 있는 감염지역 사람들에게는 봄이 오지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악수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왕소군의 처지처럼 봄은 왔지만 온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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