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중심 자살예방에서 복지·일자리·금융·주거 아우르는 통합 대응으로 전환
31개 시군 생명안전망 표준화…청소년·중장년·노인 등 생애주기별 위험군 관리 강화
[로컬세계 = 문성용 기자] 경기도가 자살 위험에 놓인 도민을 사전에 찾아내고 상담·치료는 물론 복지와 일자리, 금융, 주거 문제까지 함께 지원하는 통합형 자살예방체계를 구축한다. 기존의 정신건강·상담 중심 대응에서 벗어나 위기를 초래하는 생활상의 문제까지 지방정부가 함께 살피겠다는 정책 전환이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14일 경기도청 다산홀에서 열린 ‘2026년 자살예방의 날 기념행사’에서 민선 9기 생명안전 비전인 ‘생명안전 100·10·1’을 발표했다.
목표는 2024년 인구 10만 명당 28.2명인 경기도 자살사망자 수를 2030년 22.6명까지 낮추는 것이다. 약 20% 감소에 해당한다.
하루 10명 넘게 자살…복합적 위기에 주목
경기도가 자살예방 정책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자살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2024년 도내 자살 사망자는 3,829명으로 하루 평균 10명을 넘어섰다. 특히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8.3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도는 자살 위험을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가 자살 사망자의 생전 심리·사회적 요인을 분석한 심리부검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분석 대상 자살 사망자의 64.7%가 사망 전 정신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실직, 질병, 가족문제 등 네 가지 이상의 스트레스 사건을 복합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원인보다 여러 생활 문제가 겹치면서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추 지사는 이날 “개인에게 더 강해지라고 요구하는 사회에서 힘들 때 기대도 되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며 “삶의 무게가 한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 그 무게를 함께 나누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고 행정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기다리는 상담에서 ‘먼저 찾아가는 예방’으로
이번 대책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점이다.
도는 지역사회에서 위험 신호를 조기에 찾아낸 뒤 상담과 응급대응, 치료로 연결하고 필요한 경우 복지·일자리·금융·주거 지원까지 연계할 계획이다. 위기를 넘긴 이후에도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구체화한 정책이 ‘생명안전 100·10·1’이다.
‘100’은 도 전역에 생명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의미이며, ‘10’은 자살예방을 위해 집중 관리할 10대 핵심과제를 뜻한다. 마지막 ‘1’에는 위기에 놓인 단 한 명의 도민도 지원체계에서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10대 과제에는 지역사회 위기 조기발견 체계를 비롯해 아동·청소년·청년 조기개입, 중장년·노인 위험군 선제 발굴, 생활현장 생명지킴이 확대 등이 포함됐다.
24시간 생명안전 대응체계와 자살시도자 즉시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위험군 지속관리와 자살 유가족 회복 지원, 지역사회 고립 예방 사업도 추진한다.
특히 31개 시군의 생명안전망을 표준화해 거주 지역에 따라 자살예방 서비스에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를 줄이는 것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상담만으로 해결 어려운 ‘생활 위기’까지 연결
정책이 계획대로 시행되면 도민이 체감하는 자살예방 서비스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실직과 채무, 주거불안 등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정신적 위기를 겪는 도민에게 상담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금융·복지·주거 담당 기관을 함께 연결하는 방식이다.
청소년이나 청년은 학교와 교육기관, 중장년층은 고용·복지 현장, 노인은 지역 돌봄체계 등과 연계해 생애주기별로 위험 신호를 찾아내는 체계도 강화된다.
자살예방을 특정 보건기관의 업무가 아닌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자살예방관과 자살예방대책 추진 전담조직(TF)을 중심으로 도와 31개 시군은 물론 복지·경제·일자리·교육 부서와 경찰·소방, 의료기관, 교육청, 지역사회를 하나의 대응체계로 연결할 계획이다.
추 지사는 “자살예방은 단순히 죽음을 막는 정책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때까지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정책이어야 한다”며 “위험 신호를 더 빨리 발견하고 24시간 상담과 응급대응, 치료까지 신속하게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기관 간 연계…현장 작동 여부가 성패 가를 듯
정책의 핵심은 지원 제도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에 흩어져 있던 서비스를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느냐에 있다.
자살 위험이 정신건강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과 실직, 질병, 가족관계, 사회적 고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만큼 보건·복지·고용·금융·교육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와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서도 민관 협력과 현장 실행체계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경기도 자살예방 정책포럼’에서는 현장 중심의 예방정책과 기관 간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
행사에는 추 지사를 비롯해 김동규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도의원, 백종우 국민생명안전위원회 부위원장, 시군 자살예방관, 경찰·소방 관계자, 종교계와 유족 대표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
경기도가 제시한 2030년 자살률 20%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31개 시군에서 정책이 동일한 수준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위기 당사자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지역 현장의 촘촘한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을 발견한 이후 상담에서 치료, 생활지원, 사후관리까지 중간에 끊기지 않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실효성을 좌우할 전망이다.
경기도가 이번 비전을 계기로 자살예방 정책을 ‘위기 발생 이후 대응’에서 ‘위기 조기 발견과 생활 회복 지원’으로 얼마나 실질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문성용 기자 hyosung63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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