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더의 크기는 정직한 뒷모습이 증명한다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2-10 08:00:08

군림의 시대는 끝, 지키고, 살피고, 결단해야 박범철 작가

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맞이할 뿐이다. 국제 정세의 격동과 반복되는 재난, 경제적 불안 속에서 위기는 이제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오늘날의 시민들은 더 이상 한 사람의 독단에 공동체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SNS와 정보 공개의 시대, 시민의 집단지성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참여와 감시는 민주주의의 거부할 수 없는 기본값(Default)이 되었으며, 이는 리더십의 본질이 군림에서 헌신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준엄한 신호다.

그러나 현실의 리더십은 이 도도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위기 국면에서 정책 실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구태, 참사 발생 후에도 매뉴얼과 전임자를 탓하며 자리를 보전하는 모습은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현장을 외면한 채 수치로만 상황을 재단하고, 사과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비겁한 리더십 앞에서 시민들은 깊은 냉소를 학습한다.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그렇게 소리 없이 마모되어 간다.

우리 시대 리더십의 가장 고결한 가치는 권한과 책임, 그리고 언행일치의 정직함이 완전한 하나를 이루는 데 있다. 권한부책(權限附責), 즉 부여된 권한의 크기만큼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리더십의 정언명령이다.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의 자리는 결코 명예로운 직책에 머물러선 안 된다. 그곳은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호출되고, 실패의 과오를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사투의 자리다. 박수 소리에 취해 군림하는 위치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손을 뻗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기꺼이 연장을 들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리더의 소명이란 화려한 통솔력보다 현장을 지키고, 시민을 살피며, 희망의 빛을 위해 결단하는 그 자체에 있다.

무능은 실력 부족에서도 기인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낡은 태도에서 더 명백히 드러난다. 리더는 법을 준수하며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사심(私心)을 거두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양심을 속이며 거짓을 일삼는 이들로 가득하다. 외양은 사람이나 행태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 의전과 형식의 성벽 뒤에 숨어 자리를 탐하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의 행태는 더 이상 은폐될 수 없다. 정보를 통제하고 질문을 차단하는 순간, 리더십은 이미 붕괴의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권한은 방종이 되어 공동체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책임 없는 권한은 향기 없는 꽃과 같고, 권한 없는 책임은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감당할 용기가 없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용퇴(勇退)야말로 리더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고귀한 결정이다. 실패 이후 자리를 지키는 완고함보다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정직함이 사회에 더 큰 신뢰의 씨앗을 남긴다는 사실을 역사는 이미 증명해 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높은 곳에서 명령하는 자가 아니다. 문제의 현장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정책의 한계를 투명하게 설명하며, 결과 앞에서 구차한 변명 대신 무거운 책임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비판을 수용하는 정직함과 폭풍우 속에서도 키를 놓지 않는 담대함, 그 책임의 품격이야말로 이 시대 리더의 최소 조건이다.

책임의 궤적은 리더의 전 생애를 말해준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결단력 있는 선택으로,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당당한 행동으로 남는 궤적이어야 한다. 위기 이후 무엇을 얻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변했는가 하는 그 정직한 뒷모습이 사람의 크기를 증명한다. 정치가 생활이 되고 시민이 모순을 바로잡는 시대,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가 설 자리는 단연코 없다. 우리는 그 품격 있는 뒷모습을 통해 실종된 리더십의 가치를 회복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책임의 무게를 엄중히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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