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우리 문화재'가 '일본 술집'이 된 "기막힌 사연!"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localsegye.co.kr | 2017-07-10 16:05:17

'일본 술집'이 되어버린 '영친왕의 집'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국가적 중요 건물의 뼈아픈 역사의 현장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은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아들이고 순종의 동생이다. 영친왕으로 불린 이은은 1907년, 11세의 어린 나이로 일본에 끌려가 1963년까지 56년간 감시를 당하면서 자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의 집. 이승민 기자.


1926년 순종이 죽자 일본 정부는 순종의 뒤를 이어 황태자였던 이은을 조선의 왕으로 계승, 창덕궁 이왕(昌德宮 李王)이라 불렀고 1930년엔 도쿄의 중심지 치요다구 기오이초 1-2번지에 이왕의 궁을 지어주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의 공관이었던 이 건물이 현재도 ‘이왕가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도쿄에 남아 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밥과 술 등을 파는 일본인들의 영업장이 되어 있다.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가 행인들의 술집이 되어버린 사연은 무엇일까.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정의 일본 통치가 시작되었고 이은(이왕)은 서둘러 환국을 준비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영친왕의 입국을 거부했다. 조선의 국왕이 한국의 국적마저 얻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라는 이유를 들어 끝내 귀국을 거절했다. 나라가 해방되었지만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갈 곳 없는 조선의 마지막 왕 이은의 일본 생활은 계속됐다.


당장 생활비가 곤란해진 이은은 살던 집을 일본 국회 참의원 의장공관으로 빌려주고 집세를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렸다. 결국 1952년 프린스호텔 측에 팔게 됐다. 이 집을 사들인 프린스호텔은 건물 내외를 수리해 객실 35실을 정비, 1955년 프린스호텔 구관으로 개업했다.


타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중요 건물이 노후화로 폐관될 때까지 56년간 일본 사람들의 호텔 객실로 이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폐관되던 그해 2011년, ‘도쿄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가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쿄 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프린스호텔 측은 소유권을 내세워 2013년 2월 20일 증축 수리에 들어갔다.

▲옆 방향에서 본 영친왕 이은의 집. 뒤에 프린스호텔이 보인다. 이승민 기자.


2015년 7월 16일, 현대적 튜더 양식으로 수리한 이 건물(총 건평 3007㎡)에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하우스’ 라는 간판을 걸고 레스토랑, 바, 카페, 예식장 등을 갖춘 프린스호텔의 상징적인 영업시설로 재단장 개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한과 애환이 아로새겨진 살아 있는 역사관이고 문화재인 이 건물을 송두리째 버려놓고 일본을 향해 역사청산을 운운한다면 일본인들의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가인 이 집은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국가적 중요 건물이고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더 이상 일본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파는 공간으로 방치할 수는 없다. 우리의 국가문화재로 속히 되찾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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