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과 정안립은 영친왕의 망명을 계획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대한제국의 황족에 대한 망명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영친왕의 결혼이 1920년 4월 28일이었으므로 1920년 이후에는 대한제국의 황실을 황제로 추대함으로써 입헌군주국을 만들겠다는 노력은 할 수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고려국’ 건국의 최전선에 섰던 양기탁과 정안립도 ‘대고려국’의 건국이 힘들다고 여겼던 것 같다.
양기탁은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당시 편집감독을 맡아 창간호에 항일의식이 넘쳐나는 ‘지(知)호아? 부(否)호아?’라는 논설을 게재하고, 그해 8월 24일 미국의원단 47명이 심양으로부터 서울역에 도착하자 독립을 위한 홍보에 열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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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그리고 1922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단체의 대동단결과 절대통일을 부르짖으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1933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1923년 2월에 의성단 군무총장, 1924년 11월 정의부 고문, 1926년 고려혁명당을 조직하는가 하면 1926년에 '대동민보'를 발간하는 등 열렬하게 활동했다.
그가 독립운동을 하는 가운데, 고려혁명당을 조직하고, 1927년 고려혁명단세포연합대회를 개최하는 등 고려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한 것을 보면 ‘대고려국’ 건국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안립은 1921년 대풍수전공사를 설립하려고 했으나, 일본측 세력과 제휴하여 영토를 침범하기 위한 배신행위로 알려져, 재만 중국인들과 심한 마찰이 생겨 좌절되었다. 1924년에는 화풍수전공사를 계획했는데, 그 역시 이루지는 못했다.
또한 1927년 만주를 중심으로 세계평민(世界平民), 호조(互助), 합작(合作), 경제균등(經濟均等) 등의 정신을 근본으로, 세계 공용어와 공통화폐를 사용하는 등의 강령을 가진 세계연방자유연맹을 조직하고,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국내로 귀국하였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제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만주사변 후에 상하이에서 동아국제연맹(東亞國際聯盟)을 조직하여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였으나 일제 고등계 형사들에게 서울로 압송되어 중부서에 연금되었다. 이러한 정안립의 행동을 보면 그 역시 ‘대고려국’ 건국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대고려국’ 건국을 위한 핵심 두 사람의 1920년 이후의 행적을 본다면 ‘대고려국’ 건국 계획은 사실 1920년 영친왕 망명 실패와 함께 현실성을 잃었던 것 같다. 그런데 스에나가가 이미 극점이 지난 ‘대고려국’ 건국에 관한 기사를 1921년에 쓴 것은 스에나가 역시 ‘대고려국’ 건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대고려국’ 건국이 실현된다면, 한반도의 대한제국 백성들과 간도를 중심으로 만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한제국 백성들이 연합해서 항일투쟁을 할 경우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혹시 그 시점에서라도 ‘대고려국’을 건국하게 된다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대한제국 백성들의 항일투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최전선에 나섰던 대한제국 인사들을 배제하고, 전(田)씨를 통치자로 내세워 일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자는 속셈이었을 수도 있다.
1921년 4월 6일 대정일일신문의 ‘대고려국’ 건국에 대한 스에나가의 맨 마지막 기사에 의하면 '정감록'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유림을 이끌고 정치를 행한다 했으니 전씨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조선의 정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는 현직 대만총독인 덴 겐지로(田健次郞) 밖에 없다고 못을 박고 있다. ‘대고려국’의 주체가 유림이라고 하면서도, ’대고려국‘을 건국하면 결국에는 일본 관료가 앞장서서 이끌어 갈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확실하게 한 가지 목적을 더 겸했다. ‘대고려국’ 건국은 실패한 그대로 끝나지만, 훗날에라도 반드시 일본이 주도하는 나라를 건국해야 된다는 것을 공포한 것이다. 만주국 건국을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당시에 만주국이라는 개념을 설정했다는 것이 아니라, 만주에 일본이 주도하여 위성국가이든 어용국가든 간에 일본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나라를 건국하는 것만이 일본의 대륙진출이라는 야욕을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만주국 건국에는 겐요샤와 그 아류인 흑룡회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런데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대고려국’ 건국계획을 겐요샤의 수장인 도야마 미쓰루가 알고 있었다. 스에나가가 연재한 이 기사는 도야마 미쓰루를 비롯한 일제 우익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든 만주에 독립국을 세우고자 했다. 이 모든 사실은 훗날 만주국 건국에 겐요샤와 일본 정부가 공헌한 바를 보면 증명된다. (12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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