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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략하여 멸망시킨 기원전 108년에는 요하 서쪽부터 만주 전체와 한반도 내륙 깊숙이까지 실질적인 고구려 영토라고 할 수 있다. 정복한 나라의 국호는 유지해주었을지언정 직접 다스리거나 혹은 제후국으로 삼아서 실질적으로는 고구려 영토였다. 따라서 종래의 통설처럼 한사군이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와 한반도에 근접한 만주에 걸쳐서 설치되었다면, 요하 서쪽부터 만주 전역과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던 고구려가 한 무제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 쪽에서 보자면 고구려 영토의 최후방에 한나라의 사군이 설치됐다는 것은, 기원전 108년에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고구려를 침략해서 최후방까지 점령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그때 멸망했거나, 운이 좋아서 멸망까지는 아니고 훗날 재기를 도모할 수 있는 정도로 살아남았더라도 그것은 대단히 큰 전쟁이다. 영역의 크기를 통해서 볼 때 규모나 동원된 병사수가 위만조선과의 전쟁 보다 수십, 수백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기에 그에 대한 전쟁 기록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무제와 고구려의 전투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 건국연대를 1백 몇십년 소급하기로 한 후 여러 사서의 기록들을 유추 해석한 것을 근거로, ‘한 무제가 고구려 대무신왕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고구려를 침략하였으나 9년간의 전쟁 끝에 패퇴하였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
신채호의 기록이 사실일지라도 한 무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퇴하였으므로 고구려의 영역 내부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사군의 위치는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요하 서쪽 의무려산과 의현 일대의 서쪽에서 비정(比定)되어야 타당한 것이다.
김종서는 박사학위논문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에서 수학적 위치고증 방법으로 한사군의 위치를 설정했다. 제시된 [그림]은 김종서가 제작한 것으로, 자신이 도출한 한사군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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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사군의 위치 비정도(김종서 제작) |
낙랑군의 위치는 앞에서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비정된 하북성 창려나 그 인근지역, 현토군은 북경 동부지역, 임둔군은 난하 동쪽의 하북성 창려 북서쪽 인근지역, 진번군은 조양이나 그 인근지역으로 비정했다. 한사군의 위치가 요하 서쪽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신뢰할 수 있다.
한 무제는 고조선을 일시에 모두 멸망시킨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신조선의 영역은 이미 고구려와 부여가 차지한 뒤였고, 한 무제가 멸망시킨 고조선은 위만조선일 뿐이다. 따라서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으로 재설정되어야 하며, 한사군의 영역은 요하 서쪽에서 난하 유역에 걸쳐서 자리했을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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