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6년 만에 방산·상선 분할매각 재검토
통매각은 부채많아 불가능…청산은 정치적 부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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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칼럼니스트. |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후부터 대우조선 분리 매각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고위 관계자는 “방산과 상선·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부문으로 분할한 후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됐다”고 밝혔다. 노조와 지역사회 반발 등 사안의 폭발성을 감안해 당시 논의 자체를 철저히 비공개에 부친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 최대주주는 지분 55.7%를 보유한 산은이다. 1998년 대우그룹이 무너진 후 산은 관리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정부와 산은은 2016년에도 방산과 민수 부문을 분리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LNG선 등 대우조선이 강점을 지닌 ‘굿컴퍼니’(우량자산)와 ‘배드컴퍼니’(부실자산)로 나누는 시나리오도 논의했다.
그러나 통매각에 비해 분리 매각의 시너지가 낮다는 지적과 함께 노조 등 여론을 의식해 분리 매각은 유보상태로 흐지부지 됐다. 산은이 올초 최후의 카드로 추진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 인수는 유럽연합(EU)의 불승인 결정으로 무산됐다. 애초 정부는 당분간 대우조선 경영 정상화에 주력한 뒤 시기를 봐서 재매각에 나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최근 하도급노조의 장기파업으로 인해 부실 문제가 부각되면서 분리 매각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설명이다. 경영 정상화 실패와 잇단 매각 무산에 산은 체제가 더 이상 길어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일각에서는 대우조선 파산이 현실화하면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국가 기간산업 타격이 불가피한 데다 사회적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청산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 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산은 관계자는 “대우조선 경영컨설팅 결과를 지켜본 뒤 의사결정을 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정부가 분리매각을 비롯한 모든 특단의 대우조선 민영화 방안 검토에 나선 건 현 체제가 유지되면 대우조선의 부실만 커질 것이라는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조선 수주 랠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산업은행 지휘를 받는 준 국영기업 체제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대우조선 민영화가 지체될 경우 ‘조선 빅3’의 출혈 경쟁으로 자칫 국내 조선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산은은 당초 지난 3월 말 컨설팅 결과가 나오면 플랜B부터 플랜D까지 대우조선 매각 계획을 공개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와 함께 최근 하청노조 파업까지 이어지면서 매각 계획 발표는 중단됐다.
대통령인수위가 유력하게 가능성을 검토한 민영화 방안은 방산과 민수 부문을 분할하는 분리매각이었다. 대우조선은 국내 1위 함정 건조업체다. 잠수함과 구축함 등 함정 건조 기술은 유일한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위에선 대우조선 민영화와 방산 부문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방산 부문을 분할해 합작법인을 설립한 뒤 정부가 지분을 투입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1999년 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등 3사를 통합해 출범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상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부문은 국내 기업에 우선 매각을 시도하되, 여의치 않으면 우호국 기업에 매각하자는 시나리오도 나왔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잠시 가라앉았던 대우조선 민영화는 이번 하청노조 파업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영기업 체제로 운영되는 대우조선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대우조선은 적자를 이어오면서 재무구조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조7546억원의 영업손실에 이어 올 1분기에도 470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적자가 쌓이면서 3월 말 부채비율은 523.2%로 전년 말보다 144.1%포인트 치솟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수주 목표치를 넘긴다고 할지라도 차입금 상환뿐 아니라 운전자금으로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산은이 지금까지 대우조선에 투자한 공적자금은 11조 8천억원에 이른다. 산은은 추가 자금 투입은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새 주인을 찾아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부 내부에선 조선업 부실 위기가 찾아왔던 2015~2016년 당시 여론을 의식해 경영 정상화 후 매각 원칙을 고수하면서 ‘매각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반성도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민영화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통매각’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마땅한 인수 후보군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2016년 한때 검토했다가 무산된 플랜B인 분리매각도 언제든지 재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분리매각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방산과 상선·LNG선 등을 만드는 기초공정이 70~80% 겹친다는 점에서 분리매각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우조선 노조와 정치권 및 지역사회도 분리매각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산은이 대우조선 매각에 나선다고 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다시 매물로 나온다고 해도 사실 이에 관심을 보이는 매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강성 노조까지 있는 상황에서 과연 대우조선의 매력을 높게 평가하는 매수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불거진 대우조선의 분리매각설에 대해 산은관계자는 대우조선의 경쟁력 강화 방안 수립을 위한 경영컨설팅을 진행 중이며 방산부문 분할 매각을 포함한 어떠한 방안도 현재까지 논의된 바 없다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부가 대우조선의 분리매각을 신중하게 검토하게 된 동기부여는 강성노조의 불법파업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통째매각이던 분리매각이던 강성노조가 있는 산업체는 선뜻 매수자가 나서지 않는 다는 게 큰 단점이다. 물론 강성노조의 파생은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영주체에도 문제가 많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이번 대우조선의 불법파업이 남긴 교훈은 강성파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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