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럼프 대통령, 고독한 보안관인가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6-05-11 08:10:33

트럼프가 소환한 서부극 정치와 미국의 실리 박범철 작가

내가 살기 위해 상대가 양보해야 하는 세계관은 현대 정치와 경제에서 나타나는 신냉전적 질서다. 이 세계관은 공존의 기술보다는 생존의 기술이 우위에 서 있다. 1950년대 서부극의 이 비정한 선언은 곧 피할 수 없는 결투를 의미한다.  트럼프의 행보에선 먼지 날리는 황야의 총잡이가 비친다. 그는 세련된 외교적 문법을 폐기하고 직관적 결단이라는 방아쇠를 당겼다. 이 거친 서부극 정치는 단순한 연출이 아니다. 어쩌면 지난 세월 누적된 미국의 상실감을 복구하려는 가장 처절한 방식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서부극의 본질은 시스템이 무력해진 곳에서 자신만의 규칙으로 질서를 재편하는 그의 등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정치권을 기득권 카르텔이 결속된 늪(The Swamp)이라 규정하며, 동부 엘리트 정치가 방치한 중산층의 분노를 대변하는 보안관을 자처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법과 제도의 파괴라기보다 제 기능을 잃은 시스템을 향해 던진 강력한 경고장이다. 그는 세련된 민주주의의 절차보다 당장 내 집 앞의 일자리를 지키고 무너진 국경을 바로잡는 실질적인 행동을 우선시하며, 복잡한 수사에 지친 지지자들에게 즉각적인 보상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국제무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맡아온 세계의 경찰 역할이 정작 미국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진단 하에, 그는 동맹국에 가차 없이 비용을 요구하며 기존 질서를 나쁜 계약으로 파기한다. 보편적 가치보다 거래의 기술을 앞세운 그의 방식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대중국 관세를 대폭 인상으로 격상시키는 등 국제 사회의 관행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다자주의라는 평화로운 마을의 약속이 미국의 실리를 갉아먹는다면 과감히 마을을 떠나거나 규칙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026년 현재 세계가 직면한 각자도생의 신고립주의는 미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이자 주권적 선언이다. 이러한 거센 파고 속에서 한국은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을 자주 국방 강화 및 필수 파트너 지위 공고화의 기회로 삼는 실용적 노선을 취하는 한편, 경제·안보의 모든 시나리오를 면밀히 점검하여 치밀한 대응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또한 그 이면에는 엄혹한 경제적 대가가 도사리고 있다. 공급망 재편과 고관세 정책의 여파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일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으며, 보복 관세의 악순환 속에 글로벌 교역량은 전년 대비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아는 탁월한 쇼맨이자 안티히어로(Anti-hero)다. 비록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하락이라는 정치적 역풍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지만, 과정의 거침은 있을지언정 결과적으로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서사는 정치적 올바름(PC)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극단으로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부패를 척결하고 미국의 실리를 되찾아오는 존 웨인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세계 평화의 규칙을 깨뜨리는 위험한 무법자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극단적인 서사가 논리보다 감각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 상영되는 이 현대판 서부극은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미국인들은 이제 영화의 결말을 기대하며 묻는다. 이 거친 황야의 주인공이 만드는 미래가 과연 강한 미국이라는 약속의 땅에 닿을 수 있을 것인가를 말이다.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끝나지만, 관객들이 극장을 나선 뒤 마주할 고물가와 불안한 국제 정세라는 차가운 밤공기는 그들이 온전히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가 재편한 세계 질서는 이제 스크린 밖 미국인들의 내일을 결정짓는 엄혹한 현실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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