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하늘의 길을 새기다'…이병렬 박사, 선사 우주관 밝힌 역작 출간

김경락 기자

kkr9204@daum.net | 2025-05-11 01:45:44

고인돌을 '족장의 무덤' 으로 한정해 온 기존의 학설을 근본적으로 전환

태양의 움직임과 별자리에 따라 삶의 주기를 조율하고,공동체의 시간을 나누던 거대한 달력이자 제단 이었다

 

[로컬세계 = 김경락 기자]  한반도 곳곳에 유산처럼 남아 있는 고인돌은, 오랫동안 학계에서 ‘지석묘(支石墓)’, 곧 선사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해석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이후 한국 고고학계는 별다른 의문 없이 그 관점을 답습해왔으며, 교과서 속에서도 여전히 고인돌은 ‘무덤의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고인돌은 과연 죽은 자를 묻기 위한 구조물에 불과했을까?

오랜 시간 현장을 누비며 고인돌을 조사해 온 연구자 이병렬 박사는, 이러한 통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고인돌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인돌은 단순한 매장 유적이 아니라 삶과 죽음, 우주와 공동체를 아우르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새긴 신성한 구조물, 곧 고대인들의 우주론적 사유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그는 이를 ‘거석 코드(Megalithic Code)’라고 명명하며, 고인돌이야말로 선사인들의 세계관, 자연관, 그리고 인간관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라고 해석한다.

고인돌이 단지 땅속에 누운 자를 위한 표지가 아니라, 오히려 하늘의 법칙을 땅에 새긴 지혜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그 배치 방식과 방향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이병렬이 전국을 돌며 조사한 수많은 고인돌들은 아무렇게나 세워진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방향성과 배열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고창 부곡리 고인돌 군에서 관찰되는 북두칠성과 유사한 배열은 매우 상징적인데, 이는 고인돌들이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 즉 태양의 극점 움직임과 정교하게 일치하도록 조율되어 있었으며,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이나 별자리의 이동 경로까지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는 고인돌이 단지 인간을 매장하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하늘의 움직임을 지상의 구조물로 시각화한 ‘농사력(農事曆)’이자 시간의 나침반, 즉 계절과 절기를 관찰하고 예측하는 천문 도구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농경 생활을 기반으로 한 선사 공동체에게 있어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실용적 지식이었으며, 고인돌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자연을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생명의 도구였다.

더 나아가 고인돌은 단지 천문 현상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세워진 지형적 맥락 속에서도 신중하고도 정밀한 고려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고인돌이 놓인 지점은 하나같이 인근의 산줄기, 고개, 봉우리, 하천 등과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으며, 특정한 방향으로 솟은 산이나 물이 흐르는 길, 혹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개를 향해 정렬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고인돌이 단지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천문)과 땅(지리)을 동시에 고려한 성지적 공간, 즉 선사인들이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 공동체의 질서를 반영한 일종의 성역(聖域)**으로 계획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공간관은 훗날 한반도의 풍수지리 사상과 도읍지의 입지 선정, 사찰과 능묘의 배치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고인돌은 그러한 한국적 공간 철학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인돌은 단지 물리적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지이자, 제사의 장소였으며, 동시에 하늘을 관측하고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던 종합적인 의례 공간이었다. 공동체는 해마다 고인돌 앞에 모여 하늘의 뜻을 묻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삶의 질서를 재확인하는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고인돌은 죽은 자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산 자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하늘과 연결되는 통로였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의 의미를 묻는 상징의 자리였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 선사인들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과 죽음, 낮과 밤, 계절과 절기,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인돌 문화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의 스텔레, 잉카의 석조 성채와 같은 세계 여러 지역의 거석 구조물들과 유사한 지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문자를 갖기 이전부터도, 하늘을 관찰하고,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며, 공동체를 조직하고, 그 질서를 상징 구조물에 새기는 보편적 지혜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문자보다 오래된 ‘우주의 언어’가 돌에 새겨진 것이며, 고인돌은 바로 그러한 보편 인류 지성의 표현물, 즉 기억을 담고 지혜를 남긴 인류 최초의 기념비적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박사의 『하늘의 길, 고인돌에 새기다』는 고인돌을 둘러싼 기존의 고고학적 해석에 도전하는 동시에, 지리학과 천문학, 인문학의 지식을 결합해 새로운 고인돌학을 제안하는 작업이다.

 이 박사는 “이 책을 통해 고인돌을 단순한 유적이 아닌, 고대 사회의 철학과 삶, 그리고 우주 인식이 응축된 복합적 사유 구조물로 해석한다. 이는 고인돌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잊혀진 선사인의 정신세계를 현재로 복원하는 작업이다”고 밝혔다.

하늘의길, 고인돌에 새기다 .  저자 이병렬 박사

저자인 이병렬 박사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줄포 출신으로, 고창고등학교와 공주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공주대와 배재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사)고창문화연구회장과 한일문화교류연합회 전북회장을 맡고 있으며, 고창의 지역사와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지역학 강의와 신문 기고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으며, 특히 고인돌에 숨겨진 천문 지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연구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고창의 마을』 제2집~제14집, 『19세기 사상의 거처』, 『광산김씨 고창 세거와 문헌 유적』, 『고흥류씨 고창 세거와 문헌 유적』, 『진주정씨 고창 세거와 문헌 유적』, 『진주강씨 고창 세거와 문헌 유적』, 『고창군의 고인돌』 전 10권, 『대산면 백년사』 등이 있고, 고인돌 관련 논문으로는 「고창 고인돌 입지특성 분석」, 「고창 부곡리 고인돌의 분포 특성과 북두칠성」 등이 있다. 현재 고인돌을 단순한 선사시대의 묘지 유적이 아닌 천문 지리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선사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로컬(LOCAL)세계/ 김경락 기자  kkr92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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