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자발찌는 풀렸고, 피해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11-07 01:18:53
한 사람의 생명이 또다시 스토킹 범죄 앞에서 무너졌다.
서울 은평구에서 발생한 전 연인 살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스토킹 범죄 대응체계가 과연 피해자의 생명을 지킬 만큼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70대 여성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60대 남성은 과거 피해자를 상대로 스토킹과 폭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는 여러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피해자를 고위험 관리 대상인 A등급으로 분류하고 스마트워치 지급과 안전 확인 등 보호조치를 시행했다.
가해자에게는 구치소 유치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조치도 이뤄졌다. 그러나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10월 22일 종료된 뒤 약 2주 만에 피해자는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전까지 27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안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추가 보호조치를 원하지 않았다는 점도 밝혔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 이번 비극의 책임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여기서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가해자에 대한 관리가 끝났다는 사실과 피해자가 안전해졌다는 판단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토킹은 단순한 애정 갈등이나 관계의 다툼이 아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고 연락하며 일상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다. 처음에는 기다림과 연락으로 시작되지만,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접근을 반복하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해자의 집착은 피해자에게 장기간의 공포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피해자가 위험을 호소하고도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하고 피해자의 주거지까지 찾아가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당시 공소청은 피의자의 건강 상태와 보완수사 필요성 등을 이유로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후 구치소 유치와 전자발찌 부착이라는 조치가 뒤따랐지만, 그 기간이 끝나자 피해자 보호에도 공백이 생겼다.
물론 모든 스토킹 가해자를 무조건 구속하거나 모든 피해자에게 일률적인 보호조치를 강제할 수는 없다. 피의자의 인권과 적법절차, 피해자의 자기결정권 역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반복적인 접근금지 위반과 폭행 정황이 확인된 사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해자의 건강 상태나 일시적인 반성만으로 재범 위험성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추가 조치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이 해소됐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피해자가 보호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오랜 관계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심리적 압박, 보복에 대한 걱정, 반복되는 신고에 따른 피로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보호기관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위험 신호를 지속적으로 살피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제 스토킹 범죄 대응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첫째, 가해자 중심의 일회성 관리에서 피해자 중심의 지속적인 보호로 전환해야 한다. 전자발찌 부착이나 접근금지 명령이 끝나는 시점은 보호의 종료가 아니라 위험성을 다시 평가하는 시점이 돼야 한다.
둘째, 경찰과 수사기관, 법원, 보호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와 책임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접근금지 위반과 폭행, 반복 신고 등 위험 징후가 누적될 경우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스마트워치 지급이나 순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임시 거처와 상담, 법률 지원, 주거 안전 확보 등 피해자의 생활을 지키는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뒤 책임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피해자가 더 이상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스토킹 범죄는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사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피해자의 일상과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 그것은 명백한 사회적 범죄이며 공적 대응이 필요한 문제다.
전자발찌는 가해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지만, 피해자의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접근금지 명령도, 스마트워치도, 수십 차례의 안전 확인도 피해자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을 다시 물어야 한다.
가해자에게 부착된 전자장치가 풀리는 순간에도 피해자의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잃고 나서야 제도의 허점을 찾는 사회는 더 이상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스토킹 범죄를 막는 일은 가해자를 감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신재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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